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모명제 두사충 배롱나무-하늘 끝에 선 늙은이 돌아갈 수 없어 당나라 시인 두보의 후손 두사충(杜師忠)의 아버지는 기주자사를 지낸 두교림이다. 두사충은 1592년 12월 명 장수 이여송의 수륙지획주사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병영과 진 터 구축의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평양성 탈환 뒤 벽제관 전투 패배의 책임을 이여송이 두사충에게 씌워 참수하려 했다. 이때 좌찬성 정탁의 구명으로 겨우 목숨을 건져 귀국했다. 1597년 정유재란에는 명 장수 유정을 따라 다시 참전하여 자신의 매형인 수군도독 진린의 작전참모장이 되었다.1598년 2월 17일 이순신의 조선 수군 8천 명이 완도 고금도에 통제영을 세운 뒤, 7월 16일 진린의 명 수군 5천 명이 합류, 연합 함대를 이뤘다. 그리고 사흘 뒤인 7월 19일 녹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