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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이재명, 매국노 이완용

애국지사 이재명, 매국노 이완용 8월 29일은 한일강제병합늑약의 경술국치일이다. 1910년 그때부터 124년이 흐른 2024년의 대한민국이 그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독도 문제에 당당하지 못하고 일본의 논리에 부응하며 꼬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처리수라고 홍보하며 세금까지 낭비하고 있다. 그뿐인가? 사도광산까지 일본의 행태에 들러리 서서 감싸고 변명까지 해주는 친일 매국 정치 모리배들이 득세하고 있다.이 사도광산의 ‘강제성 문제’에 대해서 일본 관방장관 하야시 요시마사가 강제노동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방안을 한국이 수용했다고 하자, 정부는 ‘외교상 오고 간 얘기에 자세한 답변은 삼가겠다’고 했다. 일본이 무서워서인지, 좋아서인지 참..

칼럼 2024.08.26

보성 서재필 기념공원 독립문 소나무

보성 서재필 기념공원 독립문 소나무 보성강이 주암호를 들어가는 들머리의 문덕교를 지나면 순천과 보성으로 나뉘는 삼거리이다. 여기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길 8에 독립문이 우뚝 서 있으니, 바로 서재필기념공원이다.봄맞이 입춘 아침, 대문에 써 붙이던 입춘문 ‘입춘대길 건양다경’은 봄을 맞아 집안의 길함과 황제의 나라에 큰 경사가 두루 있기를 바라는 세시풍속이다.고종이 1896년 중국의 연호를 버리고 황제가 되어 연호를 건양이라 하였다. 중국의 연호를 쓰던 조선 개국 5백 년에 처음 맞는 당당함이지만, 이미 나라는 기울어지는 달이었다. 이듬해인 1897년 나라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황제즉위식까지 가졌지만, 이 역시 이름뿐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백성들은 첫 황제 연호 건양을 기려 새봄맞이에 자랑스레 대문..

금강산 건봉사 불이 팽나무

금강산 건봉사 불이 팽나무 금강산은 우리 땅이지만 지금은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땅이다. 하지만 산줄기야 그대로이니, 고성군 건봉산의 건봉사는 금강산의 절이다. 이 건봉산은 ‘금강산 감로봉’ 산자락으로 6·25 한국전쟁을 거치며 ‘건봉산’이 되었다. 안석경의 금강산 기행기 ‘동행기’(東行記)에 이 감로봉의 이름이 나온다.안석경(1718~1774)은 강원 원주에서 태어난 주선 후기의 문인이다. 당시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과거에 3차례 낙방한 뒤 강원도 횡성 삽교에서 은거 생활을 했다. 상인의 움직임이나 민중적 항거 등이 생동감을 주는 ‘삽교만록’ 그리고 ‘삽교집’, ‘삽교예학록’ 등의 책을 썼다.그의 금강산 기행기 ‘동행기’는 원주 안산을 나선 1761년 4월 1일부터 5월 13일까지 41일..

수원 화성유수 서유구 굽은 소나무

수원 화성유수 서유구 굽은 소나무 서유구(1764~1845)의 본관은 달성이고 자는 준평, 호는 풍석(楓石)이다. 영국의 브리태니커 사전에 맞먹는 어쩌면 더 대단한 ‘임원경제지’를 엮었다. 스스로 유배를 자청하기도 했고 호를 오비거사라 했다.오비는 ‘다섯 가지를 낭비한 삶’이란 뜻이다. 학문을 익혔으나 터득한 것이 없고 벼슬살이에 홀려 배운 것을 모두 잊었다. 마치 ‘도끼를 잡고 몽치를 던지는 수고’이니 첫 번째 낭비이다.관리가 되어 온 힘을 다해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눈이 흐릿하게 되는 수고를 했지만, 더 나아가지 못했으니 두 번째 낭비이다. 농법을 익혔지만 ‘일만 가지 인연이 기왓장 깨지듯 부서졌으니’ 세 번째 낭비이다. 여러 벼슬을 지냈으나 군은에 보답 못 하고 ‘물에 뜬 거품처럼 환몽 같으니’ ..

진주 성주 김시민 모과나무

진주 성주 김시민 모과나무 용장이자 맹장인 충무공 김시민은 1592년 4월 조선 해협을 건너와 7년여 미쳐 날뛰던 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592년 10월, 조선을 장악한 왜가 호남의 곡창을 탐낼 때이다. 김시민은 진주성에서 왜의 호남진출을 막아 조선을 지키고, 약탈과 살육의 고통에서 백성을 지켰다. 그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탄을 맞고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다 눈을 감으니 서른여덟이었다.진주성 전투를 앞두고 김시민이 병사들에게 한 말이다.‘나는 마땅히 충의를 맹세하고 진주를 지켜 국가 중흥의 근본으로 삼을 것이니 힘을 합쳐 싸우면 천만의 섬 오랑캐인들 무엇이 두려우랴. 나의 엄지는 이미 떨어지고, 식지와 장지로 활을 당기다 남은 세 손가락마저 떨어질 때까지 싸우리라.’김시민은 ..

