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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오성산 의병장 최경운 나무

화순 오성산 의병장 최경운 나무 화순 만연산에서 흘러온 만연천과 삼천이 만든 삼천리(화순읍 상삼2길 31)의 의병청지(址)는 호남 의병군을 이끈 역사의 터이고 금산, 진주 전투 등의 승전 토대가 된 곳이다. 여기 의병청지는 해주 최씨인 최경운, 최경장, 최경회 삼 형제가 주역이다.해주 최씨의 시조는 최온이다. 아들 최충(984~1068)은 고려 중서문하성의 수상직인 문하시중이었고 ‘9제학당’을 설립하여 공자에 견줄 만하다는 ‘해동공자’이다. 영암에 살던 15세손 최윤범이 화순에 승지공파 종가를 열었고, 손자인 최경운(?~1596), 최경장(1529~1601), 최경회(1532~1593) 삼 형제는 임진왜란의 의병장이자, 명장이다.1592년 왜란에 삼 형제는 화순 삼천리에 의병청을 설치하고 병사·전마·군량..

체코 프라하의 봄 나무

체코 프라하의 봄 나무 봄은 사계절의 처음이고, 마주 보거나 같이 봄이며, 민주화의 상징이다. 이는 봉건사회, 제국주의에 맞서 반봉건, 반외세를 지향하는 시민혁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흐르는 ‘비스와강’ 가에 칼을 든 인어상이 있다. 오래전, 이 비스와강에서 그물에 걸린 인어를 어부가 살려주었기에 인어는 도시의 상징이었다.1944년 8월 1일, 나치에 신음하던 시민들은 또다시 소련군이 온다는 소식에 봉기했다. 이날 앞장섰던 시인이자 작가인 24살 ‘크리스티나 크라헬스카’가 독일 진압군 다섯 발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비스와강 인어상의 얼굴은 바로 그 여성이고, ‘바르샤바 봄’의 상징이다.1956년 10월 23일 시작돼 17일 만에 진압된 헝가리 혁명의 또 다른 이름은 ‘부다페..

합천 해인사 학사대 최치원 나무

합천 해인사 학사대 최치원 나무 가야산 해인사에 들렀으나, 다시 볼 수 없는 나무가 있으니 이 또한 세월의 무상함이다. 어린 시절 해인사에 다녀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은 거라면 아마도 팔만대장경과 최치원의 지팡이 나무일 것이다. 어쩌면 둘 다 신비로움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그 첫 신비로움인 팔만대장경의 판목은 주로 산벚나무와 후박나무이다. 이를 바닷물에 담갔다 말리고 소금물에 찌고 그늘에 말리기를 반복했다. 또 벌레나 썩는 걸 방지하기 위해 옻칠을 했다. 3년여가 지나 똑같은 크기로 잘라 대패질로 결을 다듬었다. 원고를 써서 목판에 뒤집어 붙이고 한 자 한 자 조심스럽게 새겼다. 경판의 양쪽에 두꺼운 테두리를 대고 네 귀퉁이에 다시 구리판을 대었다. 다음은 보관이다. 먼저 계절에 따른 가야산 바람에 ..

강진 전라병영성 보부상 소나무

강진 전라병영성 보부상 소나무 강진군 병영은 전라병영성에서 얻은 이름이다. 고려 말 이후 잦아진 왜구의 노략질을 막고 토벌키 위해 광주목(광주광역시)의 전라병영을 도강현(강진)으로 옮겼다.광주의 전라병영은 지금의 광주비행장이 있는 송정리 고내상과 용보 마을에 있었다. 고내상은 병영의 성터라는 ‘고내성’의 성이 상으로 바뀌었고, 용보는 황룡강의 봇도랑이 마을 한가운데로 흘러서 얻은 이름이다. 지금도 황룡강과 가까운 용보 마을의 ‘성내, 성안엣들’, 바깥쪽인 서쪽 ‘성너맷들’의 옛 이름이 남아 있다.이 고내상리의 병영이 조선 태종 17년(1417)에 강진으로 옮겼는데, 초대 병마절도사 마천목이 축조했다. 이때 마천목이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을 따라 성벽을 만들어서 ‘설성’이라고 불렀다. 또 ‘세류성’이라고도 ..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북한강은 북쪽 지명으로 강원도 금강군 신읍리, 남쪽 지명으로 강원도 회양군 사동면 신흥리에서 발원한다. 가볼 수도, 물어볼 수도 없으니 딱히 발원지 샘 이름을 알 수 없고, 위치도 옛 지도나 택리지, 대동여지도 등으로만 들여다보니, 그저 대강 짐작할 뿐이다. 다만 강원도와 함경도를 나누어 북쪽을 관북, 동쪽을 관동이라 하는 높이 685m의 북쪽 철령과 동쪽의 그리운 금강산, 남쪽의 단발령 등 삼각형 터에서 흐르는 물이 북한강 발원수구나 한다.1618년이다.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서인에 반대하던 백사 이항복이 함경남도 북청군으로 유배 가며 철령을 넘었다. 이때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 삼아 띄워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라는..

