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학원이 신세 3

운당 2008. 1. 7. 06:35

<12월 26일 발견된 기름에 절은 가마우지 한 마리를 10여일 치료후 다시 바다로 날려보낸다는 연합뉴스의 반가운 사진이다. 죽어버린 뿔논병아리에 비하면 그래도 넌 참 운좋은 녀석이다. 하지만 너도 네 정다운 친구들을 저 바다에서 다시 만날지 어떨지?>

<청정해역 전남 무안 도리포 해변까지 기름덩어리들이 밀려왔단다. 이제 초장, 된장 대신 저 기름덩이를 생선회에 찍어 먹어야 하나?>

<일 저질러 놓고도 나 몰라라 하는 인간 말종들-니들도 학원이 신세가 될 날이 있어! 그게 역사의 교훈이야. 알어?-흥, 걱정말라고? 뭐 말라 비틀어진 역사냐고?-그래 니들 팔뚝 굵다, 굵어. 하이고! 워낙 잘난 니놈들 낮짝 봐야 하니, 속 터진다, 속 터져...>

 

<소설>

학원이 신세

 

<3>

“야, 이놈. 학원아!”

대뜸 똑다리 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이고, 강첨지 어르신! 어인 행차시옵니까?”

일이 되느라고 마침 움막에 있었나보았다. 그래도 문이랍시고 너덜너덜 헤어진 가마니가 젖혀지며 학원이의 낮짝이 보였다.

“허험! 네 이놈! 학원아. 니놈이 문자를 쪼까 안다고 하는디, 내가 한 번 시험을 해보겄다.”

“하이고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시다요?”

“야, 이놈아! 근께 니놈이 그냥 문자도 못 쓰는디 문자를 잘 쓴다고, 그런 요상스런 헛소문을 내고 다녔다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라는 그런 말이다. 본시 문자란 고상하고 거룩한 선비와 양반들이 쓰는 것이다. 그런디 니놈이 쓰지도 못하는 문자를 쓴다고 헛소릴혔다면, 선비와 양반을 사칭하고 능멸한 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시는 니놈 볼기짝이 성치 못할 것이다. 아니 모가지가 두 개여도 그 죄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어험!”

강첨지는 헛기침을 하며 그렇게 일단 기선을 제압한 뒤, 은근슬쩍 뒷말을 이었다.

“그렁께 말이다. 시방 니놈이 어디 지방이란 것을 쓸 수 있겄느냐?”

“근께 그 지방이란 것이 제사상에 붙이는 거시지라?”

“아따, 듣던대로 니놈이 신통한 놈이네. 비렁뱅이 거지 주제에 지방이 먼지를 다 알고 말여. 그려 맞다 맞어. 바로 고 제사 때 쓰는 지방을 시방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첨지와 학원이의 말귀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아이고, 어르신! 알았구먼이라. 그런께 오늘이 어르신 자당님 기일이시지라? 소인이 한 번 써보겠구만요.”

학원이는 굽신굽신 거리며 그까짓 거 문제도 아니라는 듯 강첨지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해주었다. 그런데 학원이가 쓴 지방을 받아든 강첨지의 입에서는 뜻밖에도 호령이 튀어나왔다.

“네 이놈! 비렁뱅이 거지놈이 건방지게 문자는 무슨 놈의 문자냐? 문자라는 것은 고상하고 거룩한 양반들만이 쓰는 학문이라고 내가 날마다 강조를 하고 있다. 그려서 상것들이 문자를 쓰는 것은 양반과 선비를 능멸하는 큰 죄가 되느니라. 하지만 내 오늘은 니놈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봐줄테니, 어디 가서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돼느니라. 알았느냐?”

“하이고! 어르신! 지 모가지가 두 개가 아니구먼요. 걱정 콱 붙들어 매시면 되구만이라.”

학원이는 연신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강첨지의 손에 엽전이 들려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옛다 이놈아! 오늘은 내가 특별이 니놈에게 은전을 배푸노니, 이 하해같은 은혜를 잊어선 안 된다. 쓸데없이 입주댕이를 나불거리다간 모가지가 성치 못할 것이다. 알았냐?”

“예이, 어르신! 어르신!”

강첨지는 다시 한 번 엄히 학원이를 닦달했고, 학원이는 눈알을 뒤집으며 곧 죽는 시늉을 보여줘서 둘이는 원만하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아무튼 그날 강첨지는 학원이 덕분에 큰 걱정을 해결했다. 학원이도 모처럼 강첨지가 던져주는 엽전 열푼을 받아 주막에 가서 농주 한 병을 거하게 마셨다. 돼지고기도 두근이나 샀다.

“아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이시. 학원이가 돼야지고기를 사가지고 가고 말여.”

“그려요. 낼은 해가 서쪽에서 뜰것이구먼요. 근디 아줌씨! 나 왜말책 좀 구해줄 수 없을께라요? 거 왜말 배우는 책이요.”

“그건 또 뭐하려고? 학원이가 왜말을 배우려고?”

“아따 아니구먼요. 왜말이 어쩌코롬 생겼는가 귀경할려고 그래요. 그리고 그 왜말이 징그럽게 무섭대요. 근께 방에다 그 왜말책을 놔두면 귀신이 범접을 못한데요.”

“아따 인자본께 학원이가 말도 참 재밌게 하네. 암튼 보리주먼 돈 안줄까? 돈만 줘. 내가 읍내 가서 그놈의 왜말 책인가? 웬수책인가를 사다줄틴께.”

“하이고, 고맙구만이라.”

학원이는 주막집 주모에게 왜말책을 사달라며 술 값 돼지고기값을 치르고 남은 엽전 석냥을 맡겼다.

그날 밤 학원이 노모도 간만에 고깃국물로 목구멍 때를 벗겼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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