고흥 발포성 이순신 오동나무

고흥 발포성 이순신 오동나무 이순신이 어린 시절에 살던 한양 마른내골은 건천동이다. 이곳에 사대부 자제의 교육기관인 네 개의 사학 중 동학이 있었다. 이곳에 살게 된 것은 아버지 이정의 희신, 요신, 순신, 우신 등 네 아들에 대한 향학 염원으로 여겨진다. 건넛마을은 구리개이다. 지금의 을지로 들머리인 이곳은 흙빛이 누런 구리색의 얕은 언덕이었다. 이 구리개 동현마을에 조선 시대 병사들의 무술 및 병서, 전투대형 등을 가르치던 훈련원이 있었다. 이순신의 해박하고 능숙한 글솜씨, 어린 시절 병정놀이를 지휘하던 대장이었던 것은 이 두 마을의 영향이리라.이순신은 29살이던 1573년 별시 무과는 뜻하지 않은 낙마로 낙방했다. 3년을 더 기다려 1576년 2월 식년시 무과에 급제하여 어린 시절 놀러 다녔던 구리..

강진 백운동천 이담로 뽕나무

강진 백운동천 이담로 뽕나무 월출산이 영암의 산이냐, 강진의 산이냐? 영암에서 아름답냐, 강진에서 더 아름답냐? 는 말은 그저 월출산의 아름다움과 신령스러움을 말이나 글로써 다할 수 없음이다. 그뿐인가? 천황봉에서 사해를 눈에 두면 지리산 끝자락과 바다 건너 한라산이니 바로 제황의 위엄이다.백두대간의 돛대인 지리산에서 광주의 무등산과 순천의 조계산, 그리고 영암의 월출산을 이어보면 마치 다이아몬드 모양이다. 또 지리산이 머리이고 무등산과 조계산이 두 젖무덤이니, 당연히 월출산은 두 젖이 키운 용이다. 이 용이 달을 여의주로 입에 물고 한반도 남서해에서 대양을 향해 날아오른다. 더하여 월출산은 달을 낳는 산이고 달이 오르는 산이다. 맑거나 운무가 흐르고 구름이 가려도, 비 흩뿌리고 눈 날려도, 봄, 여름,..

여행을 가자

여행을 가자 여름 휴가철이다. 우리 한국은 기후 특성상 대략 7월 초순에서 8월 하순까지가 휴가 적기이다. 이 시기에 후덥지근한 장마가 오락가락하고 틈새에 숨이 훅 막히는 뙤약볕에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마냥 덥다는 짜증과 비싼 전기료 에어컨이 한여름 불볕더위를 해결해 주진 않는다.아무튼, 왁자지껄 매미 소리에 눈꺼풀이 무거워져 고개를 꾸벅이는 이때에 앞산 한 가닥 솔바람과 뒤 바다 짭조름한 해풍 맞이 여행을 가자. 칼로 무 자르듯 결단을 내리자. 지난 세월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나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자. 무엇보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으면 무조건 보내자. 여행 경비는 두 눈 척 감고 따지지 말자. 일생에 딱 한 번 자신을 위하는 거라고 치부하고, 자녀에겐 유산 상속을 미리 해준다..

칼럼 2024.07.15

남원 광한루원 춘향 버드나무

남원 광한루원 춘향 버드나무 춘향은 봄의 향기이니 향기로운 봄이다. 민들레건, 장다리건 눈 감으면 그 봄꽃 향기에 나풀나풀 나비가 난다. 남원은 봄의 고을이다. 그 남원 광한루원의 꽃과 나비는 또 춘향이다.월매는 남원부의 관기로 한여름이면 여뀌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요천가에 살았다. 1595년 딸을 낳아 옥녀라 했다. 옥구슬처럼 예쁜 옥녀는 1610년 15살에 계례를 치르고 춘향이라는 자를 받았다. 봄의 향기이자 향기로운 봄의 처자 춘향은 어머니를 따라 관기로 입적되었다.그 해 단옷날이다. 요천강 강가 능수버들에 그네가 걸렸다. 춘향과 몸종인 향단이는 요천강으로 나갔다. 그네 위 춘향이의 연분홍 치마가 바람에 펄럭이니 올라갈 땐 제비요, 내려올 땐 나비였다. 이때 춘향의 모습을 지켜보는 소년은 남원부사 ..

산청군 남사예담촌 이윤현 향나무

산청군 남사예담촌 이윤현 향나무 지리산의 동쪽 한 줄기가 내려와 살그머니 발을 멈추니 단성면의 니구산이다. 역시 단성면 청계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계곡물이 이 니구산에서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사수천(남사천)이다. 그리고 남강으로 들어가며 만든 반달 모양의 텃밭이 사월리(沙月里)이다. 위쪽은 위니까 상사월, 아래는 남쪽이니 남사월, 합쳐서 남사촌이다.니구산과 사수천은 공자의 고향 산동 곡부의 뒷산과 그곳 사수현에서 비롯된다. 남사예담촌의 예담은 옛담, 예를 갖춰 나그네를 맞는 담이니, 마을의 한옥에서 예와 효의 기풍이 느껴지는 연유이다. 또 그 전통은 엄격하고 딱딱함이 아니다. 고샅길을 싸목싸목 걸으면 마치 어머니 품의 평화, 외갓집의 그리움이 새록새록이다. ‘아무개야!’ 부르면 ‘응, 나갈게!’ 친구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