홍장원과 곽종근

홍장원과 곽종근 현대사를 역동적으로 움직여 인구에 회자 되는 말이 있다. 먼저 20세기의 개혁 개방이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선언했다, ‘낡은 체제를 고치고 세운다’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 최초의 민주화였다. ‘개방’ 또는 ‘투명성’의 글라스노스트는 정부의 정보 공개와 언론 통제 완화 정책이다. 이 글라스노스트는 전 세계의 호응을 받았으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자국의 경제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의 결정적인 이유이고 동유럽 민주화와 냉전 종식에 이바지했다.또 한 세기의 중국을 살려냈다며 백년소평 칭송을 받은 덩샤오핑의 ‘검든 희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1979년의 ‘흑묘백묘’ 역시 개혁과 개방이다. 그렇게 낡은 것을 ..

칼럼 2025.02.07

부안 격포 적벽강 수성당 팽나무

부안 격포 적벽강 수성당 팽나무 동해는 침강하고 서해는 융기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라북도 김제의 원평천은 330년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의 수원이었다. 이 원평천은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에서 발원하여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에서 동진강을 만나 서해로 들어간다. 이곳 58.1m의 명량산에 해창 포구의 배 밧줄을 묶던 계류석이 있다.누에를 닮아 누에산이라고도 하는 이 명량산의 전설이 있다. 명량산은 부안 계화도의 형제산이었다. 어느 해 홍수에 아우산이 이곳까지 왔다. 그 뒤 계화도의 형이 그리울 때면 엉엉 울었다. 그래서 울엉산인데 한자로 옮기며 울명, 어질량이 되었다.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도 바닷물이 우는 목인데 한자로 옮기며 울명, 들보량이니 하나는 산, 하나는 해협이름이다.그런데 예전 조기 파시인 5~..

호위무사

호위무사 호위무사는 고대 중국에서 주로 귀족이나 왕족을 보호하던 뛰어난 무술 실력에 충성심과 용기를 갖춘 전사이자 그 상징이었다. 또 주군에게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는 일본의 사무라이 역시 호위무사였다. 그리고 오늘날 유명인사 등 특정인을 보호하는 경호원들도 의뢰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호위무사라 할 수 있다.거란족의 요나라가 고려를 침공한 세 차례의 대규모 침공 중 1010년의 제2차 여요전쟁 때이다. 이때 함경남도 금야군 영흥의 통주 전투에서 강조가 거란군에 패배하고 서경인 평양이 위태롭자, 현종은 오늘날의 대령급인 중랑장 지채문에게 서경 방어 명령을 내렸다.지채문은 항복론이 우세한 서경에서 동북면의 탁사정 군대와 함께 대승을 거두었으나 역부족으로 개경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칼럼 2025.02.03

남원 한우물 저존제 양대박 소나무

남원 한우물 저존제 양대박 소나무 섬진강이 임란 의병장의 마을 옥과 합강리를 내려가면 곡성 동악산(735m) 북쪽 계곡인 청계계곡이다. 이곳은 임란 의병장 양대박(1544~1972) 유적지다.남원에서 부유하게 살던 양대박은 가산을 정리하여 이곳 곡성 청계동에 정자 9동, 안채 2동, 노비 살림집 14동 등 총 25동의 건물을 짓고 둔전마을을 일궜다. 군량미, 병기와 군복 등 군수품을 비축하여 장차 왜란에 대비하였다.계곡 들머리에서 물길을 따라 1.5Km쯤 오르면 폭포석당이고 500m쯤 위쪽은 집곳, 사시암골이라고도 했던 사수석당이다. 두 곳 석당 이름은 떨어지는 물이 암반에 못을 만든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 일대에 양대박이 둔전마을을 일군 임란 이후부터 1950년 무렵까지 농가와 전답, 자두과수원이 있..

경남 하동읍성 신진 팽나무

경남 하동읍성 신진 팽나무 하동은 섬진강의 동쪽 고을이어서 얻은 이름이다. 해 뜨는 동쪽에 덕천강, 그 해를 받는 서쪽에 섬진강을 끼고 남원, 함양, 산청, 진주, 사천, 남해, 광양 여수 등과 이웃하는 뭇 고을의 중심지이다. 여기 하동읍성은 고전면의 그리 높지 않은 양경산(149m)에 쌓은 산성이다. 조선 태종 17년(1417) 해안에 쌓은 연해읍성이자 석축성이다. 계곡을 감싸듯 쌓은 마름모꼴의 성 아래 주교천에는 배가 드나들었다. 배다리(배드리)는 그때의 이름이고, 1980년대까지도 하동의 가장 큰 5일장이었다.정유재란인 1597년 7월 16일이다. 이순신이 없는 원균의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어이없이 무너졌다. 판옥선 한 척으로 왜 함대를 물리친다는 조선수군이 사라지자, 왜군은 고성, 사천,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