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58
장성(長城)을 멀리 쌓고 장수(長水)를 돌고 돌아
그렇다. 중국에는 만리장성이 있고, 고려에는 천리장성이 있었다.
그리고 호남에는 민초들을 지키는 삶의 울타리 장성(長城)이 있다.
그런데 이 호남의 장성은 과연 민초들을 잘 보호해주고 그래서 자랑스러운 것인가?
얼마 전 민초들을 잘 살게 하는 세계 수영대회를 광주에 유치한다고 공문서를 위조해 웃음거리가 되더니, 이번엔 또 일당 5억짜리 판결이 광주에서 나왔다.
감옥에서 하루 종이접기 노역을 하면 일당이 5억이고 그 액수만큼 벌금을 감해준다는 것이다.
필자인 나그네는 십여 년 전 서울에서 집시법위반으로 개처럼 전경차에 실려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사흘간 구금되었고, 벌금 5십 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구금 하루에 5만원씩, 사흘간 노임인 15만원을 제하고 3십 5만원의 벌금을 냈다.
그러니까 나그네는 하루 5만 원짜리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508억 원의 탈세를 지시하고 100억 원을 횡령한 어떤 인간은 하루 일당이 5억이란다.
그러든지 말든지, 평화로운 맘으로 장성을 둘러본다.
장성호로 바로 간다.
장성호는 농업용수로는 전국 최대라 하는데, 저수량 1억여톤에 장성군을 비롯한 광주광역시, 함평군, 나주시 등의 농경지 11,000헥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그 장성호 둘레길에 장성호 관광지가 있고 문화예술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참으로 알토란처럼 박혀있는 쉬어 갈만한 멋진 장소다. 가까이에 백양사가 있고, 산채비빔밥이며 추어탕 등 토속음식도 있어 주말 가족나들이로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 장성문화예술공원에 호남시 시비가 있다.
김삿갓 작품이라고도 하는 저자미상의 이 호남시는 호남가와 더불어 호남의 고을이름으로 세상살이의 이치를 노래하고 있다.
쥐와 달구 등 갑들의 위조와 사기, 조작과 부정비리가 민초들인 을들을 위한 것이라 우기고 겁박하는 작태가 버젓이 통하는 사회현실이지만, 호남의 민초들을 보듬어주는 장성에서 호남시를 음미해보는 것도 허접한 꿈만은 아닐 것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고을 장성(長城), 그리고 마음의 울타리 장성(長城)에서 잠시 번잡한 세상사 내려놓고 호남시에 푹 젖어본다.
호남시(湖南詩)
하늘 높은 산(高山)으로 긴성(長城)을 쌓으니(天以高山作長城)
나라의 평화(咸平)가 온 고을(全州)에 통한다.(一國咸平通全州)
신령스런 바위(靈巖)로 옹기종기(形勢) 바다(海南)를 감싸(鎭) 안고(靈巖形勢鎭海南)
보배로운 고을(寶城)에 황금 담(金溝)을 쌓으니 아름다고 화려하다.(寶城奇麗重金溝)
언덕(臨坡)으로 바다를 다스려(治海) 정전법(井邑)을 세우니(臨坡治海畿井邑)
온 들녘(古阜)이 만경(萬頃)의 새 두렁(新阡)이다.(古阜新阡萬頃疇)
군신(君臣)이 함께(同福)하니 태평세상(太平世)이요(君臣同福太平世)
나라가 평안(扶安)하길 천만년(千萬年)이다.(國勢扶安千萬秋)
민심(民心)이 넉넉(咸悅)하니 사는 곳(居)마다 진안(鎭安)이고(民心咸悅鎭案居)
왕업(王業)이 장흥(長興)하니 하늘마저(順天) 편안하다.(王業長興順天休)
임금의 덕(君能)이 예의를(求禮)를 일으켜(動) 백성을 무안(務安)하게 하고(君能務安求禮勤)
나라 또한(國亦) 흥덕(興德)으로 다스리니(修) 창평(昌平)하다.(國亦昌平興德修)
민속이(民俗) 순창(淳昌)하니 오래오래 낙안(樂安)이고(淳昌民俗樂安久)
넉넉하고 어진 인심(泰仁)으로 화합하니(調) 화순(和順)하다.(泰仁人心和順調)
연봉(運峯)이 하늘에 있으니(揷天) 익산(益山)이라(雲峯揷天益山高)
기름진 들녘(沃溝)이 강을 이으니(連江) 오래오래 장수(長水)로다.(沃溝蓮江長水流)
동녘(扶東)의 떠오르는 붉은 해(紅旭)가 광주(光州)에 있으니(扶東紅旭編光州)
오얏나무(仙李) 가지마다(枝斗) 옥과(玉果)로다.(仙李枝斗玉果留)
능주(綾州) 금산(錦山)은 아름다운 비단으로 두르고(繡錦措)(綾州錦山繡錦措)
진도(珍島) 김제(金堤)는 재물이 넉넉(財賦優)하다.(珍島金堤財賦優)
남원(南原)의 꽃과 풀(芳草)은 무장의 봄(茂長春)이요(南原芳草茂長春)
서기로운 태양(瑞日)이 광양(光陽)하여 고창루(高敞樓)다.(瑞日光陽高敞樓)
상서(禎祥)로운 하늘의 기운(星世)이 무성하니 무주초(茂州草)요(禎祥星世茂州草)
보배(貨寶)로운 세상(山海)에 신령스런 빛이 가득하다(靈光浮).(貨寶山海靈光浮)
용담(龍潭)의 넘실대는 물결은(波瀾) 용의 집(龍安宅)이고(龍潭波瀾龍安宅)
환한 날(百里)의 담양(潭陽)이 세상의 뇌우를 거둔다(雷雨收).(百里潭陽雷雨收)
흥양(興陽)의 봄날(春日)에 만물이 화창(萬和暢)하고(興陽春日萬和帳)
곡성(谷城)에 꽃이 피니 산 빛도 그윽하다(山璟幽).(谷城花開山璟幽)
진산(珍山)의 섬(一道)으로 재화를 실어 나르는(走貨海)(珍山一道走貨海)
강진(康津)에 두둥실(泛彼) 장사배가 떠 있다(商客船).(泛彼康津商客舟)
너른들 고을(羅州)에 목민관(牧使)은 몇이나 될까(幾)?(羅州列官幾牧使)
임실(任實)의 길쌈하는 아이(織兒)들이 알고나 있는지(曾識否)?(任實織兒曾識否)
사나이(男兒)가 여산석(礪山石)에 칼(劒)을 가는 것은(男兒有劒礪山石)
섬 오랑캐(島夷)를 남평(南平)하고 괴수의 목을 베고자 함이다.(島夷南平將械頭)
호남(湖南)의 제주(濟州)에 바다가 잔잔하니(海不波)(湖南濟州海不波)
마음의 새긴 큰 뜻(旌意大諍) 온 세상에 이른다(淳溟州).(旌意大諍淳溟州)
나그네의 한자 실력이 일천하여 제멋대로 해석하고 음미해본다.
세상살이 뭐 별건가? 한자 모르는 게 위조도 아니고 5억짜리 일당도 아닌바, 남에게 피해를 줄 리 없으니, 그리 부족함을 메우며 이제 장수를 찾아간다.
(임권택 영화감독 비)
(호남시 시비)
<동판에 새겨진 호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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