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폭설이 내린 뒤다. 솔숲 산책길에 팔뚝만 한 솔가지가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뚝 부러져 있었다. 그러더니 이제 그 눈은 흔적도 없이 녹아 봄이 되었다. 어느 초등 1학년 아이가 눈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 라는 물음에 ‘봄이 돼요’라고 대답한 것이 맞은 것이다.
우수는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는 절기이다. 그 우수에 어김없이 비가 내렸고, 팔뚝만 한 가지가 부러진 소나무의 솔잎에 하얀 알갱이로 방울방울 달려 있었다. 또 그렇게 봄은 대동강물이 풀리고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을 지나 어김없이 깊어갈 것이다.
봄은 참 좋은 계절이다. 춥고 삭막한 겨울이 가고 마른 가지에 새움이 트니 새봄이고, 다시 보니 다시봄이고, 또 왔으니 또봄이다. 그 봄을 사이좋게 마주 보면 마주봄이고, 다정스레 함께 보면 함께봄이다. 어깨동무로 꽃구경 가면 꽃봄이고, 기분 좋은 날이 나날이 이어지면 늘봄이다.
하지만 호사다마이듯 인생사와 세상사가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겨울과 봄 사이의 계절인 환절기에 세상을 뜨는 분들이 다른 계절보다 많다.
환절기는 계절이 바뀜이니 겨울에서 봄으로, 여름에서 가을이 되는 때이다. 이 시기에는 하루 이틀 사이에 기온이 큰 폭으로 변하며 낮과 밤의 온도 차가 크다. 또 인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니 한겨울보다 오히려 감기에 잘 걸리고 피부 발진이나 비염과 같은 만성 질환의 증상이 심해지기도 한다. 쉽게 피로하여 장시간 운전에 졸음도 주의할 때이다.
환절기처럼 계절이 바뀌듯 인생사와 세상사도 자연스레 바뀌는 게 순리이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그 바뀜을 재촉도 하니, 그걸 자업자득, 호된 말로 인재이다. 또 하늘의 뜻에 따르면 흥하고 거스르면 망한다는 ‘순천자 흥 역천자 망’의 재앙이 되기도 한다.
영산강의 이름은 고려개국 무렵에 금강이었다. 그 금강이 영산강이 된 것은 조선 초에 세곡을 실어나르는 조창인 영산창이 영산포에 있어서이고, 또 왜구를 피해 흑산도 아랫섬 영산도 사람들이 옮겨 온 때문이라고도 한다. 더하여 다시 고을에 있었다는 영산서원의 이름이 된 영산 며느리와 정 노인의 이야기도 있다.
이 영산강의 봄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영산강 하구언이 없고, 승천보 죽산보도 없으며 광주 등지의 오·폐수가 많지도 않던 때이다. 그 무렵에는 영산강 하구에서 나주 회진에 이르기까지 금세 잡은 장어가 한 소쿠리이고, 너른 갈대밭과 강변 논에는 참게가 지천이었다. 또 12월부터 3월에 물회로 먹는 새우처럼 생겼으나, 곤쟁이과의 갑각류인 ‘곤쟁이’가 있다. 이 ‘자하, 세하’라고 하는 곤쟁이는 1519년 기묘사화에 조광조를 죽인 남곤과 심정의 이름을 따 ‘곤정이’라 한데서 유래된다는 말도 있다. 또 4월이면 갈대 고기인 위어가 갈대숲에 알을 낳으러 모여드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우어, 웅어’라고 했다. 이 무렵 복어도 먹이인 게와 새우에 홀려 영산강으로 왔다가 그만 밀물에 밀려 나주 노안 복바위까지 둥둥 떠왔으니, 뜰채로 건지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 그 영산강의 손님들을 다시 옛 봄을 되찾기 전까지는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옛 강을 잃고 옛 맛까지 잊었지만, 요즈음 우리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것은 수돗물 대란이다. 삼월에는 동복수원지가 바닥이 나고 격일제 급수를 할 수도 있다고 하니 걱정 중의 심각한 걱정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덕남정수장 사고도 예견된 인재이고, 오래전에도 겪었던 참사라고 한다. 강기정 시장이 사과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불안하고 신뢰가 되지 않는다. 가뭄과 갈수가 천재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늘 쳐다보며 삿대질이나 할 순 없지 않은가? 또 어리석게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낼 수도 없는 일이다.
아무튼, 봄이고 봄봄봄이다. 지금 눈앞의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잘 살피면 살펴봄이고, 대책을 잘 세우면 세워봄이고, 이겨내면 이겨봄, 마침내 극복하면 지난봄이 될 것이다. 어쨌거나 이 봄을 잘 맞이하고 잘 지내고 잘 보냈으면 한다. (2023. 3. 16 광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