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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절골 박상 소나무

광주 절골 박상 소나무 박상은 1474년인 성종 5년에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절골에서 태어났다. 충청도 회덕에서 살던 아버지 박지흥이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고, 벼슬길을 포기한 뒤, 처가인 하동 정씨 마을로 이거 했기 때문이다. 호가 눌재인 박상은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선비이자,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정의로운 공직자로, 숱한 일화를 남겼다. 연산군 시절이다. 이때에 미녀와 좋은 말을 구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한 관리로 채홍준사가 있었다. 연산군 11년인 1505년 6월에 이계동을 전라도, 임숭재를 경상도·충청도 채홍준사로 임명한 게 처음이다. 그 뒤 이들을 각지로 파견하며 우수한 실적을 올리는 자에게는 작위와 토지, 노비를 주었고, 간택된 여자 집에도 특혜를 주었다. 이때에 나주에 쇠부리, 또는..

울릉도 고조선 석향

울릉도 고조선 석향 지금부터 2,500년 전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로 노자, 공자가 도덕과 학문을 가르치고, 우리나라는 고조선 44세 구물 단군이 지린성 장춘의 백악산 아사달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랴오닝성 개원시에서 제3왕조인 장단경 아사달 시대를 연 때이다. 그렇다면 2,500년 전 울릉도는 어떠했을까? 그때 사람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울창한 향나무섬이었을 거다. 그때 뿌리내려 2,500년을 살아온 향나무가 있으니 말이다. 고조선 시대에 사할린과 왜 열도에 조몬족이 살았다. 특이하게 얼굴이 희고 온몸에 털이 많았으며 여왕이 다스렸다고 하니 모계 씨족사회였다. ‘서진’의 ‘진수’가 쓴 ‘삼국지위지동이전’의 기록이다. ‘244년 왕기가 위궁(고구려 동천왕)을 토벌하러 옥저 동해안에..

옥과 유팽로 이팝나무

옥과 유팽로 이팝나무 ‘함평천지 늙은 몸이’로 시작하는 호남가를 듣다 보면 ‘나무나무 임~실이요’에서 임과 실 사이의 박자가 9임을 알 수 있다. 제일 길게 부르는 대목인 것이다. 다음 대목은 ‘가지가지 옥과로다’이다. 그렇다. 그렇게 길게 공들여 맺은 과일이니 구슬 같은 옥과가 아니겠는가? 향기로운 과일이며 아름다운 보석이다. 하지만 옥과(玉果)가 무엇이겠는가? 나무라면 당연히 열매이지만, 사람이라면 자식 아니겠는가? 향기롭고 아름다운 자식을 원하지 않은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건 어리석음이다, 우리 인간의 한평생 가장 큰 보람은 자식을 얻어서, 더불어 살아가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키우고 가르치는 일이다.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는 임진왜란 의병장 유팽로가 태어난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

꿀벌과 함께

꿀벌과 함께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2018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산물 생산량에서 꿀벌의 기여도가 71%이다. 이렇게 70% 이상의 수분작용을 해주는 한 종류의 곤충은 벌밖에 없다. 그린피스(2017)는 이 벌의 경제적 가치를 373조 원으로 추산했다. 꽃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약 1억 년 전이다. 벌은 약 1억 5천만 년 전에 생겼다. 그렇다면 꽃보다 먼저 삶을 시작한 벌은 무엇을 먹었을까? 그때는 말벌처럼 작은 곤충을 잡아먹었던 육식 곤충이었다. 어느 날 이 벌이 꽃에 있는 작은 벌레를 잡아먹으며 꽃가루와 꿀을 먹었다. ‘야, 이거 맛있네.’ 그래서 벌의 식단이 바뀌었고, 그중 일부가 지금의 꿀벌로 진화했다. 이는 또 축복이었다. 벌의 몸에 묻은 꽃가루가 여기저기 꽃과 가루받이가 되면서 다양한..

칼럼 2023.06.08

물염적벽 김삿갓 벚나무

물염적벽 김삿갓 벚나무 화순군 이서면 동복천에 물염, 창랑, 장항, 보산 등 4 적벽이 있다. 이중 물염은 봄, 창랑은 여름, 장항은 가을, 보산은 겨울적벽이다. 이 적벽은 조선 전기 때까지는 그냥 석벽이었다. 적벽이란 이름은 1519년 기묘사화에 동복으로 유배 온 최산두(1483~1537)가 붙였다, 중국에 4 적벽이 있다. 후베의 적벽은 삼국시대 주유와 조조가 대전을 벌인 양쯔강에 있다. 소동파가 적벽부를 읊은 적벽은 황주에 있다. 또 무창과 한양까지 모두 네 곳이다. 우리나라도 금산군 부리면의 금강을 적벽강이라 하니, 이곳 깎아지른 단애 이름이 적벽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금강의 적벽보다 화순 이서 동복천의 4 적벽이 그 규모나 아름다움에서 더 빼어난다. 어디 풍광뿐일까? 지금은 물염정, 망미정, 송..

