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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순흥 금성대군 은행나무

영주 순흥 금성대군 은행나무-불의에 죽고 충의에 살아난 나무 계유년인 1453년 10월 10일의 계유정난은 세종의 차남 수양대군이 세종과 문종의 명을 받은 고명대신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없애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로써 단종(1441~1457)을 폐위되고 수양은 세조(1417~1468)가 되었다. 이 계유정난 때 세조의 친동생으로 조카인 단종을 사랑했던 금성대군(1426~1457)은 모반 혐의로 경기도 삭녕에 유배되었다가 경기도 광주로 이배되었다.문종이 재위 2년여 만에 승하하고 1452년 6월 14일 11살의 노산군이 단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계유정난에 1455년 8월 3일 단종은 상왕이 되었다. 그렇게 세조의 왕위찬탈 뒤, 1456년 6월 2일 사육신 사건이 있었고, 이 일로 금성대군은 경북..

영주 부석 남대리 단종 소나무

영주 부석 남대리 단종 소나무-64년, 단종을 그리워한 정순왕후 우뚝 솟아 백두산을 나와 한반도의 등줄기가 된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남서쪽 소백산으로 이어지며 강원 영월 김삿갓면,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충북 단양 의풍리와 분수령을 이루는 숨은 터를 뒀다. 경기 양주에서 태어나 전남 화순 동복에서 생을 마감한 김삿갓이 어릴 때 숨어 산 영월 김삿갓면 마을 ‘어둔이골’이 그 삼도 경계 터이고,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마을 ‘마흘천’이 또 그곳이다.남대리는 ‘남쪽에 있는 대궐’이니 남대궐이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에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몽진하여 백성들의 보살핌을 받은 대궐터라고 한다. 그때 임금이 머문 행재소가 어래산이고, 처소였던 행궁터가 있다. 또 훗날 단종이 승하한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되려..

춘천 신숭겸 장절공 소나무

춘천 신숭겸 장절공 소나무-고려 개국공신, 도이장가 주인공 신숭겸은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태봉국 마군장군이었으며, 대구 공산성 전투에서 왕건 대신 전사했다. 918년, 궁예의 실정에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이다,신숭겸은 활 솜씨가 뛰어났다. 왕건과 함께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사냥할 때였다. 왕건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가리키며 ‘저 날아가는 기러기 중 앞부터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추라.’라고 하자 신숭겸이 그리했다. 이에 왕건은 세 번째 기러기를 맞추는 모습과 비슷한 한자 신(申)을 성씨로, 숭겸을 이름으로 내리고 평산 땅 3백결을 하사하였다. 신숭겸의 본관이 평산, 3백결의 땅을 궁위전(弓位田), 궁위방(弓位坊)이라고 하는 연유이..

춘천 관남재 한백록 나무

춘천 관남재 한백록 나무-탄환을 맞고도 나아가 싸우다 1592년 4월 13일 아침 8시에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700척 왜선에 18,700명을 싣고 쓰시마를 나와 오후 5시에 부산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의 시작이다. 갑작스레 적의 대군을 맞은 부산진 첨사 정발이 600명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고 다대포진 군사들도 첨사 윤흥신의 지휘 아래 14~15일 이틀에 걸쳐 싸우다 전멸했다. 동래성도 하루를 버티지 못해 부사 송상현이 전사하였고, 동래성 북쪽 소산역 박진의 군사 500여 명도 손쉽게 무너졌다. 경상좌병사 이각은 전투가 시작되자 도망쳤고, 경상 좌수사 박홍은 성에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다. 경상 우수사 원균 또한 바다에 무기와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또 비상 연락망인 봉화 전달..

춘천 마적산 이정형 나무

춘천 마적산 이정형 나무-산천은 유구하나 인걸은 간데없네 중종 2년(1507) 종5품 사직서령을 지낸 경주 이씨 이탕(李宕 1507~1584)이 1584년 평택시 가재동 막곡 마을 뒤 사당골에 정착하였다. 이탕은 정종 임금 7남 수도군 이덕생의 고손녀인 전주 이씨를 잃고 첨지중추부사 김응진의 딸인 의성 김씨에게 정함, 정암, 정형, 정담, 정분, 정온, 정혐, 정봉 등 아들 8명과 딸을 낳았다. 그의 장, 차, 삼남의 공적 등 후손 17명이 임진란 공신에 올라 훗날 영의정 겸 오산 부원군에 추증되었다.장남 이정함(1534~1599)은 임진왜란에 군량미 공급으로 오위장을 제수받았으며 후손이 없어 둘째 아우 이정암(1541~1600)의 셋째 아들인 이준(1570~1599)을 양자로 삼았고 그 후손이 현재까지..

