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

합천 해인사 백련암 원택나무

운당 2024. 10. 25. 07:32

합천 해인사 백련암 원택나무

 

해인사에 갔다면 다 나름대로 연유가 있을 것이다. 불자라면 불자여서, 나그네라면 나그네여서 갔을 것이다. 교과서의 팔만대장경을 만나러 갔거나, 홍류동 계곡의 흐르는 계절을 보러 갔을 것이다. 또 한 번 가면 여러 번 가는 곳도 있고, 한 번 갔기에 두 번 가지 않는 곳도 있다. 어찌 그 숱한 사연을 두루두루 살필 거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인사의 백련암은 꼭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이었다. 처음 길에 암자를 품은 산세의 수려함에 놀라 한동안 숨까지 멈추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관세음보살이 앉아있거나, 알을 품은 봉황인 듯 그 범상치 않은 신비로움 때문이다.

해인사 일주문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어 2Km의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었다. 마침내 두 번째 백련암을 찾았다. 오래전의 추억을 더듬어 여기저기 둘러보고 되돌아 나오며 팽나무에게 갔다. 백련암의 마지막 오름의 오솔길을 지키는 네다섯 아름의 팽나무가 두 그루이다. 오솔길 첫머리의 조금 날씬한 나무와 8층 석탑은 물론 기와를 얹은 담장까지 두른 퉁퉁한 나무이다.

자꾸만 바라보아도 늠름하고 묵직하며 기품이 느껴진다. 3백 년 넘어 5백 살도 되어 보이는 한마디로 잘생긴 나무이다.

마침 스님 두 분이 암자에서 내려온다. 합장 인사를 한 뒤 묻는다.

스님! 이렇게 담장까지 쌓아 보호하는데 이 느티나무와 암자에 어떤 사연이 있나요?”

, 뭐 특별한 것은 없고 우리는 이 나무를 원택나무라 합니더.”

, 오래전에 원택 스님이 심으셨나요? 이 나무가 수백 년은 됐을 텐데요?”

, 원택 스님은 성철 스님의 제자. 그거 있잖아요? 전생의 인연? 그러니까 성철 스님이 원택에게 이 나무는 너가 전생에 심은 나무다.’ 했지요. 그래서 우린 원택나무라고 합니더.”

! 그렇군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의 성철 스님이야 들은풍월로 알지만, 그분의 으뜸 제자이자 현 백련암 주지 원택 스님까지 어찌 알랴? 문외한인 나그네가 그걸 모르는 게 당연함이고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맘속으로 원택 스님이 누군지 찾아봐야지 하는데, 훌쩍 키가 크고 잘생긴 스님이 의미 있는 말을 덧붙여준다.

풍수라고 하지요. 어디 터가 명당이다 하는 거요. 그런데 그 명당은 사람이나 건물이 기준이 아니고 나무랍니다. 좋은 기운을 받은 나무가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라는 겁니다. 여기 해인사 학사대의 최치원 나무를 비롯하여 큰 나무들이 있는 곳이 명당터의 핵심이지요.”

스님 말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명당터는 나무가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집이나 묘터를 명당터라고 자랑하다간 나무에게 비웃음당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스님에게 감사의 합장을 하고 백련암을 내려온다.

백련암이 있는 가야산은 봄이 예뻐요. 새싹들도 다 같은 새싹 같지만, 색깔이 모두 다르거든요. 도시에 오면 사람과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어색해요.’

20185, 남북 불교 교류 총책임을 맡은 원택 스님의 말이다. 이날 금강산 성지순례 가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 말도 했다. 금강산! 말로만 들어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두 번이 아니라, 계절마다 가고 싶은 곳이다. 그러면서 백련암 원택나무를 떠올린다. 또 그러면서 원택나무에 숨긴 이치를 깨닫는다. , 나무가 명당터라고 했지. 우리 모두가 잘생긴 아름다운 나무를 마음에 한 그루씩 심는다면 이 세상이 모두 명당터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지 않겠어요?

합천 해인사 백련암 원택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