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함께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2018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산물 생산량에서 꿀벌의 기여도가 71%이다. 이렇게 70% 이상의 수분작용을 해주는 한 종류의 곤충은 벌밖에 없다. 그린피스(2017)는 이 벌의 경제적 가치를 373조 원으로 추산했다.
꽃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약 1억 년 전이다. 벌은 약 1억 5천만 년 전에 생겼다. 그렇다면 꽃보다 먼저 삶을 시작한 벌은 무엇을 먹었을까? 그때는 말벌처럼 작은 곤충을 잡아먹었던 육식 곤충이었다. 어느 날 이 벌이 꽃에 있는 작은 벌레를 잡아먹으며 꽃가루와 꿀을 먹었다.
‘야, 이거 맛있네.’ 그래서 벌의 식단이 바뀌었고, 그중 일부가 지금의 꿀벌로 진화했다. 이는 또 축복이었다. 벌의 몸에 묻은 꽃가루가 여기저기 꽃과 가루받이가 되면서 다양한 꽃식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벌은 지구를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든 연금술사였다.
하지만 이 벌들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잔치는 인간을 만나면서 어긋나게 된다. 인류의 기원은 5백만 년이고 많아야 7백만 년이다. 그러니까 꿀벌에게 인간은 굴러온 돌인 셈이다.
이 인간이 정착하면서 꽃이 가득한 벌판은 농경지가 되고, 숲이 황폐화 되면서 살 곳도 적어졌다. 더욱 농약은 치명적이었다. 경비행기가 대량의 농약을 살포하고 드론이 날아다니며 구석구석 뿌려댔다. 특히 네오니코티노이드 계열의 살충제는 벌의 방향 감각을 잃게 했다. 꿀을 찾으러 나갔던 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실종되는 이유이다.
또 최근에는 기후변화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이 커졌다. 먹이를 얻으러 나간 벌들이 느닷없는 추위에 얼어 죽거나, 온난화로 꽃이 일찍 피고 지면서 꿀을 채취할 기간이 줄어들었다. 이 또한 인간의 무분별한 화석 연료와 각종 공해 물질 배출에 따른 인재이다. 그뿐인가? 애써 채취해 저장해 놓은 꿀을 탈탈 털어가고 신체에 해로운 설탕을 먹이니, 온몸이 망가지는 건 당연 지사이다, 그야말로 벌에게 인간은 총체적 난적인 셈이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꿀벌 없는 지구를 맞게 될 것이다. 달큼한 꿀을 맛볼 수 없는 것은 물론, 가루받이를 할 수 없으니 과일도 맛보기 어려울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아름다운 꽃도 보기 힘들고, 황폐해지는 자연과 함께 인간의 삶도 삭막해질 것이다.
우리 주변의 꿀벌은 크게 토종벌과 양봉으로 구별한다. 토종은 벌통 하나에 약 1만 마리, 양봉은 약 3만 마리가 산다.
양봉은 지역을 이동하면서 하나의 꽃꿀만 주로 채취한다. 토종벌은 말 그대로 특정 지역에서만 사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양봉 꿀은 꽃 종류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고, 토종꿀은 마치 와인처럼 특정 지역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또 우리 조상들은 꿀을 음식이라기보다 일종의 보약으로 여겼다.
꿀벌은 독립적인 개체지만 군락을 이루어 하나의 몸처럼 움직인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초(超)개체’이다. 하나하나의 개체들이 서로 의존하고 의사소통과 조율을 통해 한 무리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한 무리의 ‘초공동체’가 일사불란한 활동으로 불가능한 ‘초능력’을 발휘한다.
또 벌은 하나의 여왕벌과 일정 수의 수벌, 그리고 수많은 일벌로 집단을 이룬다. 이 중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부지런한 일벌의 수명은 겨우 3~6개월이다, 하지만 벌통이라는 군락 자체가 자연재해나 인위적인 피해가 없는 한 이들은 초개체라는 형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이 말은 꿀벌이 있는 한 우리 인간도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과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까? 가 아닌 어떻게 제거하고 나만 살까? 를 생각한다면 이 꿀벌의 삶에서 지혜와 혜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꿀벌만도 못한 인간이고, 곧 비참하게 사라질 운명일 뿐이다.(2023. 6. 7. 호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