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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전쟁과 평화 하루 하루 끼니를 이어가는 사람에게 전쟁은 큰 걱정이나 특별한 의미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처럼 전쟁도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릴 것이다. 더욱 핵무기와 IT 기술의 현대전은 과거의 재래식 전쟁과는 비교나 상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1945년 8월 15일은 우리가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 날이며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이다. 한 때 우리는 이 8·15를 해방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광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일본의 강압적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1주년인 1946년 8월 15일, 남과 북에서는 각각 ‘해방절’ 기념식을 가졌다. 1948년 8월 15일에는 ‘해방 제3주년 기념’식과 함께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하였다. 이때까지 남북한 모두 8월 15일은 ‘해..

칼럼 2024.11.14

광주전남아동문학인회 『옹달샘 동요마을』 창작동요집

광주전남아동문학인회 『옹달샘 동요마을』 창작동요집 광주·전남아동문학인회(회장 김목)의 창작동요집 『옹달샘 동요마을』이 나왔다. 2024년 창작동요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1, 2집 창작동요 음반을 출반하였고, 이 69곡의 창작동요를 모아 동요집을 출간한 것이다.11월 2일 『옹달샘 동요마을』의 창작동요 음반 출반과 동요집 출간을 함께 축하하는 기념행사에서 회원들은 ‘아동문학이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하며, 그 세상을 동요로 이루겠다는 신념으로 음반 출반과 동요집을 출간했다’며 ‘아동문학의 으뜸은 동요이고 모든 가사의 으뜸도 동요이다. 우리는 이 동요를 부르며 함께 발을 모으고 어깨동무를 하였다. 그 힘으로 들판을 내닫아 앞으로 나아가고, 푸른 하늘을 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수천수만이..

경남 산청 문익점 목화소나무

경남 산청 문익점 목화소나무 목화는 식물 이름이고 두 번 꽃이 핀다. 초여름부터 피는 첫 다섯 꽃잎은 처음엔 하얗지만, 점차 붉어져 다래라는 열매가 된다. 이 다래는 농부에게는 돈이고 아이들에게는 달착지근한 간식거리다. 두 번째 꽃은 다래가 다섯 갈래로 벌어진 하얀 솜꽃으로 면화(棉花)이다.여기서 씨앗을 빼낸 솜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만들면 면(綿), 무명, 명이라 한다. 남쪽 지방에서는 목화를 ‘미영’이라고도 한다. 무명은 목면(木綿)의 중국어인 ‘무멘’의 음차인 듯싶으나 목화솜에서 실을 뽑는 실 잣는 기구 ‘물레’는 발명자인 문익점의 손자 문래(文萊)와 문영(文英)의 이름에서 유래한다.우리의 의생활에 일대 전환기를 가져온 이 목화는 고려말 문익점이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물론 이보다 앞서 백제 위덕..

경남 하동 경충사 정기룡 나무

경남 하동 경충사 정기룡 나무 1562년 4월 24일, 경남 곤양에서 태어나 명장으로 숭앙받으니 정기룡이다. 어릴 때 이름은 무수, 자가 경운인데 기룡이란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1574년 상주로 이사, 1580년 향시에 합격, 1585년 진주의 아전 강세정의 딸과 결혼, 1586년 별시 무과를 보러 한양에 갔을 때다. 재위 19년의 선조가 종각에서 용이 자는 꿈을 꾸고 종각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오라고 했다. 그날 데려온 정무수가 병과 4위로 급제하자, 선조가 기룡이란 이름을 주었다.정기룡은 1587년부터 3년간 북방에서 종군하고, 1590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신립의 무관이 되었다. 이듬해인 1591년, 종8품 훈련원 봉사로 한양에 머물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터지자 경상우도방..

합천 해인사 백련암 원택나무

합천 해인사 백련암 원택나무 해인사에 갔다면 다 나름대로 연유가 있을 것이다. 불자라면 불자여서, 나그네라면 나그네여서 갔을 것이다. 교과서의 팔만대장경을 만나러 갔거나, 홍류동 계곡의 흐르는 계절을 보러 갔을 것이다. 또 한 번 가면 여러 번 가는 곳도 있고, 한 번 갔기에 두 번 가지 않는 곳도 있다. 어찌 그 숱한 사연을 두루두루 살필 거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해인사의 백련암은 꼭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이었다. 처음 길에 암자를 품은 산세의 수려함에 놀라 한동안 숨까지 멈추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관세음보살이 앉아있거나, 알을 품은 봉황인 듯 그 범상치 않은 신비로움 때문이다.해인사 일주문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어 2Km의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었다. 마침내 두 번째 백련암을..

