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방문기

4박 5일의 북한 방문기 15

운당 2007. 11. 16. 06:16

5. 평양거리

작은꽃님! 오늘은 47층짜리 양각도 호텔 32층에서, 스쳐 지나가는 차안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보았던 평양의 인상적인 풍광을 들려드릴게요. 먼저 대동강의 새벽풍경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겁니다. 수양버들 늘어진 보통강을 받아들여 양각도와 능라도 두 섬을 만들고, 유유히 황해로 흘러 들어가는 대동강의 새벽은 볼 때 마다 그 감회가 달랐습니다.

안개를 피우며 평양의 아침을 여는 대동강은 결코 이방인일 수 없는 나그네에게 천지 기슭의 작은꽃님을 만났을 때처럼 오래도록 눈길을 돌리지 못하게 했지요. 새벽 비에 잔뜩 젖어 있는 강물은 그 위에 배 한척을 띄워 사랑하는 님의 손을 꼭 붙잡고 어디론가 머얼리 떠나고 싶은 그리움으로 맘을 설레게 했지요.

하지만 고려 때 시인 김황원이 모란봉의 을밀대에 올라 대동강의 절경에 반해 시를 짓다가 ‘산산산….’하고 더 이상 시상을 떠올리지 못하고 해질 무렵 울면서 내려왔다는 을밀대는 가보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았답니다. 대동강은 보았으나 정작 그 강물은 보지 못한 듯 큰 아쉬움이고 안타까움이랍니다.

그래서 을밀 선녀가 하계에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과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 을밀이 지켰다는 을밀대는 다음에 평양을 방문하게 되면 제일 먼저 다시 찾아볼 작정입니다. 옛 시인처럼 울고 내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또 길거리에서 책을 손에 들고 읽으며 걸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길거리 풀밭에서 뒹굴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무척이나 행복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해질녘 마을 앞 광장에서는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소년단의 합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합주부가 마을별로 조직이 되어있고, 그렇게 일정한 시각에 모여서 연습을 한다고 했습니다.

학생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9월 9일 기념일을 위해 김일성 광장에 모여 질서정연하게 집단행진 연습을 하는 수많은 평양 시민들의 모습도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다는 그런 싫은 표정을 어디서고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나무 그늘 밑에선 연습을 하고 돌아가던 여자 분들이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티비에서 보았던 길거리의 여자 교통경찰들, 비 오는 날에 얼굴 부위가 동그랗게 오려진 독특하게 생긴 하얀 비닐 비옷을 입고 교통정리 하는 모습도 참으로 멋있었습니다.

지하철역은 무슨 예술의 거리 같았습니다. 지하로 꽤나 깊이 내려갔던 지하철역은 그대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 ‘우리 남쪽에서 왔습니다.’ ‘통일 되어 다시 만납시다.’ 다정하게 서로 손을 흔들던 남녀노소의 얼굴들도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아, 또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그렇듯 작은꽃님에게 보여드릴 정겨운 한 폭의 그림이 한 장 더 남았습니다. 그 그림은 군가를 부르며, 힘차게 두 팔을 흔들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남자 병사들 틈에 끼여 발걸음을 맞추느라 보폭을 빨리하던 안쓰럽고 앳된 인민군 여병사의 모습이 아닙니다. 평양에서 세 번째 날, 비 오는 아침에 거리에서 만났던 출근길의 우산 쓰고 자전거 탄 시민들도 아닙니다. 그 비오는 날 아침, 보통강변에서 보았던 아내는 황소를 끌고, 남편은 쟁기를 잡고 비를 맞으면서도 부부가 다정스레 쟁기질 하던 모습도 아닙니다. 낚싯대를 던져놓고 미루나무 그늘에 그림자처럼 서있던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강태공도 아닙니다. 대동강 변을 다정스레 손잡고 걷던 연인들도 아닙니다. 더운 날씨에 비로도 치마, 양단 저고리를 입고 행복한 표정으로 사적지를 둘러보던 북녘의 여인들도 아닙니다. 포장마차에서 얼음보숭이를 팔던 아가씨도 아닙니다. 평양역에서, 시내버스 역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앉아있던 시민들의 모습도 아닙니다. 거리 한 모퉁이에서 금세라도 멱살을 움켜잡을 듯 큰 소리로 싸우던 두 남자들도 아닙니다.

바로 해질 무렵 ‘강경생맥주집’ 앞에 줄을 지어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이랍니다. 양복을 입은 사람, 인민복을 입은 사람, 그냥 반팔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한 잔의 맥주를 위해 기다란 줄로 서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작은꽃님! 통일이 되면 할 일이 많겠지요. 그렇지만 내가 무슨 큰일을 하겠어요? 빛나는 큰일은 다른 분들이 할 거고 나는 그저 큰 트럭에 맥주를 가득 싣고 가서 실컷 나눠 마시렵니다. ‘괜찮습니다’를 ‘일없습네다’ 라고 말하는 그 물매화 같이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두메양귀비 같이 친절하고 매력적인 사람들과 흠뻑 취하도록 마실 겁니다. 작은꽃님! 그래도 되겠지요?

<평양교예단의 깔끔하고 멋진 공연을 함께 관람했던 평양 시민들>

<평양 지하철 역사>

<마침내 지하철이 도착했다>

<타기 전에 재빨리 기념 사진을 찍는 남쪽 사람들>

<시민들 틈에 섞여 이야기도 나누고>

<평양 거리를 지나며 차 안에서 찍었다>

<조선은 하나다>

<표어가 걸린 건물의 모습>

<보통문>

<보통강 옆의 화력발전소>

<보통강변의 청류관 평양냉면집. 저만큼 강가에 수양버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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