전체 글 791

공주 공산성 쌍수정 인조 느티나무

공주 공산성 쌍수정 인조 느티나무 백제의 제22대 문주왕(?~477)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개로왕의 아들이라 했으나, 왜의 일본서기는 개로왕의 동생이라 했다. 이 문주왕이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략으로 한성에서 웅진으로 수도를 옮겨 쌓은 성이 공주의 웅진성(공산성)이다. 그리고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에 이어 성왕 16년(538)에 사비(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3년간 웅진백제의 도읍지였다. 초기에 토성이었으나, 신라 영토가 되면서 석성을 쌓은 토석혼축산성이다. 웅진성은 고려시대에 공산성이 되었다. 고려 현종 2년(1011)이다. 거란족의 침입에 나주로 피난 가던 현종이 이곳 공산성에 들렸다. 그리고 개경으로 돌아가던 중 또다시 6일을 머물며 절도사 김은부의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이 인연으..

사자성어 ‘자승자살’

사자성어 ‘자승자살’ 올 대학교수들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 이다. 이렇게 연말이면 올해의 사자성어, 국내외 10대 뉴스 등이 인구에 회자된다. 이는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실천하고, 결과를 점검하며 나아가는 인간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는 연유이다. 그런 생각에 한 해를 돌아보니 좋음보다 분노가 치솟는다. 좋은 세상은 대통령, 장관, 자치단체장 이름을 모르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세상은 ‘우리 대통령, 우리 장관, 우리 시장, 군수!’ 등 이름이 모두 ‘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 아쉬움을 달래며 지난 일을 반추해본다. 하지만 아무리 부르짖어도 ‘쇠귀에 경 읽기’라는 생각에 한숨이 먼저고 절망이 뒤를 따른다. 첫째는 세계 잼버리이다. 이 대회는 1920..

칼럼 2023.12.18

경남 함안군 어계 은행나무

경남 함안군 어계 은행나무 고려 공민왕 때이다. 어느 날 밤 전서 벼슬의 조열, 판서 성만, 평리사 변빈, 박사 정몽주, 전서 김성목, 대사성 이색 등이 술자리를 가졌다. 이때 이색이 ‘비간은 죽었고 미자는 떠났으며 기자는 종이 되었으니, 우리도 각자 뜻을 따라서 처신하자.’고 하였다. 이색의 이 말은 논어 제18편의 미자편에 있는 ‘포악무도한 은나라 주왕의 폭정에 미자는 나라를 떠나고, 기자는 노예가 되었으며, 비간은 간언하다 죽었다’는 고사이다. 이색은 이 고사를 들어 고려의 몰락과 이를 지켜보는 참담함을 한탄했다. 1391년 조열은 공양왕에게 이성계의 병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남 함안으로 왔다. 1394년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부름을 받았다. 정2품 공조전서가 되..

곡성 옥과 입면 조통 느티나무

곡성 옥과 입면 조통 느티나무 아왕공주는 고려 20대 신종의 딸로 본명이 공심(公心)이다. 이때는 최충헌의 무신정권 시기로 일부 집단의 권력 독식은 고려를 극도로 부패시켰고, 백성들은 그들의 횡포에 시달렸다. 1198년 최충헌의 종 만적의 난, 1199년 명주(강릉)의 도적이 삼척과 울진 두 현을 함락시켰고, 동경(경주)에서도 도적이 명주현의 도적과 연합하여 노략질을 일삼았다. 1200년 4월 진주 민란, 같은 달에 밀성(밀양)의 관노 50여 명의 관가 습격, 운문(청도)의 난민들 반란이 있었다. 8월에는 동경(경주)에서 이의민의 친족들과 아전들의 싸움이 있었다. 김해에서도 하층민들이 관군과 대치하였다. 이에 ‘신종실록’은 신종은 허수아비처럼 왕이라는 이름으로 백성들 위에 앉아 있었을 뿐이니 참으로 애석..

밀양 표충비각 사명대사 향나무

밀양 표충비각 사명대사 향나무 밀양시 무안면에는 호국불교, 의승병의 상징인 사명대사 유정의 탄생지가 있다. 그리고 탄생지 들머리에 조선시대에 지은 홍제사와 그를 기리는 표충각과 표충비각이 있다. 사명대사는 중종 39년(1544) 10월 17일 풍천 임씨 임수성의 둘째 아들로 밀양 무안면 고라리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유정,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 종봉, 송운 등이고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증조할아버지 임효곤은 문과 급제로 장악원정을 지냈고, 할아버지 임종원도 문과 급제로 강계부사를 지냈다. 이곳 고라리에 생가와 유적지 기념관이 있다. 다음은 1594년 9월 사명대사가 선조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의 내용이다. ‘신은 풍천임씨의 후예로서 조부 때 영남 밀양에 이적하여 밀양부민이 되어 살..