화순 만연사 만연 배롱나무

화순 만연사 만연 배롱나무 화순 만연사는 선사 만연이 세운 절이다. 절을 품은 나한산을 만연산이라 부르는 연유이다.세상의 가장 작은 수가 허공을 넘어 청정이고, 이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음이다. 또 가장 큰 수가 불가사의를 넘어 무량수이니, 이 또한 셀 수도, 알 수도 없음이다. 그렇게 세상의 가장 작음부터 가장 큼까지를 아우르는 말이 만(萬)이다. 광활함을 노래하는 ‘기러기 울어 애는 하늘 구만리’에서 하늘은 청정이고 무량수인 ‘만’이며, 기러기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온갖 생명이고, 삶의 인연인 ‘연’이다.넓고 깊은 연못이란 만연(萬淵)은 또 알 수 없음의 인연인 만연(萬緣)이기도 하다. 세상살이가 볼 수도, 느낄 수도, 셀 수도, 알 수도 없는 인연이니, 만연사는 만 가지 인연..

개혁 공포정치 폭군 네로

개혁 공포정치 폭군 네로 어떤 폭군도 처음부터 폭군 소릴 듣진 않았다. 폭군의 대명사 네로와 히틀러,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에 연산군, 광해군 등 그 제왕 놀이를 즐긴 사이코패스에 소시오패스들도 처음부터 ‘나 폭군이야’라고 하지 않았다.네로는 서기 37년 12월 15일 로마제국 제3대 황제 가이위스(칼리굴라) 황제의 외조카로 태어났다. 초대 황제 가문 핏줄인 악랄한 성격의 아버지 그나이우스는 서기 41년 네로가 네 살 때 죽었다, 이에 어머니 소 아그리피나는 제4대 황제이자 자신의 삼촌인 클라우디우스와 재혼했고, 네로도 클라우디우스의 딸 옥타비아와 결혼하여 사위이자, 양자가 되었다.서기 54년 클라우디우스가 독살되자, 17세의 네로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로마 제5대 황제가 되었다. 즉위하며 스승인 철학자 ..

칼럼 2024.10.07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 처진 당송

함양 지곡면 개평마을 처진 당송 함양은 양반 씨족이 모여 살던 영남 유림의 고을이니 흔히 좌 안동, 우 함양이라고 일컫는다. 또 함양의 그 대표 반촌이 지곡면 개평마을이다.개평은 마을을 감싼 서북쪽 도숭산(1041m)의 두 골짜기에서 흘러온 지곡천과 평촌천이 만나는 곳의 삼각형 터이다. 마을 이름 개평은 도숭산의 산 모양과 지곡과 평촌의 두 물줄기를 본뜬 개(介)자 모양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예전엔 개화대 또는 개우대 마을이라고 했다 한다. 사람으로 치면 아랫배이니 풍성하고 넉넉한 출산의 터이다.또 육십령을 내려온 남강이 서상, 서하면을 지나 지곡면에서 이 개자 모양의 지곡과 평촌 두 물줄기를 두 손으로 받으니, 도숭산이 감싸주고 남강이 품어주는 평(平)안의 터이다.개평마을은 오래전 경주 김씨 등이 살..

진주성 의충암 김천일 나무

진주성 의충암 김천일 나무 김천일이 수원부사를 지내고 고향인 나주에 있을 때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6월 1일 고경명 의병대장은 임란 최초의 의병을 일으킨 옥과의 유팽로와 함께 북상하여 7월 10일 금산전투에서 순절했다. 김천일도 6월 3일 나주에서 의병 300명과 함께 북상 길에 올랐다. 평소에 뼈마디가 저리는 병에 시달리던 김천일은 이날 ‘오늘 내가 칼을 차고 말을 타니 새처럼 날 것 같다’라며 의병의 용기를 북돋웠다.고려 시중 김취려의 14대손인 김천일은 대대로 전라도 창평현에 살았으나, 외가인 나주에서 1537년 1월 10일 태어났다. 그런데 태어난 다음 날 어머니를 잃고 7월에는 아버지마저 잃었다. 외가에서 자란 김천일은 외조모 서 씨가 돌아가시자, 초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다. 허약..

카테고리 없음 2024.09.28

영암 구림 회사정 소나무

영암 구림 회사정 소나무 영암에는 선사시대인 신석기에서 청동기, 철기시대에 이르는 옛 유물 유적이 있다. 이때의 고인돌이 1천 37기 확인되었고 출토된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이 있다. 이 거푸집으로 세형동검, 꺾창, 낚싯바늘, 도끼, 끌 등을 만들었고 서양보다 천여 년이 앞선 시기에 아연을 첨가했다. 아연은 청동의 색채를 아름답게 하고 성능도 향상시키나 그 녹는 점이 327.4도로 낮고 907도에서 기화하여 주조기술이 매우 까다롭다. 중국 송나라도 아연을 넣지 못했고, BC 20년 17.3%의 아연을 함유한 로마의 청동 화폐도 우리보다 1,000여 년 뒤처진 기술이다.이 무렵 부족의 위엄과 권위의 세형동검, 그리고 지름 21.2㎝에 13,000여의 정교한 선을 새긴 거울 다뉴세문경도 있었다. 이곳의 선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