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51
고부(古阜) 청청(靑靑) 양유색(楊柳色)은 광양(光陽) 춘색(春色)이 팔도에 왔네
봄비는 조잘조잘 다정한 목소리인데 가을비는 으슬으슬 이빨 마주치는 소리다. 그 가을비가 종일 오신다.
아무튼 오시는 비를 어쩌랴? 주차간산으로 기행 마무리하고 나그네는 주막에 앉아 회포를 푼다.
“광양은 인재의 고장이라지? 바로 광양의 진산인 백운산(1,222m)의 정기 덕분이라지?”
“그래서 광양 처녀들은 결혼하여 애를 낳을 때쯤 고향에 와서 출산을 하기도 한다네. 백운산의 영험한 정기를 받고 싶어서지. 믿음만으로도 잘 생기고 예쁘고 총명하고 지혜로운 아이가 태어나는 거니까.”
“그래. 제 행운을 잡겠다고 남의 행복을 짓밟는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민초들을 위하는 훌륭한 인물이 많이 태어났으면 싶네.”
“민초들을 위하는 인물이라?”
“말이 나왔으니 광양의 인물 얘기나 들려주시게.”
“그러니까 광양의 백운산은 예로부터 봉황, 여우, 돼지 등 3가지의 영험한 동물 기운을 간직한 명산이라네. 그래서 봉황의 정기를 받은 최산두(崔山斗 1482~1536) 선생이 있고, 여우의 정기를 받은 고려 때 몽골 왕비 월애부인이 있다네. 돼지의 정기는 현재 큰 부를 누리는 광양 고을 자체고 말일세.”
“그래서 조선 영조 어사였던 박문수가 ‘조선 제일은 전라도요, 전라도의 으뜸은 광양(朝鮮之 全羅道, 全羅道之 光陽)’이라 예찬했겠지.”
“두말하면 잔소리지. ‘광양 춘색이 8도에 왔네’라는 호남가가 뜬금없이 생겼겠는가?”
“조선 풍수하면 도선국사로 알고 있네. 조금 전 지나쳐왔던 복원 공사 중인 옥룡사는 바로 그 고려 건국을 예언한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가 입적한 절이라했지?”
“그뿐인가? 고려 광종(光宗)때 뛰어난 학문을 높이 여긴 왕이 친히 공복(公服)을 하사한 김책(金策)도 이곳 출신이라네.”
“평양 부벽루(浮碧樓)를 찾아 ‘장성 한쪽은 넘쳐흐르는 물이요, 넓은 들 동쪽 끝은 점점한 산들(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이라고 쓰다가 통곡했다는 해동제일(海東第一) 김황원(金黃元 1045~1117)도 생각나네.”
“고려 말 우왕의 스승이었던 김약온(金若溫 1059~1140)도 이곳 분이시지.”
“민초들을 사랑한 분들 얘기도 좀 들려주시게.”
“민초들이라? 강희보(姜希輔), 강희열(姜希悅)은 형제 의병장이셨지. 1560년경 봉강면 신촌마을에서 출생 임진왜란(1592) 때 단성(丹城, 지금의 산청군)에서 싸웠고, 제2차 진주성싸움(1593)에서 형은 6월 27일, 동생은 6월 29일 장렬히 전사했다네.”
“황희 정승의 후손인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도 이곳 출생이시지?”
“그럼. 강위, 김택영, 이건창과 함께 한말 4대 문장가였는데 1910년 한일강제합방에 맞서 절명시를 쓰고 자결하신 분이지. 온통 친일파들이 설치는 작금에 다시 우러러볼 훌륭한 분이시지.”
“또 안 계신가?”
“한말 황병학(黃炳學) 의병장이 또 계시네. 진상면 출신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백운산 용성굴에서 병기를 제작 옥곡면 원유지구에서 왜병과 격전을 벌렸다네.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가 평양에서 체포되어 옥사하셨지.”
“왜왕께 충성 혈서를 쓴 자가 대통령이 되는 세상, 그 친일파 독재자의 딸이 아버지가 만든 정보기관을 이용하여 다시 대통령이 되는 세상, 할 말이 없으면 빨갱이 타령이나 하는 친일파 후손들이 설치는 세상에서 참으로 고귀한 광양의 인물들이시구먼.”
“암 그렇다니까. 그뿐인가? 이른 봄이면 10만여 그루에 달하는 매화나무가 새하얀 꽃을 터뜨려 눈부시게 하는 아름다운 고을이라네”
“그 매화나무를 1930년대에 율산 김오천이 전국 최초로 집단재배한 결과로 지금의 장관이 이루었다지?”
“그렇다네. 그리고 우리가 즐겨먹는 김도 1640년 이곳 광양 태인도의 김여익이 시작해서 해태를 ‘김’이라 부르게 되었다네.”
“조금 전 들렸던 망덕포구의 ‘윤동주(1917~1945)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도 지나는 길에 꼭 들려볼 장소라 여겨지더군. 그런데 어야! 얘기가 잠시 빗나가네만, 산수 좋은 곳에 훌륭한 인물이 태어나는 거 맞제?”
“그렇제. 우리 광양을 보고도 모르겠는가?”
“마찬가지로 집안이 훌륭하면 훌륭한 자손이 태어나는 것도 맞제?”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낳은 자식을 보고도 모르는가?”