카테고리 없음 2026.08.31

춘천 김유정 봄을 기다리는 나무

춘천 김유정 봄을 기다리는 나무-봄내 마을의 삶과 희망의 봄나무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는 김유정(1908~1937)이 1936년 ‘조광’ 5월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동백꽃’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시골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을 구수한 강원도 지역 말과 아름다운 우리 말로 촘촘히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서 노란 동백꽃은 한겨울부터 붉은 꽃송이를 빼쪼롬이 벌리는 남녘의 동백이 아니다. 나뭇가지를 꺾어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쉬면 톡 쏘는 아릿한 향기의 생강나무이다.춘천은 우리말로 ‘봄내’이다. 산과 강, 호수가 어우러지고 이른 봄 산기슭에서 생강대처럼 쑥 뻗은 가지에 노..

보성 안규홍 담사리 의병장 소나무

보성 안규홍 담사리 의병장 소나무-26번 항일전투를 이긴 담사리 의병장 안규홍은 대한제국 말기 정미의병 때 의병장으로 1879년 4월 10일 전남 보성군 옥암면 택촌리(현 보성읍 우산리 택촌마을)에서 아버지 안달환과 어머니 정씨 사이의 서자로 태어났다. 공조참의를 지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은봉(隱峰) 안방준은 안규홍의 조상이다. 안방준은 보성읍에서 태어나 박광전, 박종정, 성혼에게 배웠으며, 임진왜란에 박광전의 전라좌의병 막하에서 종사관으로 참전했다. 정유재란의 화순 동복 적벽전투에도 참여하여 왜와 싸웠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는 호남 의병장이었다. 하지만 안방준 가문은 후손이 벼슬에 오르지 못해 생활이 어려웠으며 안규홍은 4살 때 아버지마저 여의고 먼 친척 집에 ‘담사리’로 맡겨졌다. 담사리는 꼴을..

전남 보성 조성 선거이 섶나무

전남 보성 조성 선거이 섶나무 -왜가 두려워한 날아다니는 비장군 보성 선씨 시조 선윤지는 우왕 8년(1382)에 명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와 호남안겸사로 남해 관음포에서 왜구를 물리쳤고 보성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 선윤지의 8세손 선거이(1545~1598)는 종5품 의금부도사 선상의 아들로 보성 조성에서 태어났다. 1569년 왕의 경호원인 겸사복, 1579년 식년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6년 함북병마절도사 ‘이일’의 보좌관인 정3품 계청군관이 되어 종4품 조산 만호 이순신을 만났다. 이때 이일이 녹둔도 전투에서 승리한 이순신을 옥에 가두었다. 선거이는 ‘모함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가는데 술이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했고 이순신은 ‘죽고 사는 것은 운명인데 술은 마셔서 뭐 하겠나?’라고 했다. 또 선거이는..

경기 파주 법원읍 홍랑 철쭉

경기 파주 법원읍 홍랑 철쭉 -세상의 모든 것을 녹이면, 사랑이리라 조선 전기 문학은 송나라 소식과 구양수처럼 문장을 아름답게 수식하는 데에 있었다. 선조 시대에 이르러 당나라 이백과 두보처럼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고자 하였고 이 시풍을 연 최경창, 백광훈. 이달을 삼당시인이라 부른다.삼당시인 최경창(1539~1583)이 양응정(1519~1581)에게 공부할 때이다. 양응정 집에 소합이란 노래 솜씨가 뛰어난 어린 여종이 ‘칠석부’를 잘 불렀다. 이 칠석부는 1531년 김인후(1510~1560)의 성균관 월과 장원작으로 당시 장안의 애송시였다. 소합의 칠석부에 최경창이 퉁소로 음률을 보태니 천상의 화음이었다. 그런데 열여섯 살 소합이 그만 칠석날 죽었고, 이별의 노래 칠석부는 최경창 가슴에 깊은 슬픔..

경기 파주 옥봉 이원 소나무

경기 파주 옥봉 이원 소나무-화양연화! 꽃같이 아름다운 한 때 이봉(李逢 1526~1603)은 양녕대군의 고손자로 옥천의 한 기녀에게 아리따운 딸을 얻었으니 옥봉 이원(1554~1592)이다. 이봉은 딸 이름을 생김새대로 ‘미인 원(媛)’자로 하였다. 또 글과 시를 가르치고 호를 ‘옥처럼 아름다운 봉우리’라는 ‘옥봉(玉峰)’이라 하여 양갓집에 출가시켰다. 그런데 그만 일 년도 안 돼 남편이 요절했고, 옥봉은 친정으로 돌아왔다.그즈음 이봉의 집에서 한양의 명사인 정철, 이이, 심희수, 이항복, 유근, 허균, 조원 등이 시회를 즐겼다. 어느 여름날, 옥봉이 시회에 술상을 들여놓고 나오다 갑작스런 소나기에 나지막이 시 ‘우(雨)’를 읊었다. ‘구름 흩어진 가장자리 햇빛이 새어나오고/ 하늘 가득 은빛 댓가지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