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휴천면 목현마을 정대영 구송
휴천은 이름처럼 내가 쉬는 곳이다. 물길이 흐름을 멈출 리 없지만, 먼 길 가는 나그네에게 잠시의 쉼은 삶과 숨의 여유와 낭만일 게다. 여기 휴천면의 나뭇골인 목현마을에 가지가 아홉이어서 구송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자태의 소나무가 있다. 세월이 흐르며 가지 둘이 없어졌다지만 그런들 어쩌랴? 본디 이름이란 불리우고 남겨지면서 의미가 깊어지는 것이다.
여기 휴천면을 만든 지리산은 ‘방장’, ‘두류’라는 이름도 있다. 백두산 줄기가 흐르는 곳, 머무는 곳이어서 두류이다. 또 방장은 신선이 살고 불사의 영약이 있으며 뭇 짐승이 모두 흰빛, 궁전은 금은으로 지어졌다는 봉래, 영주와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이다.
바로 그 지리산이 흐르는 곳, 잠시 머무는 곳을 지키는 휴천면 목현마을의 구송은 반송인데, 이는 나뭇가지가 옆으로 퍼져 마치 밥상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반송이 일반 소나무와 다른 점은 원줄기가 지면 가까이에서 3개 이상으로 갈라지는 것이라 한다. 일본반송은 지면에서 조금 올라와 갈라지고, 나무껍질이 검으면 곰반송이다.
지리산의 서쪽 물줄기는 섬진강으로 가고 동쪽 물줄기는 낙동강으로 간다. 남원의 요천은 섬진강으로 가지만, 남원 운봉의 세걸산 아래 금샘에서 솟구친 람천은 낙동강으로 간다. 이성계의 황산대첩 때 왜구의 피로 이레 동안 핏빛이었다지만, 람천은 이름처럼 쪽빛 맑은 물로 그냥 떠서 마시는 식수였다.
이 람천이 지리산 천왕봉이 환히 보이는 마천면에서 임천이 되고, 휴천면의 기암괴석이 즐비한 용유담에 이르러 엄천이 된다. 엄천은 ‘엄천사’라는 큰 절집이 있어서 얻은 이름이라 한다. 이 엄천이 흐르는 문하마을에는 마치 용이 누워있는 듯 우람한 용바위 와룡대가 있다. 정여창과 김일손이 ‘가히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 하여 가거동이라 했는데, 소나무와 어우러진 용바위를 보며 바둑을 두는 신선도 함께 사는 곳이구나 한다.
이 용바위를 지나 곧바로 꺾인 물길이 모래를 쌓아 만든 섬은 새우섬이다. 여기 한남마을은 세종대왕의 서자인 한남군 이어(1429~1459)가 세조 때 단종 복위 실패로 유배 온 곳이다. 마을 이름이 한남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듯 지리산의 흐름이 잠시 머무는 휴천면은 인심이 순후한 석학과 유림의 고장으로 빼어난 인물이 향토를 빛냈다. 목현리 아홉 가지 구송을 심은 정대영은 헌종 4년(1838~1903)에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3년의 시묘살이를 했다. 향약계를 조직하여 향장으로 마을의 부흥에 힘썼고 예법과 경전을 강의하여 후진 양성에 헌신하였다.
진양 정씨가 이곳 함양에 자리 잡은 것은 성종 19년에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정희보(1488~1547) 때다. 정희보는 17살에 나주박씨인 박맹지(1426~1492)의 손녀와 혼인하고 수동면 당곡의 처가로 왔다. 그의 호가 당곡인 연유이다. 또 그의 후학으로 노진, 이후백, 양희, 소세양, 강익, 오건, 임희무, 변사정, 정복현, 노관, 우적, 조식, 양홍택, 정지 등 관료와 의병장, 학자 등이 있으니, 함양 고을의 학풍은 정희보에서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이 정희보의 후손인 정대영(1838~1903)은 아홉 가지 구송을 심고 나무 아래 대(坮)를 쌓아 구송대라 하였다. 아름다운 반송 그늘은 귀한 손님을 맞을 때나 떠나보낼 때 ‘영접과 환송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 구송대 옆 냇물에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하니 그 풍경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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