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학원이 신세 5

운당 2008. 1. 11. 07:22

<야! 이노므 자식아! 니 커서 뭐가 될끼고?

나 대통령 될끼다.

대통령? 대통령 돼서 뭐할낀데?

돈 많이 벌끼라.

돈? 돈 많이 벌어서 뭐할낀데?

어른들이 안 그라나? 갱제를 살려야 한다 안카나. 그래서 나도마 갱제를 살릴끼라?

갱제? 그래 니놈이 우찌 살릴낀데?

나도마, 운하를 팔끼라. 백두산을 뚫고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 아프리카로, 또 그라고 알래스카를 거쳐 캐나다 미국까지 뚫어버릴끼라.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운하를 또 팔끼라. 그라모 배타고 에베레스트 산도 올라갈 끼라. 두고봐라. 대통령 되믄 돈 벌어서 꼭 할끼라. 근데 아비야? 왜 아무말이 없노.? 니 기절했나? 아비야! 니 심장검사 좀 받아야겠다. 와 그리 심장이 약하노? 이 정도 말에 기절을 다 하노? 아비야! 아비야! 말 좀 해봐라. 하이고마 이라다 우리 아비 영영 못보는 거 아이가. 제발 눈좀 떠보라케이.> <사진: 다음 아고라 양재원님 사진입니다.> 

<근디 아가야! 대통령 될 생각 허들들 말아라.

아자씬 뉘기요? 왜 놈의 일에 쓰잘데기 없이 참견인기요?

나? 뭐, 그려. 그러니께 별 볼일 없는 나그넨디. 근디 아가야! 대통령은 배고프단다. 그라니 딴 거 돼라.

아입니더 난 대통령 될깁니더. 다 필요없다고 해써애. 이 세상에는 돈밖에 없다고해써애. 그라니 우얍니꺼? 대통령되야서 돈 벌고, 돈 벌어서 갱제를 꼭 살릴낍니더.

이노마! 갱재도 좋다만 기절한 니 애비부터 살려야겠다. 후딱 병원에나 가자.>

 

<소설>

학원이 신세

 

<5>

아무튼 그 무렵 이 초시가 학원이 어미의 초가집에 다녀가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여럿 있었다.

가운말 사는 복만이의 증언이다.

“아, 며칠 전 새벽이었단말시. 내가 노름방에서 밤새 쪼그리고 앉았다가 나오는디 아랫배가 빵빵하니 곧 터져버릴려고 했당께. 아, 근디 그 귀한 소피를 아무데나 갈기면 손해잖어? 안 그래? 그려서 우리집 밭에다 거름으로다 쓸려고, 밭있는 데까정은 어떻게 어떻게 겨우겨우 참고 갔지. 막 미어터지며 소피가 나올라고 허는 요놈을 요러케 두 손으로 꽉 쥐어잡고 고렇게 초가집 옆 우리 밭까지 갔단 말시. 그래 마침내 도착을 혀서 걍 벼락 총소리 나게 물건을 꺼내놓고선 시원하게 소피를 보는데, 아이고메 깜짝 놀래라. 아, 느닷없이 이 초시가 안개를 헤치고 그 초가집에서 나오는 거여. 이 초시가 날 보더니 무슨 죄지은 것처럼 깜짝 놀라더랑께. 나도 귀신을 본 것처럼 깜짝 놀랐제. 그래 후다닥 소피가 다 나오지도 않은 요 물건을 기냥 후다닥 바지 속으로 집어넣는디. 아, 그만 남은 거름을 바지 안에다 줘버렸당께. 그래서 그만 바짓가랑일 다 적셨제. 아이고, 내 아까운 거름! 흐흐흐흐!”

벌말 사는 댕동이의 증언도 복만이의 증언과 일치한다.

