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 경충사 정기룡 나무
1562년 4월 24일, 경남 곤양에서 태어나 명장으로 숭앙받으니 정기룡이다. 어릴 때 이름은 무수, 자가 경운인데 기룡이란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1574년 상주로 이사, 1580년 향시에 합격, 1585년 진주의 아전 강세정의 딸과 결혼, 1586년 별시 무과를 보러 한양에 갔을 때다. 재위 19년의 선조가 종각에서 용이 자는 꿈을 꾸고 종각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오라고 했다. 그날 데려온 정무수가 병과 4위로 급제하자, 선조가 기룡이란 이름을 주었다.
정기룡은 1587년부터 3년간 북방에서 종군하고, 1590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신립의 무관이 되었다. 이듬해인 1591년, 종8품 훈련원 봉사로 한양에 머물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터지자 경상우도방어사 조경의 별장이 되었다.
임란 초기 조선은 두 달여 만에 왜의 손아귀에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며 선조는 의주까지 가야 했다. 조총을 든 왜군에 맞서는 무기가 활과 칼, 녹슨 포가 전부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일 때 마침내 용이 일어났다.
정기룡은 용장이었다. 1592년 4월 23일, 정기룡은 거창 전투의 돌격장으로 5백여 왜군을 맞아 10여 명을 죽였다. 이어 5월의 용인에서도 홀로 적진을 살피던 중 소규모 왜군을 만나 무찔렀다. 또 김산(김천) 전투에서는 직속 상관인 경상우도방어사 조경이 포로가 되자, 말을 몰아 조경을 구출했다. 정기룡은 도리깨처럼 생긴 편곤을 잘 썼다. 긴 막대에 철 가시가 박힌 쇠몽둥이를 쇠사슬로 매단 이 편곤은 육박전이나 마상 전투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정기룡은 지장이었다. 1592년 9월, 곤양군수 이광악의 요청으로 곤양현 수성장이 된 정기룡은 10월의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상주성 임시판관이 되었다. 그리고 11월에 4백여 병력으로 상주성의 만여 왜병을 화공으로 물리쳤다. 지난 4월 25일 왜에게 빼앗긴 성을 되찾고 군량미 400여 석, 조총 150, 장검 70, 비단 200여 필, 군마 10여 필을 얻었다.
정기룡은 덕장이었다. 상주 목사와 감사군 대장을 겸할 때다. 정기룡은 둔전을 열어 양식을 자급하고 피난민을 보살폈다. 또 그들 중 날쌘 자를 병사로 뽑았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감사군’(敢死軍)은 그 뜻이다. 정유재란 때이다. 명나라 장수 이절이 전사하자, 명병들은 감사군에 소속되기를 원했고, 명의 황제는 정기룡에게 총병관의 직위를 주었다.
이렇듯 용지덕을 두루 갖춘 명장이니, 전설 같은 이야기 또한 많다. 정기룡의 부인 진양 강 씨는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했다. 이듬해에 선전관을 지낸 경북 영천의 권홍계의 딸과 재혼하였다. 이 예천 권 씨와 정기룡의 운명적 만남과 말 이야기가 전설처럼 있다. 정기룡이 타던 말은 평지에서 여섯 길이나 되는 내를 건너뛰고 절벽을 오르내렸다. 어느 때 홀로 왜병에게 잡히자, 그들을 사납게 물고 짓밟으며 탈출하기도 했다.
정기룡의 탄생 설화도 있다. 기룡의 어머니가 홍역으로 죽음에 이르렀는데, 배 속에 아이가 있었다. 가족이 염을 하는데 무사히 태어난 아이는 우렁차게 울었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며 마침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며 영웅이 태어났다고 했다.
1622년 2월 28일, 60전 60승을 거둔 정기룡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하던 통영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당 하동 경충사에는 한 아름 은행나무와 가까이 생가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한여름 더위에 찾으니, 가지치기를 한 경충사의 은행나무는 차렷 자세의 앳된 소년 같고, 주렁주렁 감을 매단 감나무의 생가 뜨락엔 잡초만 무성했다. 하지만 무삼 상관이랴? 흰구름 흘러가는 푸른 하늘을 말없이 올려다보며, 고개 숙여 장군께 예를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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