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55
큰 수와 작은 수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원초적인 소유욕, 그 끝없는 욕구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의 끝없는 탐구심과 삶의 필요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99개 가진 놈이 1개 가진 놈 것을 기어이 빼앗아 100개를 채우고 싶은 도적놈들이 많아서일까?
몇 해 전 강만수가 부자들 가슴에 대못을 박지 말라고 했다.
또 대못이 나왔다. 독사가 쥐를 삼킬 때처럼 입을 벌릴 대로 벌린 이정현이가 ‘흉탄에 부모 잃었는데 대못을 박다니’ 하며 양승조 민주당 최고위원이 언어 살인, 국기문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했다고 침을 튀기고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이정현이의 독사 입과 찌라시 기사의 글이 겹치며 나그네의 가슴에 또 쌍으로 대못이 박힌다.
김구 선생 같은 훌륭한 분이 암살범의 총에 돌아가셨을 때 흉탄이라는 말을 쓰는 걸로 알고 있다. 흉악한 이토오히로부미나 그에 맞먹는 독재자 박정희를 죽인 총알은 정의의 총알이라고 믿고 있다.
어린 시절 독립군이 왜놈을 육혈포로 ‘탕탕!’ 쏘아 죽이는 연극, 영화를 보며 얼마나 통쾌하고 의분의 피가 끓었던가?
어떤 수를 크기순으로 말하는 일, 십, 백, 천, 만, 억, 조, 경, 해, 시, 양, 구, 간, 정, 재, 극 그리고 10의 52승인 항하사(恒河沙), 56승인 아승지(阿僧祗), 60승인 나유타(那由他), 64승인 불가사의(不可思議), 68승인 무량대수(無量大數)가 있다.
항아사가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의 개수라고 하니 그보다 더 큰 수는 실로 셈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또 겁(劫)이라는 수치가 있는데 이는 천녀가 아주 가벼운 날개옷으로 일 년에 한 번씩 스쳐서 40리 너비의 바위가 다 닮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위와 같이 큰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작은 수를 말하는 분(分), 리(厘), 모(毛), 사(絲), 홀(忽), 미(微), 섬(纖), 사(沙), 진(塵), 애(埃), 묘(渺), 막(漠), 모호(模湖), 준순(逡巡), 수유(須臾), 순식(瞬息), 탄지(彈指), 찰라(刹那), 육덕(六德), 허공(虛空), 청정(淸淨)이 있다.
여기서 역시 청정은 10의 마이너스 21승이다.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크기다.
또 요즈음 과학의 발달로 인해 광년, 메가톤, 기가, 테라, 미크론, 마이크로, 나노, 피코 등의 수사도 있다.
뜬금없이 왜 크고 작은 수를 가리키는 말을 언급하는가 하면, 강만수가 대못 박아놓은 내 가슴에 오늘 아침 이정현이 같은 무리들이 또 무량대수와 청정의 대못을 겁의 수로 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작자가 내 가슴에 연이어 박은 대못은 흉탄인가? 정의의 총알인가? 아! 그 총알의 성분이야 어떻든 싫다.
끔찍하다. 이 놈의 나라!
하지만 서로 도와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부안에서는 부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선 안 된다. 아무리 흉악한 독재자의 딸이라도 대못을 박아선 안 된다.
북한 젊은이들이 최고존엄이라며 비에 젖은 김정일 사진을 붙들고 울지 않던가? 그러 하건데 하물며 최고 존엄의 가슴에 대못을 박다니?
우리 민초들이야 날마다, 뜬금없이 대못을 일상으로 박고 사는 미천한 자들이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한다. 지 애비애미도 아닌데, 격정을 못 이겨 앞뒤 못 가리고 눈물 흘리는 이정현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결코 부자나, 최고 존엄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 않아야겠구나, 생각한다.
서로 도와 살아가는 고을 부안에서는 특히나 말이다.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부자와 최고 존엄의 가슴에 박히는 대못이 그리도 아프고 억울하고 더하여 언어 살인이고 국기문란이며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망령된 짓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내 가슴에 시도 때도 없이 박는 대못은 황금이나 다이아몬드 이겠거니 하며 소중한 신주단지로 품고 부안 고을을 둘러본다.
