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여행기

이집트, 그리스, 터키 여행기 11

운당 2008. 3. 23. 23:39

볼만한 것은 람세스 2세의 카레시 전투( BC1292년, 지금의 시리아 쪽 히타이트족과의 싸움)의 벽화였다. 또 반드시 쌍으로 세우고, 신전 입구를 알리기도 하며, 전쟁에 이긴 전승사를 기록한다는 오벨리스크였다. 이 세계 최대의 오벨리스크는 하시수 여왕이 세웠는데, 한 개는 프랑스가 가져가 콩코드 광장에 있다고 했다.

또한 양의 모습을 한 상들이 많았는데 이 양들은 고대 이집트의 신인 아무나(아누비스)를 상징한다고 했다. 아무나 신의 부인은 유투이고 아들은 콘츠라고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의 홍수는 아무나 신이 올챙이를 많이 낳아서 그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 물이 불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홍수가 나면 재산과 인명피해도 크지만, 기름진 퇴적물 때문에 농사가 잘 되어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홍수를 신의 선물로 생각했다고도 한다. 또 전쟁 후 돌아와 보니 아이들의 숫자가 불어난 것을 보고 아무나 신의 은총이라고 기뻐했다고도 한다. 석벽과 돌기둥에 그 아무나 신이 양의 모습이 아닌 파라오의 모습으로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었는데, 역시 자랑스럽게 쭉 뻗은 아무나 신의 고추가 장대처럼 길고 컸으며, 그 끝에서 올챙이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루를 둘러봐도 다 볼 수 없을 까르락 신전을 주마간산으로 휘둘러보고 도는 횟수만큼 부활한다는 풍댕이탑 앞에서 도는 대신 기념사진만 찰칵(부활을 믿지 않으니까)하고, 신관들이 목욕을 위해 나일강물을 끌어들여 만들었다는 네모난 연못(성스러운 호수) 앞에서도 목욕대신 사진만 찍었다.

그 화려한 영광은 세월에 묻히고, 금세라도 거대한 돌덩이를 떨굴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지만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새삼스럽게 생각케 하는 웅장, 장엄, 신비스러운 건축물이 바로 까르락 신전이었다.

그렇게 영광과 쇄락을 가슴에 담고 다음 목적지는 까르락 신전의 보조신전이라는 룩소 신전으로 향했다.

 <람세스 2세의 카레시 전투를 새긴 암각화>

 <한 명 죽이면 살인자, 둘 죽이면 살인마, 많이 죽이면 대통령이란 말이 있었던가?>

 <하시수 여왕의 오벨리스크, 짝인 한 개는 문화재 가져가기로 위대한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있다고 한다.>

 <저 한 개의 오벨리스크를 위해 죽어간 백성, 노예들에게 영광과 평화 있으라!>

 <부활을 꿈꾸는 파라오의 후예들, 부활의 상징물 풍댕이 상을 돌며 영세불멸을 꿈꾼다.>

 <모가지를 비틀어 풍댕이가 고통에 못이겨 빙빙 도는 걸 보며 '마당 쓸어라' 신이 나서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풍댕이 상 앞의 신관들이 목욕을 했다는 성스러운 호수>

 <마누라를 발 가운데에 세운 람세스 2세 파라오라고 했다.> 

 <왼쪽 기둥을 잘 보면 쭉 뻗은 파라오의 고추를 볼 수 있다.>

 <돌이기에 몇 천년을 버티며 후손들에게 부활의 덧 없음을 말하고 있다.>

 <부활? 그거 오해였어! 덕담한 거였어.>

 <무너진 부활탑아!>

 <양의 모습으로 현신한 아무나신. 아무나, 누구든지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이겠지.>

 <신? 돈이 신 아닌가? 실용, 경제가 신이라 그 말이다. 아파트 값 떨어지면 안 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