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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인가 살육인가

전쟁인가 살육인가 요즈음 스나이퍼 영화를 자주 본다. 스나이퍼는 군사 용어로 저격병이다. 이 저격병은 먼 거리에서 자신을 노출 시키지 않고, 적의 주요 인물 등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스나이퍼 계열 영화 중 주인공 ‘던’으로 ‘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스’가 열연하는 ‘모스트 원티드’가 있다. 내용은 걸프전에서 비롯된다. 상관 살해 혐의로 수감됐던 던은 형 집행 장소로 가던 중에 케이시 중령에 의해 제약회사 대표인 ‘빅하트 암살 작전’에 투입된다. 빅하트를 저격할 장소는 빅하트와 대통령 영부인이 참석하는 재향군인 병원 개원식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빅하트 대신 영부인이 암살당하고, 던은 영문도 모른 채 암살범으로 몰려 군견에 쫓긴다. 누명을 벗기 위한 갖은 우여곡절 끝에 던은 사건 현장을 촬영한 테이프를 ..

칼럼 2023.10.27

영월 청령포 단종 소나무

영월 청령포 단종 소나무 평창군 북부 오대산 남쪽에서 나온 평창강과 횡성군 태기산 남쪽에서 나온 주천강이 영월 한반도지형에서 만나 서강이 된다. 이 서강이 영월읍으로 들어가기 전 검각산에서 내려온 산줄기를 만나 한 바퀴를 기라죽이 휘도니 바로 청령포이다. 또 이 서강이 곧 영월읍에서 동강을 만나 남한강의 이름을 얻는데, 이곳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이고 청령포는 그 머리다. 아니다, 잠시나마 비운의 왕 단종(1441~1457)이 머문 곳이니 봉황의 머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처 날아오르지 못했고 지금도 엎디어 있다 생각하니, 열여섯에 생을 마감한 왕의 유배지였구나 하면서 가슴이 절절하다. 1452년 11살의 단종은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재위 1년만인 1453년 10월 10일 숙..

화성 신풍루 삼정승 느티나무

화성 신풍루 삼정승 느티나무 조선 22대 왕 정조는 보위에 오르자, 아버지가 묻힌 양주 남쪽 배봉산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했다. 또 행궁인 화성을 현륭원 북쪽 팔달산에 지었다. 이 화성은 정약용이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새로운 기술로 1794년 1월에 시작하여 1796년 8월에 완공하였다. 이의 일을 봉조하, 김종수 등이 정리하니 10권 10책의 화성성역의궤이다, 이 책은 각종 공사법, 수성과 공략의 무기와 대응, 공사 기자재의 모습과 사용법, 관청의 명칭과 관원 이름, 정조의 윤음 및 각종 지시전달문과 보고문, 물품의 종류와 수량 등까지 담고 있다. 심지어 건물 격자의 모양, 축성 재료가 어느 지방 것인가? 석수 642명, 목수 335명 및 기타 일반 백성들의 이름 등 2년 8개월의..

송순 회방연 시연에 붙여

송순 회방연 시연에 붙여 한 세대가 30년이니, 이제 두어 세대 전 이야기가 되었다. 그때 손주가 아프면 할머니는 하얀 무명 자루에 쌀을 넣어 아픈 부위를 꾹꾹 눌러주고 쓸어주었다. 입으로는 중얼중얼 주문인지, 노래인지를 흥얼거렸다. 바로 잔밥 시술이다. 집안의 안 주인인 아낙은 장독대에 정화수, 부뚜막 토대에 조왕물 올려 천지신명께 두 손 비비며 빌었다. 마을 앞 당산나무에도 빌었고, 서낭당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때도 중얼중얼 주문인지, 노래인지를 흥얼거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님께 비나이다. 어디 사는 아무개의 소망’이라며 조상, 조왕, 당산, 서낭, 산신, 용왕께 빌었다. 그 기원과 소망의 중얼거림은 경문이고, 시이며,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노래이고 신과 합일하는 음률이었다..

칼럼 2023.10.14

함안 산인면 고려동 이오 자미화

함안 산인면 고려동 이오 자미화 재령 이씨는 황해도 재령군이 본관이다. 고려말 조선초의 학자 이오는 본관이 재령이며 고려 사재시(司宰寺)의 종3품 관직 사재령을 지낸 이일선의 넷째 아들이다. 성균관 진사이던 이오는 고려가 사라지자, 송도의 두문동에서 망복수의의 결의를 다지고 경남 밀양으로 내려왔다. 두문동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의 옛 지명으로 고려 성균관의 태학생 72명이 은거한 곳이다. 이들은 조선이 건국되자 이곳에 들어와 동·서쪽에 문을 세워 빗장을 걸고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당시 성균관은 국자학, 태학, 사문학 등 인문사회 3개 학과에 9백여 명, 율학, 서학, 산학 등 자연과학기술계 6개 학과에 4백여 명의 학생이 있었다. 조선 태조는 이들을 불러 자신의 집인 경덕궁에서 과장..

