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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마적산 이정형 나무

춘천 마적산 이정형 나무-산천은 유구하나 인걸은 간데없네 중종 2년(1507) 종5품 사직서령을 지낸 경주 이씨 이탕(李宕 1507~1584)이 1584년 평택시 가재동 막곡 마을 뒤 사당골에 정착하였다. 이탕은 정종 임금 7남 수도군 이덕생의 고손녀인 전주 이씨를 잃고 첨지중추부사 김응진의 딸인 의성 김씨에게 정함, 정암, 정형, 정담, 정분, 정온, 정혐, 정봉 등 아들 8명과 딸을 낳았다. 그의 장, 차, 삼남의 공적 등 후손 17명이 임진란 공신에 올라 훗날 영의정 겸 오산 부원군에 추증되었다.장남 이정함(1534~1599)은 임진왜란에 군량미 공급으로 오위장을 제수받았으며 후손이 없어 둘째 아우 이정암(1541~1600)의 셋째 아들인 이준(1570~1599)을 양자로 삼았고 그 후손이 현재까지..

카테고리 없음 2026.08.31

춘천 김유정 봄을 기다리는 나무

춘천 김유정 봄을 기다리는 나무-봄내 마을의 삶과 희망의 봄나무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는 김유정(1908~1937)이 1936년 ‘조광’ 5월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동백꽃’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시골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을 구수한 강원도 지역 말과 아름다운 우리 말로 촘촘히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서 노란 동백꽃은 한겨울부터 붉은 꽃송이를 빼쪼롬이 벌리는 남녘의 동백이 아니다. 나뭇가지를 꺾어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쉬면 톡 쏘는 아릿한 향기의 생강나무이다.춘천은 우리말로 ‘봄내’이다. 산과 강, 호수가 어우러지고 이른 봄 산기슭에서 생강대처럼 쑥 뻗은 가지에 노..

보성 안규홍 담사리 의병장 소나무

보성 안규홍 담사리 의병장 소나무-26번 항일전투를 이긴 담사리 의병장 안규홍은 대한제국 말기 정미의병 때 의병장으로 1879년 4월 10일 전남 보성군 옥암면 택촌리(현 보성읍 우산리 택촌마을)에서 아버지 안달환과 어머니 정씨 사이의 서자로 태어났다. 공조참의를 지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은봉(隱峰) 안방준은 안규홍의 조상이다. 안방준은 보성읍에서 태어나 박광전, 박종정, 성혼에게 배웠으며, 임진왜란에 박광전의 전라좌의병 막하에서 종사관으로 참전했다. 정유재란의 화순 동복 적벽전투에도 참여하여 왜와 싸웠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는 호남 의병장이었다. 하지만 안방준 가문은 후손이 벼슬에 오르지 못해 생활이 어려웠으며 안규홍은 4살 때 아버지마저 여의고 먼 친척 집에 ‘담사리’로 맡겨졌다. 담사리는 꼴을..

전남 보성 조성 선거이 섶나무

전남 보성 조성 선거이 섶나무 -왜가 두려워한 날아다니는 비장군 보성 선씨 시조 선윤지는 우왕 8년(1382)에 명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와 호남안겸사로 남해 관음포에서 왜구를 물리쳤고 보성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 선윤지의 8세손 선거이(1545~1598)는 종5품 의금부도사 선상의 아들로 보성 조성에서 태어났다. 1569년 왕의 경호원인 겸사복, 1579년 식년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6년 함북병마절도사 ‘이일’의 보좌관인 정3품 계청군관이 되어 종4품 조산 만호 이순신을 만났다. 이때 이일이 녹둔도 전투에서 승리한 이순신을 옥에 가두었다. 선거이는 ‘모함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가는데 술이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했고 이순신은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인데 술은 마셔서 뭐 하겠나?’라고 했다. 또 선거이는..

경기 파주 법원읍 홍랑 철쭉

경기 파주 법원읍 홍랑 철쭉 -세상의 모든 것을 녹이면, 사랑이리라 조선 전기 문학은 송나라 소식과 구양수처럼 문장을 아름답게 수식하는 데에 있었다. 선조 시대에 이르러 당나라 이백과 두보처럼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고자 하였고 이 시풍을 연 최경창, 백광훈. 이달을 삼당시인이라 부른다.삼당시인 최경창(1539~1583)이 양응정(1519~1581)에게 공부할 때이다. 양응정 집에 소합이란 노래 솜씨가 뛰어난 어린 여종이 ‘칠석부’를 잘 불렀다. 이 칠석부는 1531년 김인후(1510~1560)의 성균관 월과 장원작으로 당시 장안의 애송시였다. 소합의 칠석부에 최경창이 퉁소로 음률을 보태니 천상의 화음이었다. 그런데 열여섯 살 소합이 그만 칠석날 죽었고, 이별의 노래 칠석부는 최경창 가슴에 깊은 슬픔..

