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56
호남(湖南)의 굳고 바른 거룩한 정신인 법성(法聖)으로 온 백성(全州)을 거느린다
법성포(法聖浦)는 굴비의 고장이다. 들머리인 법성포 삼거리에 이르면 온통 굴비를 파는 가게들이다. 마치 굴비들의 세상에 들어온 듯하다.
이 굴비왕국 법성포는 백제 침류왕 원년(서기 384년)에 북인도 간다라 출신의 마라난타(摩羅難陀) 스님이 중국 동진을 거쳐 이곳까지 와서 대승불교를 최초로 전래한 데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이곳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阿無浦)다. 대승불교에서 모시는 아미타불(阿彌陀佛) 정토신앙(淨土信仰)의 의미가 함축된 지명이다. 이후의 부용포(芙蓉浦) 역시 불교의 연꽃과 관련된 것이다. 고려 문종 때 이르러 부르게 된 법성포란 지명도 성인(마라난타)이 불법을 전래한 성스러운 포구라는 의미다.
영광읍에서 약 11Km 북서쪽에 위치한 법성포는 천년 전통의 영광굴비 산지일 뿐 아니라, 호남지방을 드나드는 배들의 관문이었다. 호남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을 한양의 마포나루까지 실어 나르던 배, 중국으로 오가는 배들이 이곳 법성나루를 거쳐 갔다.
영산포와 함께 호남지역의 세곡을 실어 나르던 조창(漕倉)이 있었고, 1514년(조선 중종 9)에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진성(鎭城)을 축성하고 수군이 주둔하였다.
특히 느티나무 우거진 숲쟁이에서 열리는 400년 전통의 법성포단오제(국가지정 무형문화재)를 찾는다면, 나그네에게 오래 남을 평생의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법성항은 영광읍 와탄천과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천의 토사 퇴적으로 수심이 얕아져 옛 모습을 많이 잃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파시(波市)로 흥청이던 포구의 풍광은 이제 옛 기억 속의 풍물이 되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곳 법성포는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굴비왕국이다. 천년 전통의 역사와 품격이 살아있는 법성포 항과 굴비를 비롯하여 싱싱한 생선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나그네나 식객이라는 단어를 자랑스레 입에 올리기 부끄러울 것이다.
그러니까 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해풍에 적당히 말린 상태를 말함이다. 이 굴비라는 어휘에는 유래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자겸 설이다.
고려 예종 때 이자겸은 그의 딸 순덕을 비(妃)로 만들어 외손인 인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하였다. 그리고 인종에게도 3녀와 4녀를 시집보내 중복 인척을 맺은 뒤 은근히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었다.
그 뒤 최사전이 척준경을 매수하여 이자겸을 체포 영광 법성포로 유배 보냈다. 이자겸은 유배지에서 조기를 먹게 되었고, 그 조기를 진상하면서, 이 소금에 절인 조기의 이름을 굽을 굴 아닐 비의 굴비(屈非)라 하였다 한다. 결코 자기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한 아부가 아니고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의미라 한다.
사연이야 어떻든 이 굴비의 맛은 밥도둑이란 소릴 들을 만큼 독특하고 빼어나다.
이곳 법성포의 풍광을 노래하는 법성 12경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동령추월(東嶺秋月)이다.
동짓재라고 부르는 이 언덕은 법성포와 법성포 초등학교를 오가는 고갯길이기도 하다. ‘가을녁 동짓재 팽나무 사이로 두둥실 떠오른 동령추월이 앞바다에 조용히 떠노니 이곳이 바로 서호가 아니던가’
어디 동짓재의 가을뿐일까? 인의산에 벚꽃이 피는 봄, 칠산바다에 비구름 몰려오는 여름, 숲쟁이에 하얀 눈 날리는 겨울에도 이 동짓재에 올라 법성포를 둘러보면 평생에 남을 풍광을 가슴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법성(法聖)은 법성(法性)이기도 하다.
법이 없어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야말로 지상낙원 아닐까? 법이 있어야 사람이 사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법이 짝퉁과 조작, 부정과 부패를 보호하고 지탱해주는 걸 보며 법성(法聖)에서 생각하는 법성(法性)이다.
부디 호남(湖南)의 굳고 바른 거룩한 정신인 법성(法聖)과 법성(法性)으로 온 백성(全州)을 거느리는 바른 세상, 그리하여 법이 없어도 사는 세상을 꿈꾸며 나그네는 전주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불교 최초 도래지 기념지>
<백수해안도로와 법성포를 잇는 다리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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