“그렇다면 어째 그 인간은 집안이 훌륭하다는데 그런 시드기 같이 못된 짓만 할까?”
“누구?”
“김무성이 말이네. 가문은 훌륭한데 하는 짓이 개차반 아닌가?”
“그렇지. 그 종자 가문 뼈다귀로 보면 공룡 척추뼈다귀처럼 뼈대 있는 집안이지. 아버지 김용주(김전용주)는 일제강점기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 ‘황군’에게 위문편지 보내기 운동을 폈고, 해방이 되자 잽싸게 왜인들의 적산(敵産)인 ‘전남방직’을 불하받았읜 이명박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수완가였네. 또 희한하게도 아들과 동서지간으로 서로 호형호제하는 조선일보 방상훈과 ‘내외종(內外從)’이고, 누나는 친일파 708명의 명단에 있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현준호 집안으로 출가했으니 명문 뼈다귀에 방부제까지 칠한 셈이네. 또 처는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이승만 비서관과 자유당정권 공보처장, 박정희 시대 3선 국회의원 최치환의 딸이라네. 그러니 바로 공룡 척추뼈다귀 집안으로 왜나라 애국 명문 가문 아닌가?”
“현준호라면 얼마 전 국립공원이 된 무등산 들머리에 있던 제각 주인 아닌가?”
“그렇지. 우리 어릴 적 소풍가다 담벼락에 오줌 갈기던 그 솟을 기와집일세.”
“그 인간도 민초 고혈을 빤 친일파였군? 오줌 갈기기 잘했었구먼. 그때 알았음 똥까지 눌텐데 아쉽네.”
“친일 안하고 어찌 돈을 긁어모았겠는가? 이명박, 이상득 형제 도적놈을 엊그제까지 봐놓고 그런가?”
“쯧쯧쯔! 유구무언일세.”
“혀 찰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뒤 왜국의 식민지 노예가 된 조선민이 비참하게 산줄 알았지. 아, 그런데 김무성과 이명희의 뉴라이트 교학사 역사책을 보니 왜가 조선을 근대화 시킨 고마운 나라 아니던가? 친일파들은 이 땅의 선각자요, 바로 애국자고 말일세.”
“그래. 맞어. 또 그 백선엽이 놈 말일세. ‘조선놈은 조선놈이 제일 잘 죽인다’고 하며 독립군을 죽이던 놈에게 최근 10년간 업무용차량, 운전병, 개인보좌관을 편법으로 제공했다니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그뿐인가? 갱젠가, 경젠가 부총리인 현오석이 아비는 왜국 식민지의 순사부장을 했고, 419 때는 시민에게 발포 명령을 내렸던 자라네.”
“하긴 그 인간들도 광양에서 태어났으면 올바르게 세상을 살 텐데…. 태어날 곳을 잘 못 택한 셈이지. 뼈대가 있다지만 짐승 뼈다귀 집안에 태어났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그래도 광양 춘색이, 광양 백운산의 정기가 8도에 퍼지는 날에는 그 좀비들도 인간 쪽에 가까운 인간으로 되지 않을까?”
“희망이나 갖세. 자 얘기 그만하고 술잔 부딪치세.”
“좋지. 좋아.”
광양 친구들과 얘기하면 그 말투 억양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중간 지점이다. 광양이 ‘과양’으로 들린다. ‘장흥’이 ‘자흥’이라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나그네가 아는 광양 사람은 그렇게 말이 부드럽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고인이 된 소설가 주동후 선배와는 날 새기 술을 마셔도 정겨웠다.
지난해인 2012년 9월 언론에 보도된 광양 옥룡초등학교 이재민 교장도 광양 분이다. 지나는 길에 뵙지 못해서 그 때 기사 일부를 옮겨 광양 인물의 현재를 대신해본다. 아래는 기사 일부다.
광양 옥룡초등학교 이재민 교장의 취임식은 따로 식이랄 게 없었다. 이달 1일 자로 부임한 이 교장은 첫 출근한 3일 학생들을 먼저 맞으며 인사했다.
취임식장 공간도 나란히 줄을 세워 훈화를 듣게 하는 일방통행을 벗어나 전교생이 둥그런 형태로 편하게 앉도록 배치하면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 역점을 뒀다.
이 교장은 취임식에서, ‘학교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퀴즈도 냈다. 학생들은 손을 들어 ‘교장 선생님’ 등을 말했지만 이 교장이 생각하는 정답은 ‘학생’이다.
“그렇지. 나라에서는 백성이 가장 놓은 사람이고, 사람이고….”
“그런데 어째 말이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가?”
“희망사항일 뿐이라서 그러네.”
“희망사항? 절망사항 아니고?”
“어야, 술잔이나 또 부딪치세.”
“그러세!”
광양 춘색이 8도를 물들인다는 아름다운 그 고을, 가을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날 술 한 잔에 추억도 한 움큼, 또 한 잔에 우정도 한 움큼, 광양을 둘러보고 떠난다.
곡성(谷城)의 묻힌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 제가(齊家) 이 아닌가?
이제 나그네는 곡성으로 간다.
<광양시청 홈피에서 빌린 사진입니다.>
<이순신 대교의 야경, 역시 시청 홈피에서 빌렸습니다.>
<광양항의 컨테이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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