경기 파주 옥봉 이원 소나무

경기 파주 옥봉 이원 소나무-화양연화! 꽃같이 아름다운 한 때 이봉(李逢 1526~1603)은 양녕대군의 고손자로 옥천의 한 기녀에게 아리따운 딸을 얻었으니 옥봉 이원(1554~1592)이다. 이봉은 딸 이름을 생김새대로 ‘미인 원(媛)’자로 하였다. 또 글과 시를 가르치고 호를 ‘옥처럼 아름다운 봉우리’라는 ‘옥봉(玉峰)’이라 하여 양갓집에 출가시켰다. 그런데 그만 일 년도 안 돼 남편이 요절했고, 옥봉은 친정으로 돌아왔다.그즈음 이봉의 집에서 한양의 명사인 정철, 이이, 심희수, 이항복, 유근, 허균, 조원 등이 시회를 즐겼다. 어느 여름날, 옥봉이 시회에 술상을 들여놓고 나오다 갑작스런 소나기에 나지막이 시 ‘우(雨)’를 읊었다. ‘구름 흩어진 가장자리 햇빛이 새어나오고/ 하늘 가득 은빛 댓가지 강..

함양 서하면 은행정 천년 나무

함양 서하면 은행정 천년 나무 - 천군만마 장수, 군주의 위엄 함양군 서상면의 남덕유산 기슭에서 여름에는 손이 시리고 겨울에는 발이 따뜻한 물이 솟구치니 남강의 첫물인 참샘이다. 이 참샘 물이 지리산에서 온 임천을 산청 생초면에서 만나 경호강이란 이름표를 잠시 달았다가 이내 군 소재지를 지나면서 다시 남강이 되어 함안군에서 낙동강으로 들어간다.남덕유산 육십령은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 사이의 동서를 잇는 구불구불 고갯길이다. 산세가 하도 험해 60명이 모여서야 고갯길을 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샘의 남강물이 그 육십령을 내려와서 처음 만나는 마을이 함양군의 맨 위쪽 고을인 서상면이다. 여기에 주논개(1574~1593)의 묘가 있다. 논개는 전북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에서 선비 주달문과 밀양박씨의 ..

정읍 고부 향교 은행나무

정읍 고부 향교 은행나무-4백 50살, 조선 향교 3대 은행나무 전북 고부는 삼한의 54개 소국 중 ‘고비리국’이다. 백제에 이르러 ‘고사부리군’ 남북국 시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고부군’이 되었다. 고려초기엔 관찰사가 있던 ‘영주’, 951년 잠시 ‘안남도호부’, 현종 9년(1018)에 다시 고부군, 현재는 정읍의 15개 읍면 중 하나이다.역사가 오래인만큼 오랜 이야기가 있다. 여기 두승산은 부안 변산, 고창 방장산과 함께 삼신산으로 숭앙하는 고부의 진산이다. 이 산 봉우리 가까이에 사찰 유선사가 있다. 의상이 이곳에 이르러 신선들이 노니는 걸 보고 그 자리에 나무를 꽂고 절을 지었다. 또 이 두승산 아래 김제 벽골제와 같은 눌재가 있었으니, 삼국시대의 유적이다.두승산에서 흘러 내린 물이 고..

청양 모덕사 최익현 은행나무

청양 모덕사 최익현 은행나무-‘모덕’, 면암의 덕을 흠모한다 최익현(1834.1.14~1907.1.1)은 경기도 포천에서 아버지 최대와 어머니 경주 이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9살 때 김기현에게 유학의 기초를 배우고, 14살 때부터 이항로 문하에서 애국과 호국의 정신까지 이어받았다. 22살이던 철종 6년 1855년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이후 사간언 정원, 신창현감, 성균관 직강 등을 두루 역임하며 불의와 부정에 단호했고, 강직하게 처리했다.33살이던 1866년 어머니 상으로 삼년상을 치르고 1868년 사헌부 장령으로 복직했다. 그렇게 장령이 되자마자 1592년 임진왜란에 불탄 경복궁 재건에 나선 대원군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 일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되고 ..

고양시 벽제초등학교 이정암 나무

고양시 벽제초등학교 이정암 나무-너희는 병기로 싸우나 우리는 의(義)로 싸운다 이정암(1541~1600)의 본관은 경주이고 호는 사류재이다. 1592년 4월 13일의 임진왜란에 이조참의 이정암이 1592년 4월 28일부터 같은 해 10월 7일까지 156일 동안의 일을 기록한 전쟁일기가 ‘서정일록(西征日錄)’이다. 이 일기를 살펴본다.도순변사 신립이 1592년 4월 29일의 충주 전투에서 패배하자 이튿날 새벽 선조는 세자인 광해군을 데리고 돈의문을 나와 평양으로 향했다. 5월 3일 한양을 왜가 짓밟았고 5월 19일에는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졌다. 6월 11일 선조는 평양을 나와 군권을 광해군에게 넘겨주고 의주로 향했다. 6월 14일 평양이 함락되고, 17일에는 왜의 가토군이 함경도까지 왔다. 2개월여에 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