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 108

화순 오성산 의병장 최경운 나무

화순 오성산 의병장 최경운 나무 화순 만연산에서 흘러온 만연천과 삼천이 만든 삼천리(화순읍 상삼2길 31)의 의병청지(址)는 호남 의병군을 이끈 역사의 터이고 금산, 진주 전투 등의 승전 토대가 된 곳이다. 여기 의병청지는 해주 최씨인 최경운, 최경장, 최경회 삼 형제가 주역이다.해주 최씨의 시조는 최온이다. 아들 최충(984~1068)은 고려 중서문하성의 수상직인 문하시중이었고 ‘9제학당’을 설립하여 공자에 견줄 만하다는 ‘해동공자’이다. 영암에 살던 15세손 최윤범이 화순에 승지공파 종가를 열었고, 손자인 최경운(?~1596), 최경장(1529~1601), 최경회(1532~1593) 삼 형제는 임진왜란의 의병장이자, 명장이다.1592년 왜란에 삼 형제는 화순 삼천리에 의병청을 설치하고 병사·전마·군량..

체코 프라하의 봄 나무

체코 프라하의 봄 나무 봄은 사계절의 처음이고, 마주 보거나 같이 봄이며, 민주화의 상징이다. 이는 봉건사회, 제국주의에 맞서 반봉건, 반외세를 지향하는 시민혁명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흐르는 ‘비스와강’ 가에 칼을 든 인어상이 있다. 오래전, 이 비스와강에서 그물에 걸린 인어를 어부가 살려주었기에 인어는 도시의 상징이었다.1944년 8월 1일, 나치에 신음하던 시민들은 또다시 소련군이 온다는 소식에 봉기했다. 이날 앞장섰던 시인이자 작가인 24살 ‘크리스티나 크라헬스카’가 독일 진압군 다섯 발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비스와강 인어상의 얼굴은 바로 그 여성이고, ‘바르샤바 봄’의 상징이다.1956년 10월 23일 시작돼 17일 만에 진압된 헝가리 혁명의 또 다른 이름은 ‘부다페..

합천 해인사 학사대 최치원 나무

합천 해인사 학사대 최치원 나무 가야산 해인사에 들렀으나, 다시 볼 수 없는 나무가 있으니 이 또한 세월의 무상함이다. 어린 시절 해인사에 다녀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은 거라면 아마도 팔만대장경과 최치원의 지팡이 나무일 것이다. 어쩌면 둘 다 신비로움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그 첫 신비로움인 팔만대장경의 판목은 주로 산벚나무와 후박나무이다. 이를 바닷물에 담갔다 말리고 소금물에 찌고 그늘에 말리기를 반복했다. 또 벌레나 썩는 걸 방지하기 위해 옻칠을 했다. 3년여가 지나 똑같은 크기로 잘라 대패질로 결을 다듬었다. 원고를 써서 목판에 뒤집어 붙이고 한 자 한 자 조심스럽게 새겼다. 경판의 양쪽에 두꺼운 테두리를 대고 네 귀퉁이에 다시 구리판을 대었다. 다음은 보관이다. 먼저 계절에 따른 가야산 바람에 ..

강진 전라병영성 보부상 소나무

강진 전라병영성 보부상 소나무 강진군 병영은 전라병영성에서 얻은 이름이다. 고려 말 이후 잦아진 왜구의 노략질을 막고 토벌키 위해 광주목(광주광역시)의 전라병영을 도강현(강진)으로 옮겼다.광주의 전라병영은 지금의 광주비행장이 있는 송정리 고내상과 용보 마을에 있었다. 고내상은 병영의 성터라는 ‘고내성’의 성이 상으로 바뀌었고, 용보는 황룡강의 봇도랑이 마을 한가운데로 흘러서 얻은 이름이다. 지금도 황룡강과 가까운 용보 마을의 ‘성내, 성안엣들’, 바깥쪽인 서쪽 ‘성너맷들’의 옛 이름이 남아 있다.이 고내상리의 병영이 조선 태종 17년(1417)에 강진으로 옮겼는데, 초대 병마절도사 마천목이 축조했다. 이때 마천목이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을 따라 성벽을 만들어서 ‘설성’이라고 불렀다. 또 ‘세류성’이라고도 ..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북한강은 북쪽 지명으로 강원도 금강군 신읍리, 남쪽 지명으로 강원도 회양군 사동면 신흥리에서 발원한다. 가볼 수도, 물어볼 수도 없으니 딱히 발원지 샘 이름을 알 수 없고, 위치도 옛 지도나 택리지, 대동여지도 등으로만 들여다보니, 그저 대강 짐작할 뿐이다. 다만 강원도와 함경도를 나누어 북쪽을 관북, 동쪽을 관동이라 하는 높이 685m의 북쪽 철령과 동쪽의 그리운 금강산, 남쪽의 단발령 등 삼각형 터에서 흐르는 물이 북한강 발원수구나 한다.1618년이다.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서인에 반대하던 백사 이항복이 함경남도 북청군으로 유배 가며 철령을 넘었다. 이때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 삼아 띄워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라는..

