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과 낭패
교와 활은 중국의 기서 ‘산해경’에 등장하는 두 마리의 상상 동물이다. 이중 교(狡)는 개의 모습에 표범 무늬, 머리에 쇠뿔이 달렸다. 이 교가 나타나면 대풍년인데, 워낙 간사하여 나올 듯 말 듯 애만 태우고 끝내 나오지 않는다. 또 교의 친구 활(猾)은 교보다 더 간악하다. 생김새는 사람인데 돼지 털이 온몸에 숭숭하고, 세 살 도리질에 나무가 도끼에 찍히는 소리로 운다.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는데, 이놈이 나타나면 온 천하가 혼란해진다.
이 교와 활이 호랑이를 만나면 둘이 몸을 똘똘 뭉쳐 공처럼 된다. 호랑이 입속으로 또르르 뛰어들어 내장을 파먹는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호랑이가 죽으면 유유히 걸어 나와 미소를 짓는다. 관용구 ‘교활한 미소’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역시 전설 속의 낭패도 상상의 동물이다. 낭(狼)은 뒷다리 두 개가 아주 짧거나 없다, 또 패(狽)는 앞다리 두 개가 아예 없거나 짧다. 낭은 꾀가 부족하나 흉악하고, 패는 꾀는 있으나 겁쟁이다. 그래서 이 둘은 항상 같이 다닌다. 그런데 둘이 호흡이 잘 맞으면 좋지만 서로 다투면 대략난감이다. 이같이 낭과 패의 의견이 달라 일을 못 하게 되는 것을 ‘낭패’라 한다.
눈앞의 현상보다 상상의 일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사랑이나 행복처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일은 더욱 그러하다. 앵두 같은 입술, 초승달 같은 눈썹처럼 비교적 구체적으로 묘사해도 그걸 아름답게 그리기란 쉽지 않다. 또 굳이 그림으로 그리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마음에 그려져 있기 마련이다.
키프로스는 지중해 북동부의 섬나라이다. 그리스 시대에 이곳에서 아프로디테를 전쟁의 여신으로 숭배하였다. 또 이 나라의 왕족이자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를 사랑하여 상아로 조각한 뒤 결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에 아프로디테는 그 여인상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피그말리온은 그 여인과 결혼하였다.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면 불가능한 일도 실현되는 심리효과를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하는 연유이다.
중국 후한 때의 경엄은 어렸을 때부터 무예를 좋아했다. 이때 왕망이 황위를 빼앗아 황제가 되었으나 무분별하고 어리석은 정책의 실패로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에 한의 왕족 유수가 군사를 일으켜 왕망을 토벌했고, 경엄은 많은 공을 세웠다.
마침내 유수는 광무제가 되어 나머지 영토확보를 위해 나섰다. 이때 또 경엄은 화살에 다리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군사들을 독려하여 광무제의 뜻을 이루었다.
광무제 유수는 경엄에게 ‘장군이 앞서 천하를 얻을 계책을 말할 때는 아득하여 실현될 가망이 없다고 여겼는데, 뜻을 가진 사람이 마침내 성공하는구려’라고 했다. 그러니까 뜻을 가진 사람이 성공한다는 유지경성(有志竟成)은 광무제가 경엄을 칭찬했던 말이다.
요즈음 세상사가 어수선하다. 언제는 평화로웠느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현 정부는 기승전 지난 정부 탓이고, 날만 새면 압수 수색이란 말로 국정을 이어간다. 일본은 학생들에게 곧 독도로 소풍 가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실까지 도청하였다. 중국은 대통령 윤석열의 로이터 통신 인터뷰 대만 관련 발언에 발끈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며 눈 부라리고, 한국은 ‘매우 무례한 행태’라고 방안 퉁소로 대응한다.
또 누구는 한국이 러시아의 분노와 적대감을 온몸으로 맞게 됐다며 ‘대러시아 글로벌 제재 참여와 미국 및 폴란드에 군수품 판매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전국’까지 되었다고 혀를 찬다.
4월 14일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의 주요 22개국 지도자 조사에서 윤석열의 지지율은 19%로 꼴찌이다. 유지경성, 피그말리온이면 참 좋겠는데, 교활과 낭패 무리에 참으로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미래, 희망, 공동 이익? 그게 어디 말로 되는가? 또 어디 쉽게 얻는 것인가? 교활한 그 무리의 무도한 준동에 또 낭패한 처지가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호남일보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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