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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 속리산 세조 정이품송

보은 속리산 세조 정이품송-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위로 올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신경준은 산경표에서 백두산에서 단천, 원산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뻗어 내리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했다. 이 백두대간의 산 중 속리산은 충청북도 보은군, 괴산군, 경상북도 상주시, 문경시에 걸쳐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은 1,058m이고 산 이름 속리산은 ‘속세로부터 떠나온 산’의 뜻이다.이 속리산 위 속초시와 양양, 고성, 인제군에 걸쳐 솟은 설악산에 아름다운 울산바위가 있다. 옥황상제가 금강산을 만들 때 한반도의 멋진 바위를 모두 불렀는데 울산에 있던 바위가 북쪽으로 가다가 그만 늦어서 주저앉았다. 이에 울산 사또가 울산바위가 있는 신..

충남 계룡산 동학사 목련

충남 계룡산 동학사 목련-살아있음이, 보고 느낌이 행복 천년 고찰 계룡산 동학사는 그 오랜 세월만큼 그 이야기도 길다.남북국시대인 713년이다. 당나라 스님 상원조사가 660년에 멸망하여 지도에서 이름이 지워진 옛 백제 땅 계룡산에 이르렀다. 이때 산길에서 몹시 괴로워하는 호랑이를 만났다. 상원조사는 호랑이 목에 걸린 뼈를 빼주었고, 호랑이는 한 여인을 데려다주었다. 상원조사는 그 여인과 의남매를 맺고 호랑이를 만난 곳에 상원암을 지어 도를 닦았다. 724년 상원조사의 제자인 회의화상이 이를 기려 남매탑을 세웠다. 시공을 떠나 오늘에도 그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을 말없이 전해주는 7층 탑의 이름은 오라비탑, 5층 탑은 누이탑이다.또 세월이 흘러 고려 태조 즉위 3년인 920년 도선이 이 상원암을 중창하여 ..

영주 부석사 의상조사 선비화

영주 부석사 의상조사 선비화 -비, 이슬 없이 잎과 꽃이 피다 신라 때 의상조사(625-702)가 세운 영주 부석사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면 여기가 신선이 사는 세상이구나 한다. 의상이 650년 원효와 함께 당으로 가다가 경기 화성의 어느 동굴에서 묵을 때이다. 이날 해골에 괸 물을 마신 원효는 진리를 깨닫고 되돌아왔고, 의상은 종남산 지상사에서 중국 화엄종 조사인 지엄에게 공부하고 661년 귀국했다.당시 당은 신라 승상 김흠순을 가두고 신라에 출병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 김흠순에게 들은 의상이 급히 귀국할 때였다. 의상은 자신을 사모하는 여성 선묘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갔다 만나지 못하고 귀국했다. 이에 선묘는 의상을 지키겠다며 황해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다.의상이 676년 화엄정신을 펼칠 도량 터를..

영주 순흥 금성대군 은행나무

영주 순흥 금성대군 은행나무-불의에 죽고 충의에 살아난 나무 계유년인 1453년 10월 10일의 계유정난은 세종의 차남 수양대군이 세종과 문종의 명을 받은 고명대신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없애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로써 단종(1441~1457)을 폐위되고 수양은 세조(1417~1468)가 되었다. 이 계유정난 때 세조의 친동생으로 조카인 단종을 사랑했던 금성대군(1426~1457)은 모반 혐의로 경기도 삭녕에 유배되었다가 경기도 광주로 이배되었다.문종이 재위 2년여 만에 승하하고 1452년 6월 14일 11살의 노산군이 단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계유정난에 1455년 8월 3일 단종은 상왕이 되었다. 그렇게 세조의 왕위찬탈 뒤, 1456년 6월 2일 사육신 사건이 있었고, 이 일로 금성대군은 경북..

영주 부석 남대리 단종 소나무

영주 부석 남대리 단종 소나무-64년, 단종을 그리워한 정순왕후 우뚝 솟아 백두산을 나와 한반도의 등줄기가 된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남서쪽 소백산으로 이어지며 강원 영월 김삿갓면,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충북 단양 의풍리와 분수령을 이루는 숨은 터를 뒀다. 경기 양주에서 태어나 전남 화순 동복에서 생을 마감한 김삿갓이 어릴 때 숨어 산 영월 김삿갓면 마을 ‘어둔이골’이 그 삼도 경계 터이고,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마을 ‘마흘천’이 또 그곳이다.남대리는 ‘남쪽에 있는 대궐’이니 남대궐이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에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몽진하여 백성들의 보살핌을 받은 대궐터라고 한다. 그때 임금이 머문 행재소가 어래산이고, 처소였던 행궁터가 있다. 또 훗날 단종이 승하한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되려..

