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60
여산석(礪山石)에 칼을 갈아 남평루(南平樓)에 꽂았으니
삼천리(三千里) 좋은 경(景)은 호남(湖南)이 으뜸이라.
거어드렁 거리고 살아보세.
숫돌(礪山石)에 칼을 갈아서 남녘땅 지키려고 남평루(南平樓)에 오르니, 팔도(八道)의 좋은 경(景)은 호남(湖南)이 으뜸이라. 거어드렁 거리고 지내보세.
옛날 할머니가 해주시는 무서운 얘기에 숫돌에 칼을 가는 효과음이 있었다.
‘쓱쓱싹싹! 쓱쓱싹싹!’
손주는 할머니의 품속으로 기어들며 그래도 그 무서운 얘기에 푹 빠져들었다.
이제 그 손주는 할머니만큼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쓱쓱싹싹!’ 이바구가 아닌 진짜로 숫돌에 칼을 갈고 싶다. 시퍼렇게 날이 서도록 갈아서 거기다 매직으로 1번이란 글자까지 써서 쥐나 달구 종자에게 선물하고 싶다. 잘 먹고 잘 살다가 1번으로 잘 가라고 말이다.
그런데 다행이다. 이제 여산석이라 하는 숫돌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좋은 칼 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래도 칼은 숫돌에 ‘쓱쓱싹싹!’ 갈아야 제격이고 멋인데…. 아쉽지만 어쩌겠냐? 기껏 해봐야 일당 5만 원짜리가….
예전에는 칼이나 낫을 숫돌에 갈았지만 그럼 지금은 칼이나 낫을 어디에 갈지?
그런 저런 돈도 뭣도 안 되는 상념으로 여산에 이른다.
여산(礪山)은 작은 고을이지만 첫인상이 여산(餘産)처럼 넉넉하고 속이 꽉 찬 알토란같은 곳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여산 장날이었다. 어디 차를 둘만한 곳이 없을까 하다가 바로 옆 한산해 보이는 길로 우회전했는데, 바로 그 길이 여산초등학교와 마주한 여산 동헌 길이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여산동헌(礪山東軒)과 천주교 순교지인 백지사지(白紙死址)를 둘러본다.
‘여산면은 동은 천호산, 서는 용화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중산간지대다. 충청남도 연무읍과 경계를 이루며 호남고속도로와 1번국도가 관통하는 호남의 관문이다.
현대 시조 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람 이병기 선생의 고향이고 여산 동헌과 여산 향교, 천연기념물 제177호 천호동굴과 천호산성, 숲정이성지와 백지사터, 여산 송씨 시조묘, 여산휴게소와 육군부사관학교 등이 있어 근대사의 역사적 가치와 지역의 특성을 고루 갖춘 아름다운 고장이다.
여산면은 예로부터 논농사 위주의 농업에 종사하여 왔으나, 최근 농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시설하우스를 설치하여 딸기, 참외 등 과채류 등 친환경 고소득 작물을 재배한다. 이렇게 생산된 농산물을 두여정보화마을(http//dy.invil.org)을 통해 판매한다.’
여산면 홈피에 소개된 글로 여산을 둘러본 셈치고 나그네는 천호산(天壺山500m)으로 길을 잡았다.
칼을 갈 여산석이 없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모처럼 산행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현 호남고속도로 상행선 쪽 여산휴게소의 뒷산이기도 한 천호산(天壺山)의 호자는 병 호(壺)자다. 병 호(壺), 그러니까 속이 병 속처럼 텅 비었다는 뜻이란다.
마을 주민들의 얘기에 의하면 성치마을 위 냇가에 구멍이 있는데, 비가 많이 오면 그 구멍 속으로 냇물이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구멍으로 스며들어간 물이 산 속 석회를 녹여 큰 동굴을 형성하고 있어서 동굴 아래 마을 이름도 호산리(壺山里)란다.
말로만 듣고 나그네는 바라다 보이는 천호산 방향으로 갔다. 여산 향교를 지나쳐 천호산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니 새로 도로포장을 한 잘 닦인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천호터널이 나오고 천호산(天壺山)으로 오르는 길이 금방이다.
낯선 길이어서 제대로 천호산으로 들어온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하질 않더냐? 등산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아니면 또 어떠랴.
결국 나그네는 천호산의 등산로를 찾지 못하고 산 밑만 배회하다 다시 되돌아 나왔다.
내려오는 길에 천호동굴에 들렸다. 여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 천호산 서북쪽에 위치한 천호동굴은 1965년에 발견된 호남에서는 보기 힘든 약 800m 길이의 종유동굴이라 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종유석 채취와 안전문제로 1970년 폐쇄되어 쇠창살 속에 갇혀 있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무분별한 만행이 자연을 망친 게 어디 한 두 가지인가? 쥐가 파헤쳐 공구리(konkurito) 친 4대강이 그 대표적 재앙 아닌가?
쇠창살로 보호 받아야 하는 천호동굴이 답답해 보이지만 어쩌면 천만다행인지도 모른다.
결국 나그네는 남쪽으로 쳐들어오는 반인반신 괴수를 벨 칼을 여산석에 갈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만 남긴 채 여산과 작별하였다.
하지만 민초들의 주린 배를 값싸게 달래준다는 여산 장터의 그 유명한 짜장면도 먹지 못했으니, 앞으로 다시 이 고을을 찾을 여지를 남겨놓은 셈이다.
그렇게 여산(餘山)에 여지(餘志)를 남겨놓고 호남가 마지막 여정(旅程)인 남평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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