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맺는 글
4박 5일의 북녘 여정, 길지는 않지만 분단 반세기를 훌쩍 넘긴 세월 속에서 어렵고도 힘든 교원들의 만남이 아니던가요? 결코 짧은 만남이었다고만 할 순 없지요.
작은꽃님! 그래서 나는 큰 건물이나 역사적인 사적지보다는 작은꽃님과 같이 소박하고 매력적인 분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삶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답니다. 삼지연 전적지에서도 김 주석의 그 큰 동상이나, 김 주석이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삼지연 호수 앞의 두 가지로 뻗어 잘 생긴 벗나무(자작나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답니다.
우등불 불빛으로 책 읽는 투사의 단정한 모습, 그 옆에서 사랑스런 얼굴로 바느질하는 아낙네, 다시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듯한 청년과 처녀의 당찬 모습, 해맑은 아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형상화한 당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의 삶의 모습에 더 애정이 갔답니다.
서산대사의 유적지이며 묘하고 향기로워서 묘향산이라는 묘향산국제친선관의 온갖 보물이나 기념물에도 별 관심이 없었답니다. 남쪽 합천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이 있다면 북쪽 묘향산 보현사에는 그 팔만대장경으로 찍은 대장경 책자가 보관되어 있었지요.
작은꽃님! 나는 그 대장경이 모셔진 절 집 앞의 화단에서 주지 스님께 허락을 받고 붉은 접시꽃 씨앗을 받았답니다.
무엇하려고 그랬느냐고요? 남녘 해인사에 북녘 보현사의 접시꽃 씨앗을 심으려고 그랬지요.
지금도 국제친선관에 진열된 그 신기하고 진기한 세계 각국의 보물들은 생각이 잘 나지 않지요.
묘향산의 그 맑고 깨끗한 계곡에서 멱 감는 아이들,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더 눈에 생생하답니다.
평양의 여러 기념물들도 많이 둘러봤지요. 김일성 탄생지인 만경대 혁명사적관에서도 애국, 애족, 애민을 가훈으로 삼았다는 말 이외에는 무얼 봤는지 큰 느낌이 없고, 다만 집 앞의 화단에 심어진 봉숭아며 과꽃 같은 꽃, 불티나게 얼음보숭이를 팔던 아가씨의 행복한 표정만 떠오릅니다.
주체사상탑은 170미터의 높이로 꼭대기에 오르자, 평양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지요. 그곳에서도 우리 남쪽 기념품 가게에서도 똑같이 볼 수 있는 고유의상을 입은 도령과 아가씨의 인형을 샀던 일만 기억에 또렷이 남습니다. 생김생김이 똑같은 게 당연한 일인데, 어찌 그리도 신기하게만 느껴졌는지, 지금도 똑같은 걸 이상하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답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기초입네다.’
우리 남과 북이 둘이 아니라면 그 주체라는 말도 조금도 이상하거나 색다른 말이 아닐겁니다. 그렇지요? 작은꽃님!
이밖에도 비를 맞으며 인민대학습당에도 들리고 김일성 종합대학에도 들렸지요. 인민대학습당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북녘동포의 모습을 보아서 좋았지만, 김일성 종합대학에서는 공부하는 학생은 못보고, 기념관만 둘러보느라 다리가 아팠습니다. 다만 거기서도 ‘청강, 다독, 사색, 토론과 론쟁, 현실체험, 실험 이것이 대학생들의 학습의 기본공간이며 방법입니다.’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이 보편타당한 금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수양버들 늘어진 보통강변의 청류관과 비 오는 날 대동강변을 바라보며 먹었던 국수(냉면)맛, 평양의 밤거리와 함께 했던 평양단고기집 이야기도 자랑삼아 언급은 해둬야겠지요. 아무리 북녘 말이라곤 하지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평양에선 교회도 관람시켜주는가 보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던 평양교예단의 환상적인 공연도 통일의 그날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은꽃님! 이밖에도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은 감정들이 참 많지만, 이제 한 마디만 더 쓰고 그만 줄이렵니다.
작은꽃님! 북녘에선 같은 성씨를 찾고 유대감을 갖는 게 봉건사회의 유물이라고 한다지요. 그래서인지 환송 만찬 자리에서 알게 된 나하고 같은 김해 김가였던 교직동 부위원장 김 선생은 종씨인줄 알고도 별로 반가워하는 눈치가 아니었지요. 하지만 공항에서 헤어질 때 ‘종씨 통일 되어 다시 만납시다’ 하고 다정하게 악수를 청하던 그 김 선생을 정말 통일 되어 다시 만나고 싶답니다.
그리고 환영 만찬장에서 짝꿍이 되어 들쭉술을 정답게 나누었던 원산 일중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젊고 미남인 리철성 선생도 통일의 그 날 다시 만나 이번엔 진도 홍주나, 법성포 토종 술을 함께 마셨으면 합니다. 유난히 두 눈 초롱초롱하던 조성록이도 물론 만나 뜀박질 한번 더 했으면 하지요.
사랑하는 작은꽃님! 내겐 그들 모두가 다 당신 같은 작은꽃님이니까요.
그럼, 작은꽃님! 안녕히 다시 만나요.
<백두산 천지, 눈 감아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사진 아랫쪽에 사랑하는 작은꽃님이 연분홍빛으로 곱게 피어있다.>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맨 오른쪽 봉우리가 장군봉이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이라고 쓰여있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정일. 장군봉에 쓰여있는 글씨>
<천지의 턱까지 올라왔다. 왼쪽 위쪽이 장군봉이다. 트럭은 북한 사람들이 타고 온 차, 버스는 우리 일행이 타고온 차다>
<노란꽃이 바로 두메 양귀비. 입을 맞춘 작은꽃님이다>
<천국의 꽃동산에 피어있는 꽃이다>
<백두산 천지 아래 들꽃밭에서 만난 북쪽 사람들.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백두산 밀영, 김정일이 태어난 곳이라 한다>
<밀영에 세워진 기념관 앞에 김일성의 시가 새겨져 있었다>
<기념관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원>
<밀영. 독립군들이 머물던 비밀 사령부다.>
<밀영의 독립군 숙소>
<침실인듯 싶다>
<작전을 짜던 장소인듯 싶다>
<추운곳이라 내무반 안에 취사도구가 있다.>
<밀영의 박샘 물 한그릇 마시고 나니 기운이 펄펄 난다. 일본군 댓놈쯤이야>
<만주벌판을 누비고, 백두산을 오르내리던 독립군의 숨결이 느껴진다>
<삼지연 호숫가 김일성이 기념사진을 찍은 벗(자작)나무다>
<일제식민의 시절, 삼지연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독립군 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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