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53

운당 2013. 11. 22. 09:54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53

 

곡성(谷城)의 묻힌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

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 제가(齊家) 이 아닌가?

 

구례에는 지리산이 있다. 고을에 들어서 눈을 들어 지리산을 올려다본다.

부드러움, 포근함, 넉넉함, 힘과 강인함, 모두 더하여 아름답다.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인 기를 한껏 느낀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고을 구례, 신석기, 삼한시대에 고립국에 속했고(BC 300) 삼국시대에 이르러 백제의 구차례현이라 불렀다 한다.

이름이야 어쩌든 이곳 구례는 지리산 한 자락이 내어주는 섬진강과 함께 오랜 세월 숱한 얘기를 만들며 민초들을 보듬어준 한반도 남쪽의 큰 언덕이다.

 

구례를 찾은 것은 2013년이 마악 문을 연 봄이다.

앳된 봄 아가씨와 떠꺼머리 산골 총각을 만나러 산동의 산수유를 보러갔다.

과거와 달리 구례로 가는 길이 많아지고 좋아졌다. 나그네는 곡성 고달면을 지나 천마산을 넘어가는 길을 택했다.

마침 산수유 축제를 하고 있었다. 일찍 서둘렀기에 밀려드는 차를 앞서 산수유가 절정인 맨 위쪽 마을까지 갈 수 있었다.

 

산수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신비의 약재로 알려진 실과다. 이른 봄에 연노란 꽃이 피어, 꽃이 적은 시기에 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또 그 덕분에 가을이면 붉은 열매를 대롱대롱 맺는다. 얼른 보면 구기자와 비슷하나 조금 작은 대신 더 단단하고 야무지다.

듣는 바에 의하면 이 산수유 씨앗에는 독성이 있어, 예전에는 그 씨앗을 이로 일일이 발라냈다고 한다. 우리가 그저 쉬운 결과로 생각하는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또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정성이 오죽했을까 싶다.

마침 지나는 길에 산수유 엑기스를 파는 곳이 있어, 한 봉지 사서 마셨더니, 몸이 가쁜 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어따! 도둑질도 빠르네.”

마음씨가 좋은 사람은 약효가 빠른 법일세. 나쁜 사람은 아무리 좋은 거 먹어도 효과 없어.”

그리 농담하며 산수유가 만발한 꽃 속으로 들어간다.

!

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랴? 꽃을 보면 꽃을 주신 자연의 신비로움에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다.

사람도 아름다운 꽃처럼 향기를 내뿜는 사람이 있을 게다. 더하여 진정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이 많아졌으면 싶다.

결론은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은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든 말든 무슨 참견이랴? 아름다운 꽃을 보며 괜스레 헛생각 하는구나, 싱겁게 웃는다.

 

저 꽃 내년 봄에도 볼 수 있을지 몰라.”

20대 젊은 시절 그런 말을 하는 선배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곤 했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니 똑 같은 말을 하게 된다.

내년에도 꼭 다시 와서 꽃구경 하세.”

듣는 사람은, 특히 젊은 사람을 별 의미 없는 말이지만, 말하는 사람은 다시는 저 꽃을 못 볼 것 같은 비장한 맘으로 하는 말이다.

 

그래, 다시 봐야지.”

좋은 사람들과 이 꽃 보면서 죽는다면 한이 없겠네.”

어따, 이 사람아! 죽으면 무슨 소용 있는가? 좋은 사람들과 내년에도, 내내년에도 살아서 이 꽃 보며 건강하게 살세.”

이른 봄에 꽃을 보니 마음이 심숭샘숭 심란하다. 이럴 때엔 뭐니뭐니해도 머니를 주고 사는 소주 한 잔이 제격이다.

 

이곳 산동의 특산물이 산수유지만, 먹거리 중에 닭불고기가 있다. 산수유꽃 만발한 골짜기를 찾아들어 닭불고기 파는 식당으로 간다.

머니 3천량짜리 소주 한 병, 급히 따라 주욱 들이키니, 연노란 산수유꽃이 더 아름답다. 첫 사랑 연인의 모습이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살만하다면 얼마나 좋으랴?

 

이 산수유 우거진 골짜기를 나서면 추접스럽고 탐욕스럽게 움켜쥔 권세와 재력의 갑들이 을인 민초들에게 눈 흘기는 현세다. 나그네 역시 지옥이라면 지옥일 그곳에서 죽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버티면서 아등바등 살아야 할 것이다.

나쁜 놈 우글거리는 천국보다 자신이 지은 죄 갚으며 사는 지옥이 오히려 더 맘 편할 거라는 생각이다. 살을 태우는 불이 뜨겁고, 온 몸을 쑤시는 바늘이 따끔거리겠지만, 그건 몸이 겪는 고통일 뿐이니 마음은 평화로울 거라 믿기 때문이다.

술 한 잔에 맘과 몸이 지리산자락을 훠이, 훠얼월! 난다.

그래, 내년에도, 내내년에도 산수유 꽃을 보러 오자. 그렇게 나그네는 술 한 잔에 지리산 산수유꽃 향기를 안주로 보태어 마신다.

한 평생! 잘 살다 조천해야지, 그리 절망을 희망한다.

 

그런 희망으로 세상을 덕으로 일으키는 고을 흥덕을 찾아간다.

 

<구례 산동으로 넘어가는 천마산 쉼터에서 바라본 곡성쪽 풍광>

<구례 산동 산수유 마을>

 

 

 

<사진 기술이 없어 산수유의 아름다움을 표현치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만 배, 억 배로 보태어 아름다운 산수유꽃 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