먼저 부안군청 홈피를 살피니 부안군은 ‘전라북도의 서쪽에 있어 군산시와는 바다로 접경하고, 북동으로 김제시, 남동으로는 정읍시, 남으로는 고창군과 접해있다.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형태로 황해에 불쑥 나와 있는 반도이고, 남서부는 변산의 산이 겹겹이 쌓여 있으며, 북동부는 넓고 비옥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해안선은 동진강 하구에서부터 줄포면 우포리까지 99km며, 바닷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겨울철엔 눈이 많이 내리는 기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떠올리니 변산반도, 채석강, 내소사, 새만금을 가봐야겠다 싶고, 그리고 핵폐기장 투쟁의 기억도 되살아난다.
특히 변산반도는 산과 바다의 절경과 함께 풍성한 먹거리가 있어, 여행객들에게 최상의 여행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산속 낙원이 무주구천동이라면 바닷가 낙원이 바로 변산반도인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내변산의 위금암산성을 지나간다.
나당! 두 땅 도적들의 합동 침략에 맞서 꺼져가는 백제를 살리고자 했던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이었던 주류성이 이곳 부안의 내변산에 위치한 위금암산성이란 주장이 있다. 이 주류성은 홍성의 장곡산성, 서천 건지산성 등이라는 주장도 있어서 정확한 결론은 내리지 못하나, 중요한 건 이 땅을 밟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선열들의 피의 대가라는 것이다.
근현대에 이르러 친일파 족속들이 대대로 권력을 틀어쥐고, 그에 동조하는 떨거지들 쪽수패의 으름장에 눌려 고혈을 빨리며 살아가는 민초들이다. 나그네는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뭐할려고 이 땅을 그리도 피흘리며 지켰소? 그렇게 조상들께 원망 아닌 말을 또 한다.
그러다 아뿔사! 이런 소리 누가 들으면 또 좌파, 빨갱이, 종북이라 손가락질 하겠구나? 하며 쥐도 새도 없는 좌우전후, 하늘, 물속까지 재빨리 살핀다.
좌파는 왼쪽 손에 파를 든 거고, 빨갱이는 고춧가루 잔뜩 묻힌 김장김치 먹어서 이가 빨갛게 된 거고, 종북은 종치고 북치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하도 으름장을 놓는 푸른 기와집 청갱이와 종박들 때문에 또 겁(劫)이 났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강만수도, 이정현이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긴 서로 도와 살아가는 부안에서 그들이 박는 대못을 감사히 여기기로 했으니, 이제 겁낼 일도 없다.
그리 치부하고 위금암산성을 지나 매창과 신석정 선생을 만나러 갔다.
부안읍 서림공원에 매창 시비가 있었는데, 최근에 매창공원이 새로 또 생겼다.
이매창은 조선 선조 때의 여류시인으로 이름은 계생(癸生․桂生) 또는 향금(香今)이라 했으며 자는 천향이고 매창은 호다. 대표작으로 이별을 노래한‘이화우(梨花雨) 흩날릴제’가 있다. 촌은 유희경(村隱 劉希慶), 교산 허균(蛟山 許筠) 등과 사랑과 시를 나누었고, 1610년 38세의 나이로 조천했다.
신석정(1907년∼1974년) 선생의 본명은 석정(錫正), 석정(夕汀)은 아호다. 부안군 동중리에서 태어나 한 평생을 꼿꼿하게 선비 정신으로 살다간 시대의 스승이고 시인이다.
친일파 서정주가 잔재주로 문학과 민족정신을 흐리고 간 미꾸라지라면 이 분은 청정못의 은잉어라 할 수 있다.
두 분의 유적지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부안 기행에 나선 나그네는 행복할 뿐이다.
서로 돕고 의지하는 편안한 가정 부안제가(扶安齊家)의 고을 부안이다.
오늘은 부자와 최곤 존엄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 말자는 귀중한 가르침을 얻었으니, 발걸음이 가볍다.
핵폐기장 투쟁으로 그 상처의 치유가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 분들은 대못의 진리를 진즉 깨닫고 상처를 치료했나보다. 그 서로 돕고 살아가는 평화롭고 행복한 고을 부안을 나서 이제 나그네는 ‘호남(湖南)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全州) 백성(百姓)거느리는’ 법성을 찾아간다.
<이매창의 묘>
<석정 문학관>
<존경하는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래 인간 잘 좀 가르쳐주세요>
<NEWS is 에서 빌린 사진입니다. 저작권 위배되면 삭제할게요. 미련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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