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만 남았다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을 가리킨다. 명운은 앞날의 일이나 삶과 죽음의 처지이다. 그렇게 운명과 명운의 앞뒤 말이 바뀌면 그 뜻도 새삼 달라진다. 그럼에도 운명이건 명운이건 인간의 힘이나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진인사대천명처럼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지성이면 감천이니, 온갖 열과 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응한다고 말한다.
이를 두고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공자는 이슬방울이 모여서 바다를 이루고, 산을 움직이려면 작은 돌을 들어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역시 춘추전국시대의 도가 사상가인 열자의 ‘탕문편(湯問篇)’에 ‘우공이산’이란 고사가 있다. 나이 아흔에 이른 우공이 북산에 살았다. 그런데 바로 이 북산 앞을 태행과 왕옥 두 산이 가로막고 있어 다른 지역으로 오고 가기에 몹시 불편하였다. 이에 우공은 이 두 산을 없애버리기로 하고 집안 식구들에게 ‘나를 도와 산을 평평하게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 두 산은 둘레가 7백 리에 이르고 높이가 만장이었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말에 찬성했지만, 부인이 ‘흙과 돌은 어디에 버리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우공과 자식들은 흙과 돌을 ‘발해만의 은토’에 버리기로 하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이웃집 과부 경성 씨도 어린 아들을 보내 도왔는데, 은토가 워낙 먼 거리라 겨울과 여름이 바뀌는 동안 한 번 다녀올 수 있었다.
흙을 버리러 가는 우공을 보고 하곡에 사는 지수가 ‘당신의 남은 생애와 남은 힘으로는 산의 풀 한 포기도 없애기 어려운데….’라며 말렸다. 그러나 우공은 ‘당신은 과부네 어린아이만도 못하구려. 내가 죽더라도 아들이 있고, 또 손자를 낳고, 손자가 또 자식을 낳고,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손자를 낳으면 자자손손 끊이지 않지만, 산은 더 커지지 않으니 어찌 산이 평평해지지 않는다고 걱정하겠소.’라고 단호히 말했다.
조사신은 두 손에 뱀을 든 산신령이다. 그 조사신이 우공을 지켜보다가 산이 사라질 것이 두려워 옥황상제를 찾아가 하소연했다. 옥황상제는 우공의 노력과 끈기에 감동하여 신 중에 가장 힘이 센 과아 씨의 두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두 산을 업어다 태행산은 삭동에, 왕옥산은 옹남에 두도록 했다. 이로써 우공이 사는 북산 앞에는 언덕조차 없게 되었다.
숙명이란 말도 있다. 우주의 일체 만물은 생겨날 때부터 타고난 삶, 결코 바꿀 수 없는 인생이 정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가르침은 깨우침이다. 어떤 어려움도 열과 성을 다함이다. 운명이건, 명운이건, 숙명에 굴복하지 말고 헤쳐나가 마침내 이겨냄이다.
그 열과 성을 다하고 헤치고 이겨낼 일의 대상은 크고 작음과 상관없다. 또 개인의 일이건 국가의 일이건 다르지 않다. 앞으로 살아갈 날의 모든 일의 총체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의 기인을 돌이켜보면 크게 근현대사의 비극 세 가지이다.
첫째가 일제의 조선 강탈과 식민지배의 비극이다. 그리고 가해자 일본은 해방 이후 한 번도 피해자를 향해 사과하지 않고 뉘우침도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국의 대통령이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의 능력 부족이었다고 가해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두 번째는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남침을 자행한 북한 역시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과나 뉘우침이 없었다. 세 번째가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친일파 척결 실패의 비극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옹호했으며, 현재도 그 매국노 무리는 손자 대까지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다.
지난 3·1절에 일장기를 내걸고, 유관순이 도둑이라는 등 욕설을 퍼 붓은 사건은 바로 그 3가지 비극의 종합이다. 운명이건, 명운이건, 숙명이건, 우공이산이건 이제 친일매국노 무리에게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소릴 듣는 일만 남았으니 그저 입과 눈, 귀도, 맘도 쓰디쓸 뿐이다.(2023. 4. 3. 호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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