춘천 신숭겸 장절공 소나무

춘천 신숭겸 장절공 소나무-고려 개국공신, 도이장가 주인공 신숭겸은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태봉국 마군장군이었으며, 대구 공산성 전투에서 왕건 대신 전사했다. 918년, 궁예의 실정에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세운 개국공신이다,신숭겸은 활 솜씨가 뛰어났다. 왕건과 함께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사냥할 때였다. 왕건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가리키며 ‘저 날아가는 기러기 중 앞부터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추라.’라고 하자 신숭겸이 그리했다. 이에 왕건은 세 번째 기러기를 맞추는 모습과 비슷한 한자 신(申)을 성씨로, 숭겸을 이름으로 내리고 평산 땅 3백결을 하사하였다. 신숭겸의 본관이 평산, 3백결의 땅을 궁위전(弓位田), 궁위방(弓位坊)이라고 하는 연유이..

춘천 관남재 한백록 나무

춘천 관남재 한백록 나무-탄환을 맞고도 나아가 싸우다 1592년 4월 13일 아침 8시에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700척 왜선에 18,700명을 싣고 쓰시마를 나와 오후 5시에 부산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의 시작이다. 갑작스레 적의 대군을 맞은 부산진 첨사 정발이 600명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고 다대포진 군사들도 첨사 윤흥신의 지휘 아래 14~15일 이틀에 걸쳐 싸우다 전멸했다. 동래성도 하루를 버티지 못해 부사 송상현이 전사하였고, 동래성 북쪽 소산역 박진의 군사 500여 명도 손쉽게 무너졌다. 경상좌병사 이각은 전투가 시작되자 도망쳤고, 경상 좌수사 박홍은 성에 무기를 버리고 도망쳤다. 경상 우수사 원균 또한 바다에 무기와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또 비상 연락망인 봉화 전달..

춘천 마적산 이정형 나무

춘천 마적산 이정형 나무-산천은 유구하나 인걸은 간데없네 중종 2년(1507) 종5품 사직서령을 지낸 경주 이씨 이탕(李宕 1507~1584)이 1584년 평택시 가재동 막곡 마을 뒤 사당골에 정착하였다. 이탕은 정종 임금 7남 수도군 이덕생의 고손녀인 전주 이씨를 잃고 첨지중추부사 김응진의 딸인 의성 김씨에게 정함, 정암, 정형, 정담, 정분, 정온, 정혐, 정봉 등 아들 8명과 딸을 낳았다. 그의 장, 차, 삼남의 공적 등 후손 17명이 임진란 공신에 올라 훗날 영의정 겸 오산 부원군에 추증되었다.장남 이정함(1534~1599)은 임진왜란에 군량미 공급으로 오위장을 제수받았으며 후손이 없어 둘째 아우 이정암(1541~1600)의 셋째 아들인 이준(1570~1599)을 양자로 삼았고 그 후손이 현재까지..

카테고리 없음 2026.08.31

춘천 김유정 봄을 기다리는 나무

춘천 김유정 봄을 기다리는 나무-봄내 마을의 삶과 희망의 봄나무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는 김유정(1908~1937)이 1936년 ‘조광’ 5월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동백꽃’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시골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을 구수한 강원도 지역 말과 아름다운 우리 말로 촘촘히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서 노란 동백꽃은 한겨울부터 붉은 꽃송이를 빼쪼롬이 벌리는 남녘의 동백이 아니다. 나뭇가지를 꺾어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쉬면 톡 쏘는 아릿한 향기의 생강나무이다.춘천은 우리말로 ‘봄내’이다. 산과 강, 호수가 어우러지고 이른 봄 산기슭에서 생강대처럼 쑥 뻗은 가지에 노..

보성 안규홍 담사리 의병장 소나무

보성 안규홍 담사리 의병장 소나무-26번 항일전투를 이긴 담사리 의병장 안규홍은 대한제국 말기 정미의병 때 의병장으로 1879년 4월 10일 전남 보성군 옥암면 택촌리(현 보성읍 우산리 택촌마을)에서 아버지 안달환과 어머니 정씨 사이의 서자로 태어났다. 공조참의를 지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은봉(隱峰) 안방준은 안규홍의 조상이다. 안방준은 보성읍에서 태어나 박광전, 박종정, 성혼에게 배웠으며, 임진왜란에 박광전의 전라좌의병 막하에서 종사관으로 참전했다. 정유재란의 화순 동복 적벽전투에도 참여하여 왜와 싸웠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는 호남 의병장이었다. 하지만 안방준 가문은 후손이 벼슬에 오르지 못해 생활이 어려웠으며 안규홍은 4살 때 아버지마저 여의고 먼 친척 집에 ‘담사리’로 맡겨졌다. 담사리는 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