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52

운당 2013. 10. 11. 09:40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52

 

곡성(谷城)의 묻힌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 제가(齊家) 이 아닌가?

 

곡성은 말 그대로 골짜기 고을의 성이다. 아름다운 섬진강을 끼고 온 고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또 곡성수(穀城樹)란 고목이 군청 앞마당에 있을 만큼 풍요로운 고을이어서 곡성(觳城)이라 한다.

이 풍요로운 곡성(觳城), 골짜기 고을 곡성(谷城)으로 들어서서 동악산과 형제봉, 그리고 섬진강이 보이면 , 천만다행히도 희대의 협작꾼 명박이의 4대강에 끼지 않고 살아났구나.’ 하고 감사와 고마움의 한숨을 쉰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광주에서 부산까지 하루가 걸리는 직행버스가 다녔다. 부산에서 학교에 다니던 나그네가 한 겨울에 그 직행버스를 타고 곡성에 도착하였을 때다.

날은 어두워졌는데, 온 세상이 눈으로 흠뻑 덮여있었다. 갑자기 폭설이 내린 것이다.

고갯길을 넘을지 모르겠네?’

곡성 정류장에서 차바퀴에 쇠줄을 걸며 기사가 혼잣말을 하던 게 엊그제 일 같기만 하다. 기사의 걱정을 남의 일처럼 흘리며 중학교 지리 시간에 배운 알프스 산의 풍광이 이러겠구나.’ 쳐다보던 눈 쌓인 산이 문득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은 학창시절의 그리운 추억이다.

그 눈 덮인 산이 동학산과 형제봉이란 걸 알게 된 건 여러 해 뒤다. 그러면서 그 계곡에 여인의 엉덩짝처럼 펑퍼짐한 마당바위가 널려있고, 도인이 숲처럼 몰려들었다는 도림사가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지금도 한 겨울 눈으로 덮인 곡성을 지나칠 때면, 눈 쌓인 산의 기세에 눌려 옷깃을 여미고 옛 추억을 떠올린다.

 

심산유곡(深山幽谷) 산골 곡성(谷城)에서 공부하는 선비들이 예의를 구(求禮)하고 큰 덕을 일으킨다(興德). 이 세상 모두가 곡성의 선비들처럼 그렇게 서로 돕는다면 평안한 부안제가(扶安齊家)가 절로 아니겠는가?

 

곡성은 산천경개가 아름답고 따라서 훌륭한 인물도 많다.

돌실나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모시와 사과가 특산물이며 효의 상징 심청의 고향 마을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고려 건국의 영웅 신숭겸 장군, 역시 고려 때 조통(趙通) 장군, 섬진강 도깨비 살로 유명한 마천목 장군, 임란의 의병장 유팽로, 양대박 장군, 조선 인조 5(1627) 정묘호란 때 안주에서 전사하자 부인 이씨 또한 뒤따라 목숨을 끊었다는 박언배 의병장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이 산골짜기 고을 곡성은 나그네의 정겨운 동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동무라고 하니, 또 오른쪽 눈이 사시가 되는 인간도 있을지 모르나, 친구보다 동무라는 말이 더 정감 어린 입말이고 어린 시절 추억의 새김말이다.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그 시절 동무와 어깨동무하고 부르던 노래다.

 

그 동무를 찾아 골짜기 고을의 성터 마을을 찾는다. 이제 고속도로를 타면 나그네의 집에서 이웃집처럼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또 곡성이다.

나그네의 동무는 곡성읍에서 섬진강을 건너 고달면 산자락에 새로운 삶터를 틀었다. 그곳에서 지척인 천마산을 넘으면 산수유와 온천으로 알려진 구례 산동이 나오고 춘향골 남원이 또 코앞이다.

 

나그네의 동무가 그곳 산자락에 앵두골, 진달래골, 밤골, 싸리골.’ 등 조선 팔도 고을을 만들어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자연친화적인 생태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또 그 생태마을에는 각 지역 문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할 거라고 했다. 자연과 인문이 만나는 장소일 텐데, 언젠가 그 골짜기 앵두골 주막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며 시를 읊조릴 수 있는 날이 있으리라 꿈을 꾼다.

고단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그런 호사를 맛본다면, 굳이 천국이나 극락을 빨리 가려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긴 빨리 가려고 하는 인간도 없지만 말이다.

 

이십년 잡고 시작한 일이네. 남은 평생의 놀이이기도 하고.”

새로운 일에 의지와 의욕을 불태우는 나그네의 동무는 곡성에서 민선 2기 군 의원을 역임했다. 누구보다도 향토를 사랑하고 곡성을 좋아하는 토박이다. 그 고향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담아 호를 또 자연이라 했다.

그렇게 나그네의 동무는 가슴 가득 우애와 정감이 넘쳐흐르는 의협거사다. 그리고 지난해에 오랜 교직에서 물러나 산천을 상대로 새로이 마주섰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동안 할 만큼 노력하고 살았다. 이제 한가로이 동악산과 형제봉을 오르내리고, 섬진강에 낚싯대를 던져도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하지만 지향하는 세계가 무엇이냐에 따라 지평은 언제나 열려 있고, 나름대로 추구하는 즐거움과 기쁨이 또 다시 샘솟나 보다.

나그네의 동무가 임시로 거처하는 곳에 들려 지난봄에 담가둔 두견주에 취하니, 이 세상 소풍 길도 고단하지만은 않다.

어느 날 다시 왔던 곳으로 조천할 때에 잠시 이승에 머무는 시간에, 이곳 골짜기 고을에도 꼭 다녀가리라.

 

곡성의 숨은 선비가 누구겠는가?

오늘은 바로 내 동무 자연 선생 안창순이다. 건강하게 하는 일 잘 되길 빌며 두견주에 취해 노래 한가락 흥얼거리며 구례로 넘어간다. 그저 수줍기만 한 첫 봄 아가씨 산수유 꽃을 보러 두근대는 가슴으로 간다.

 

<곡성읍, 섬진강 레일바이크를 바로 가까이서 탈 수 있다.>

<골짜기성터 같은 기차역>

<자연 선생 임시 거처의 수도 공사. 동무들이 모두 나섰다.>

<주 기술자 해강 선생이 마침내 통수식을 한다. 성공!>

<느그는 일하소! 난 먹을라네. 단감 입에 물고 삼매경>

<자연 선생이 의원으로 일했던 군의회>

<저만큼 동악산과 형제봉이 보인다>

<곡성의 숨은 선비 자연 안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