부안 격포 적벽강 수성당 팽나무

부안 격포 적벽강 수성당 팽나무 동해는 침강하고 서해는 융기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라북도 김제의 원평천은 330년에 축조된 김제 벽골제의 수원이었다. 이 원평천은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에서 발원하여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에서 동진강을 만나 서해로 들어간다. 이곳 58.1m의 명량산에 해창 포구의 배 밧줄을 묶던 계류석이 있다.누에를 닮아 누에산이라고도 하는 이 명량산의 전설이 있다. 명량산은 부안 계화도의 형제산이었다. 어느 해 홍수에 아우산이 이곳까지 왔다. 그 뒤 계화도의 형이 그리울 때면 엉엉 울었다. 그래서 울엉산인데 한자로 옮기며 울명, 어질량이 되었다.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도 바닷물이 우는 목인데 한자로 옮기며 울명, 들보량이니 하나는 산, 하나는 해협이름이다.그런데 예전 조기 파시인 5~..

남원 한우물 저존제 양대박 소나무

남원 한우물 저존제 양대박 소나무 섬진강이 임란 의병장의 마을 옥과 합강리를 내려가면 곡성 동악산(735m) 북쪽 계곡인 청계계곡이다. 이곳은 임란 의병장 양대박(1544~1972) 유적지다.남원에서 부유하게 살던 양대박은 가산을 정리하여 이곳 곡성 청계동에 정자 9동, 안채 2동, 노비 살림집 14동 등 총 25동의 건물을 짓고 둔전마을을 일궜다. 군량미, 병기와 군복 등 군수품을 비축하여 장차 왜란에 대비하였다.계곡 들머리에서 물길을 따라 1.5Km쯤 오르면 폭포석당이고 500m쯤 위쪽은 집곳, 사시암골이라고도 했던 사수석당이다. 두 곳 석당 이름은 떨어지는 물이 암반에 못을 만든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 일대에 양대박이 둔전마을을 일군 임란 이후부터 1950년 무렵까지 농가와 전답, 자두과수원이 있..

경남 하동읍성 신진 팽나무

경남 하동읍성 신진 팽나무 하동은 섬진강의 동쪽 고을이어서 얻은 이름이다. 해 뜨는 동쪽에 덕천강, 그 해를 받는 서쪽에 섬진강을 끼고 남원, 함양, 산청, 진주, 사천, 남해, 광양 여수 등과 이웃하는 뭇 고을의 중심지이다. 여기 하동읍성은 고전면의 그리 높지 않은 양경산(149m)에 쌓은 산성이다. 조선 태종 17년(1417) 해안에 쌓은 연해읍성이자 석축성이다. 계곡을 감싸듯 쌓은 마름모꼴의 성 아래 주교천에는 배가 드나들었다. 배다리(배드리)는 그때의 이름이고, 1980년대까지도 하동의 가장 큰 5일장이었다.정유재란인 1597년 7월 16일이다. 이순신이 없는 원균의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어이없이 무너졌다. 판옥선 한 척으로 왜 함대를 물리친다는 조선수군이 사라지자, 왜군은 고성, 사천, 남해,..

담양 면앙정 송순 상수리나무

담양 면앙정 송순 상수리나무 조선의 큰 선비이고 시조와 가사를 반석에 올린 대문호이자 정치가인 송순은 1493년 담양군 봉산면 기곡리 상덕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마을 이름은 두모곡이었다. 송순이 대여섯 살의 어릴 때다. 문득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곳에 사는지가 궁금해 아버지께 여쭈었다.“아버님! 우리가 언제부터 이곳에 살았어요?”“우린 신평 송씨다. 시조는 구자, 진자, 송구진이시다. 우리 시조는 충청남도 신평에서 4대까지 살았다. 그리고 5대조 ‘희’자, ‘경’자, 송희경 할아버님이 전라남도 추성, 지금의 담양으로 이주해오셨다.”이날 송순은 자신이 신평 송씨 시조 송구진의 10세손이라는 것도 알았다.‘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송순은 영특했다. 3세 때부터 글을 읽을 줄 알았다. 보..

순천 송천사 김대인 멀구슬나무

순천 송천사 김대인 멀구슬나무 순천과 여수, 고흥에 첨산(尖山)이 있다. 순천 별량과 여수시 화치동, 고흥 동강의 송곳처럼 뾰족한 3개의 산이 그것이다.김대인은 조선 왜란 7년전쟁의 용장이자, 맹장이다. 순천시 별량면 첨산 아래의 송천사는 김대인, 김일손, 김치모를 배향한 사우이고 뒷산에 묘가 있는데, 들머리에 두어 아름의 멀구슬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그리고 송천사가 있는 별량의 첨산이 이 삼각형의 꼭짓점이다.김대인은 이 별량 첨산 아래에서 통덕랑 김유손의 아들로 태어났다. 또 송천사에 함께 배향된 탁영공 김일손은 작은 아버지이다. 그렇게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김대인은 어린 시절 자신이 서출이란 걸 알고 지리산 칠불사로 들어가 해공대사에게 불도와 무예를 배웠다. 신분을 속이고 무과에 응시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