다시 껍데기는 가라

다시 껍데기는 가라 가장 좋은 세상은 어떤 곳일까? 모두가 다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세상 아닐까? 누구는 그걸 평화라고 하고 자유라고도 할 것이다. 그런데 평화는 너와 내가 좋아야 하니까 평등이 기반이다. 있는 만큼 서로 사이좋게 나누면 된다. 그래서 평화는 함께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는 너와 내가 충돌한다. 서로 먼저, 많이 차지하려고 다툰다. ‘누가 힘이 약하라 했어? 돈이 없으라 했어?’라며 눈 부라린다. 그렇게 자유는 제 눈에 안경이니 방임, 방기이다. 올해는 5·18 43주년이다. 그날 세상을 떠난 분과 유가족의 통렬한 회한, 계엄군에 짓밟히고, 옥고에 고문을 당한 부상자의 고초와 고통을 그 무엇으로 보상하랴. 이제 광주의 5·18은 대법원 확정판결, 국가기념일 제정, 국립묘지 ..

칼럼 2023.05.31

낙안읍성 이순신 푸조나무

낙안읍성 이순신 푸조나무 순천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를 두 팔처럼 벌려 남해의 뭍 섬들을 안고 품는 아름다운 고을이다. 그 남해의 여러 고을과 섬마을은 이른 봄이면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매화와 동백,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어우러진다. 하지만 왜의 침입, 그리고 재침입에 피난민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던 1597년 8월 9일이다. 순천에서 하룻밤을 지새운 이순신은 이른 아침 길을 재촉하여 낙안에 이르렀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집을 나와 오릿길에 이르도록 장군을 맞이했다. 이윽고 낙안성으로 들어서니, 성의 관리와 마을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반가워했다. 또 적에게 줄 수 없다며 불을 지른 탓에 관청과 창고가 다 타버렸다고 슬피 울었다. 군량미를 얻으러 온 이순신은 순간 온몸의 힘이 쑥 빠졌다. 하지만 마을 사..

구례 명협정 이원익 왕버들나무

구례 명협정 이원익 왕버들나무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를 비틀고 뒤집어 보는 것은, 재미라기보다 바로보기의 한 방편이 아닐까 싶다. 조선 5백 년의 여러 정승 중 백성들이 꼭 정승 호칭으로 존경한 사람은 네 분이다. 첫째가 세종 때 영의정인 황희 정승이다. 두 번째가 역시 세종 때 좌의정인 맹사성 정승이다. 서울의 고갯길 이름 ‘맹현’은 맹 정승이 거기 살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가 명종 때 영의정인 상진으로 서울의 상동 이름도 상 정승이 거기 살았기 때문이다. 네 번째가 오리 정승인 이원익이다. ‘선조의 가훈을 받들어 충효로 마음을 세우고 인과 예절로 몸을 다스리며, 형제간에 화목하고 사리사욕으로 남에게 원한을 사지 말라. 내가 죽거든 절대 후하게 장사지내지 말라. 단지 수의와 연금으로 ..

포항 구룡포 천지창조 용송

포항 구룡포 천지창조 용송 일만이천 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는 인간을 비롯 뭍 생명에게 멸족의 두려움과 멸망의 공포였다. 이 시기의 생존은 사라져버린 태양을 대신한 불이었다. 서양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뭍 생명을 살렸고, 북방민족을 살린 건 태양 안에 살며 태양과 인간을 불로 맺어준 불의 신이자, 전령사인 삼족오다. 이 삼족오를 모시고 빙하기를 견뎌온 부족이 해 뜨는 동쪽으로 아리랑 고개를 넘어 정착했으니 석기부족인 곰족이다. 뒤이어 고개를 넘어온 청동기 부족이 호랑이족이다. 이 두 부족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가 단군조선이다. 이들 후손 중 철기문화를 일으킨 부족이 예족이다. 이들은 박달나무로 만든 강한 활에 쇠활촉을 달고, 역시 쇠날을 박은 긴 창으로 한반도의 동해안과 바다를 다스렸..

초록비 녹우당의 초록빛 은행나무

초록비 녹우당의 초록빛 은행나무 초록비가 내리고 초록으로 물든 녹우당(綠雨堂)에서는 스쳐 가는 바람도 초록색이다. 또 이곳 해남 윤씨 고택의 유적·유물을 통해 한 시대의 일이 쌓여 역사가 됨을 알게 된다. 여기 연동마을의 녹우당은 1501년 윤선도의 4대 조부 윤효정(1476∼1543)이 도강 김씨와 탐진 최씨들이 살던 곳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집을 짓고 살면서 2차례의 화재가 있었다. 어느 날 윤효정의 꿈에 하얀 옷의 노인이 ‘지금의 자리는 산강수약(山强水弱)하니 자리를 옮기고 현재의 터는 못을 만들어 흰 연꽃을 심으라’고 했다. 이에 집을 옮기고 연못을 만들자 화재가 없었으며, 백련동(白蓮洞)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백련지는 그렇게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 이치로 만들어졌는데,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