자승자박

자승자박 자업자득은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스스로가 돌려받음이다. 자승자박은 제 줄로 제 몸을 옭아 묶는다는 뜻으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구속되어 괴로움을 당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제 마음으로 번뇌를 일으켜 괴로워함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이 글을 쓰는 건 자업자득과 자승자박의 낱말풀이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냥 말 돌리지 않고 직설로 하겠다. 얼마 전 자승이란 중이 자살을 했다. 그것도 자신이 거주하는 칠장사 요사체에 불을 지른 방화에 위한 자살이었다. 또 제자들아로 시작하는 유언에 ‘탄묵, 탄무, 탄원, 향림. 각자 2억씩 출연해서 25년까지 토굴을 복원해주도록 하라’고 했다. 8억짜리 토굴이 있을까 싶어 불교는 돈도 많구나 하면서 도무지 어안이 벙벙하고 믿기..

수필 2023.12.02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 소나무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 소나무 해남 땅끝항과 남성항이나 완도 화흥포항에서 배에 오르면 다도해의 푸른 보석인 노화, 소안, 보길도 등 세 섬에 안겨볼 수 있다. 물론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이 세 섬과 얼싸덜싸 함께하는 뭍 섬을 팔 벌려 안아볼 수도 있다. 보길도는 그 생김새가 쟁기에 끼우는 보습 같아서 어원인 ‘보고래 섬’에서 얻었다. 윤선도(1587~1671)의 원림이 있는 마을 이름 부용동은 반쯤 핀 연꽃과도 같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곳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이 푸른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연꽃송이 꽃잎인 것이다. 어찌 보면 여러 차례 유배를 당하며 정치적 부침을 거듭한 윤선도 역시 물결치는 바다의 연꽃송이 같은 삶을 살았다. 인조 14년(1636) 12월이다. 병자호란에 인조는 ..

함양 휴천면 목현마을 정대영 구송

함양 휴천면 목현마을 정대영 구송 휴천은 이름처럼 내가 쉬는 곳이다. 물길이 흐름을 멈출 리 없지만, 먼 길 가는 나그네에게 잠시의 쉼은 삶과 숨의 여유와 낭만일 게다. 여기 휴천면의 나뭇골인 목현마을에 가지가 아홉이어서 구송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자태의 소나무가 있다. 세월이 흐르며 가지 둘이 없어졌다지만 그런들 어쩌랴? 본디 이름이란 불리우고 남겨지면서 의미가 깊어지는 것이다. 여기 휴천면을 만든 지리산은 ‘방장’, ‘두류’라는 이름도 있다. 백두산 줄기가 흐르는 곳, 머무는 곳이어서 두류이다. 또 방장은 신선이 살고 불사의 영약이 있으며 뭇 짐승이 모두 흰빛, 궁전은 금은으로 지어졌다는 봉래, 영주와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이다. 바로 그 지리산이 흐르는 곳, 잠시 머무는 곳을 지키는 휴천면 목현마을의 ..

국빈, 극빈

국빈, 극빈 11월 1일은 가톨릭의 만성절(萬聖節)이니 말 그대로 모든 성인, 그중에서도 특히 축일이 따로 없는 성인들을 기리는 날이다. 영어로는 ‘All Saints′ Day, All Hallows′ Day’이니 할로윈(Halloween)이 여기서 비롯된다. 그리고 할로윈은 이 만성절의 전야제로 만성제(萬聖祭)라고도 한다. 따라서 할로윈은 10월 31일이다. 이 10월의 마지막 밤을 사람들이 귀신이나 신비주의와 연관시킨 것이 할로윈의 기원이나 요즈음에는 종교 성격의 기념보다는 상업과 신문화의 성격이 강하다. 이 할로윈의 기원은 여럿이나 그중 고대 켈트족이 죽음과 유령을 찬양하며 벌인 축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켈트인들은 태음력 그러니까 1년이 28일씩 13달로 이루어진 달력을 사용했고 한 해..

칼럼 2023.11.13

남원 정충사 황진 소나무

남원 정충사 황진 소나무 조선시대 으뜸 장수는 누구일까? 대부분 이순신을 떠 올릴 것이다. 그럼 육군에서만은 누구일까? 여긴 답이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단연코 황진(1550~1593)이다. 황진은 임진왜란에 나라의 운명을 바꾼 용장이다. 선조 9년(1576) 27살 때 무과에 급제하였고 첫 전투는 1583년 함경도 회령의 야인여진 니탕개의 난 평정 때이다. 이때 평생의 벗이자 1593년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김해부사 이종인과 함께 눈부신 활약을 했다. 1590년 임란 두 해 전이다. 황윤길과 김성일이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갈 때 선전관인 황진은 호위무사였다. 이때 일인들이 50보 과녁을 쏘아 맞히고 자랑하자, 황진은 작은 과녁을 그 옆에 세워 명중시킨 뒤, 마침 날고 있는 새 두 마리까지 떨어뜨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