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표충비각 사명대사 향나무
밀양시 무안면에는 호국불교, 의승병의 상징인 사명대사 유정의 탄생지가 있다. 그리고 탄생지 들머리에 조선시대에 지은 홍제사와 그를 기리는 표충각과 표충비각이 있다.
사명대사는 중종 39년(1544) 10월 17일 풍천 임씨 임수성의 둘째 아들로 밀양 무안면 고라리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유정,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 종봉, 송운 등이고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이다. 증조할아버지 임효곤은 문과 급제로 장악원정을 지냈고, 할아버지 임종원도 문과 급제로 강계부사를 지냈다. 이곳 고라리에 생가와 유적지 기념관이 있다.
다음은 1594년 9월 사명대사가 선조 임금에게 올린 상소문의 내용이다.
‘신은 풍천임씨의 후예로서 조부 때 영남 밀양에 이적하여 밀양부민이 되어 살았는데 불행하게도 신의 나이 15세 때에 어머니를 여의고 연달아 16세 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거목무친이요, -중략- 부평초 같은 신세가 되어 산림에 들어가서 생애를 운조와 함께 하였습니다.’
이로 보아 사명대사가 김천 황악산 직지사 신묵화상의 제자가 되어 불경과 학문에 정진한 계기를 알 수 있다. 당시 조선의 정책은 억불숭유였으나, 임진왜란에 불교의 호국 의승병은 나라를 구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고 그 중심인물이 바로 사명대사 유정이다.
밀양 무안면 홍제사는 사명대사가 창건한 백하암 터이고, 사명대사를 모신 사당인 표충각과 사명대사의 표충비각을 보호하는 사찰이다. 표충각에는 서산, 사명, 기허대사의 진영이 있고, 표충비각의 표충비는 영조 18년(1742)에 사명대사의 5대 법손 남붕이 세웠다. 경북 경산에서 가져온 높이 2.7m, 폭 0.96m, 두께 0.5m의 돌에 사명대사의 사적을 새겼다.
밀양 단장면에도 표충사가 있다. 헌종 5년(1838)에 사명대사의 8세손인 천유가 밀양부사 심의복의 도움으로 새로 세운 사찰인데, 사당 표충사와 표충서원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홍제사의 첫 사당 표충각에 있던 표충비는 땀을 흘리는 ‘한출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94년 동학농민 항쟁을 시작으로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945년 8·15 해방, 1950년 6·25 전쟁, 1985년 남북고향 방문과 2008년 FTA 소고기협상,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침몰, 2017년 대통령 탄핵심판 시에 땀흘림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9년 11월 18일 새벽 4시부터 오전 9시경에도 1리터가량 땀을 흘렸다. 사람들은 이 땀방울을 나라와 겨레를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고 생각한다. 또 신비하게도 이 땀방울은 글자의 획 안, 머릿돌이나 받침돌에는 맺히지 않는다.
여기 홍제사 표충비각 앞에 커다란 양산을 펼쳐놓은 듯한 향나무가 있다. 이렇듯 옆으로 퍼지며 자라는 향나무를 앉은향나무, 뚝향나무라고 한다. 이는 저수지나 밭둑의 토양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심었기에 얻은 이름이다.
이 양산처럼 둥근 뚝향나무는 1742년 사명대사의 5대 제자 남붕선사가 표충비를 세우고 기념으로 심었다.
1610년 8월 26일 해인사 홍제암에서다. 사명대사는 모든 승려에게 ‘네 가지 요소(地,水,火,風)’로 이루어진 이 육신은 이제 진(眞)으로 돌아가려 한다. 무엇하여 번거로이 오고가고 하면서 이 허깨비 몸을 괴롭히겠는가. 나는 지금 죽음에 들어 자연의 큰 조화에 순응하려 한다.’며 시자에게 몸을 씻게 하고 조용히 앉아 열반에 들었다. 세속나이 67세, 법납은 53년 3개월이었다. 문득 표충비각 앞의 향나무가 향불처럼 여겨진다. 저절로 두 손이 모아지고 허리가 굽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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