“흐흐흐흐! 그랬었노? 참말로 아까운 거름 헛반디다 씰데없이 줘버렸고마. 그랑께 나도 봤다마. 나는 말이다. 술 퍼마시고 늦게 오다가 오줌이 마려웠는기라. 우리 밭은 멀고 그래서 이왕이면 친구인 니놈 밭에다가 거름을 보태줄려고 한껏 오줌을 참았다아이가. 나도마 요렇게 아랫도리를 비비꼬아서 터져나오는 오줌을 겨우겨우 참고 니놈 밭으로 갔다아이가. 하이고 그라고는 물건을 꺼내 고놈을 소방펌프 잡듯 두 손으로 움켜잡고는 기냥 오줌을 쫙 갈겼다 아이가. 아따 그 역사적인 순간에 어떤 문딩이가 불쑥 나타나는기라. 그만 히껍해서 귀신인가 도채빈가 봤더니 그게 바로 이 초시 아니겄나? 그 이 초시가 뭐가 캥기는지 이마빡 빡빡 긁으며 그 초가집으로 들어가더고마. 하이고마 나도 놀래켜서 간이 벌라당벌라당 뛰는디, 고마 니놈처럼 요 물건을 후다닥 집어넣다가 그만 남은 오줌을 바지안에다가 으히히히히! 하이고 고마 니놈 행님께서도 니놈처럼 아까운 거름 씰데없이 버린기라. 키키키!”

“아따. 니놈들은 디럽게 무신 오줌 얘기만 계속하노? 나도마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아이가. 이 초시가 곡식자루를 끙긍 짊어지고 그 여자 초가집 들어가더니 마루에 덜푸덕 내려놓더구마.”

역시 벌말 사는 마동이의 증언이다.

“근디 말여. 그 왜놈 있잖어. 다까낀가 다꾸앙인가 하는 놈말여. 꺼떡하면 ‘빠가야로 조센징’하면서 겁나게 우덜을 무시하면서 무섭게 구는 놈 말여.”

“그 신작로 낸다고 와서 지게 작대기도 아닌 무신 작대기를 세워놓고 들여보면서 손가락 까딱까딱 하는 그 쌍판대기 더러운 왜놈종자 말여?”“아따 우예 니놈들은 그리 무식하노. 그게 그라니까 그 막대기를 측량기라고 하고 그 측량기를 가지고 다니는 인간종자를 측량기사라칸다 이 말이다. 알겄노?”

“그려 그려. 너 잘났어. 암튼 그 측량기산가 촐랭인가 먼가 하는 그 왜놈종자도 그 초가집에 뻔질나게 들락거린다든디.”

“그 왜종자뿐만이 아니다구마. 읍내 왜놈 순사들도 지집 드나들듯 한다던디.”

“근께 그 여시같이 이쁜 년이 이 초시 전용이 아니다 고말이구만?”

“아따. 또 일들은 안 하고 쓰잘데기 없는 말들만 하고 있네. 이 썩을놈들아! 일이나혀. 일들 하랑께. 토깽이같은 새끼들, 여시같은 마누라 입에 풀칠은 혀야할거 아녀?”

“그려. 그려. 근디말여. 일하러 가다 자빠지면 후딱 인나불지 말고 기냥 쪼까 자빠진대로 요리저리 땅바닥을 잘 살펴보더라고 잉! 혹시 아남? 눈먼 돈이라도 주스면 이 초시 작은 지집이 사는 초가집에도 가보고말여. 잉, 잉!”

아무튼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소문들이 마을 주변을 떠돌아 다녔다. 하지만 누구든 그 말을 이 초시 면전에선 해보질 못했다. 더욱 ‘빠가야로 조센징’이라며 마을 사람들을 똥개 다루듯 하는 그 무서운 왜놈종자들 앞에서는 마치 진짜 똥개처럼 꼬리부터 내리고 눈치 실실 봐야 하는 형편이니, 무슨 말을 할 게재가 되질 못했다. 그냥 심심풀이 땅콩처럼 수근대는 말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이 초시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학원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이제 학원이 어미가 입을 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학원이의 출생에 대한 비밀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뭐 또 그렇게 아등바등 알아낼 일도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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