밀양 표충사 유정 베롱나무

밀양 표충사 유정 배롱나무 사명대사(1544~1610)의 당호는 사명당이고 법명은 유정이며 속성은 임(任), 어릴 적 이름은 응규이다. 1544년 경남 밀양에서 임수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황악산 직지사에서 승려가 되어 명종 16년(1561) 선과에 급제하였다. 묘향산 보현사의 서산대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금강산 등 각처를 다니며 수도에 전념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사명대사 유정의 운명을 바꾸었다. 스승인 휴정의 격문을 받고 금강산 건봉사에서 의승병을 일으켰다. 1593년 1월 평양성 전투에 참여하여 큰 전공을 세웠다. 그해 3월에는 서울 인근의 노원평과 우환동, 수락산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때 74세의 휴정이 자신의 직함인 팔도도총섭의 직함을 유정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

칼럼 2023.10.06

웃퍼서

웃퍼서 한껏 슬프면 꺼이꺼이 소리도 절로, 눈물도 절로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울음도 잊으니, 골수에 슬픔이 맺히면 눈동자가 풀어지고 소리도 눈물도 없다. 그 헛웃음은 앙천대소이니 인간사의 잘못을 그저 모른 체하는 하늘을 원망하는 비웃음이다.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는 게 인생사지만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치우는 자들의 가당찮은 이유와 작태에 앙천대소한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니 ‘웃퍼서’이다.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독립군 영웅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있었다. 이분들의 자리를 옮기고 홍범도 장군 흉상은 아예 치운다고 한다. 또 국무총리가 나서서 해군함정 홍범도함의 이름도 교체 대상이라 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 불가지만, 짐작은 한다. 1..

칼럼 2023.10.04

논산 연무읍 견훤왕릉 배롱나무

논산 연무읍 견훤왕릉 배롱나무 금강을 젖줄로 태평성대를 누린 백제의 텃밭 고을이 논산이다. 오늘의 논산시도 동북쪽에 대전광역시, 동쪽에 계룡시와 금산군, 서쪽에 부여군, 북쪽에 공주시, 남쪽에 전라북도 익산시, 완주군과 이웃하는 풍요로운 삶의 터다. 호남선 철도, 논산천안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지선이 분기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그렇게 논산은 참으로 사람살이가 오랜 역사의 고을이다. 피 끓는 투혼의 역사가 있는가 하면 풍요와 번영의 찬가가 울리던 고을이다. 그 역사 속에 또 기억하고 추억할 위대한 인물이 있으니, 이곳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의 후백제 시조 견훤왕릉이다. 조선 초의 고려사 지리지에 충청도 은진군 풍계촌에 위치한다는 기록으로 전(傳) 견훤왕릉이라 부르는 곳이다. 전(傳)이란 말이 참..

대구 종로초등학교 최제우 회화나무

대구 종로초등학교 최제우 회화나무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신이 되고, 어떤 사람은 죽어서 신이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살아있는 신이 된다. 임진왜란 뒤 왜 열도를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나기 전날이다. 가문의 사찰에서 불상 하나가 사라졌고, 아이가 태어나자 그 사라진 부처의 화신이라 했다. 당시 이들 왜를 섬멸한 이순신은 돌아가신 뒤, 백성들의 신이 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러름은 높고 깊어진다. 살아서 신이 된 동학의 교주 최제우는 1824년 조선 순조 24년에 경주에서 최옥의 서자로 태어났다. 6세에 어머니, 16세에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13세에 울산에서 박씨와 가정을 꾸렸으나, 16세에 부인을 잃었다. 당시 조선의 세도정치는 사회기강을 무너뜨렸다. 흉년과 기근, 호열자까지 겹치니, 농민 ..

공주 무령왕릉 무령왕 반송

공주 무령왕릉 무령왕 반송 1971년은 7월 초까지 이어진 장맛비가 자주 많이 내렸다. 이에 웅진백제(475∼538)의 왕릉급 무덤인 송산리 5호와 6호 고분의 벽화 훼손을 우려해 7월 5일 왕릉 뒤에 배수로를 냈다. 그때 괭이 끝에서 돌소리가 났다. 조심스레 캐보니 벽돌이었는데 6호분과 다른 무늬였다. 그 벽돌을 따라 파내려 가니 아치 모양의 입구가 나왔다. 새로운 무덤이었다. 6일 황급히 조사단을 꾸렸으나, 7일에 또 비가 내려 8일에야 발굴에 나섰다. 아침 일찍 발굴을 재개해 오후 4시 15분께 무덤문을 열었다. 이때 펑 소리와 함께 무덤에서 휜 연기가 나왔다. 그리고 곧 두 개의 지석을 통해 이 무덤의 주인이 백제 무령왕(461~523)과 왕비의 무덤임을 확인했고, 다음 날 오전 8시 무렵 벽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