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학원이 신세 2

운당 2008. 1. 6. 07:25

<김영삼씨. 한국의 전 대통령으로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내 29만 3천원밖에(?) 없는 깡통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재주좋은 전두환은 노숙자가 되지않고 가끔 골프를 치러다닌다. 김영삼씨는 또 정권 말기에 외환위기(아이엠에프)를 불러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는 큰 영광(?)을 안고 산다. 한때 전두환에게 김영삼 왈

'너는 골목강아지다'라고 하자, 전두환 왈

'너는 주막집 강아지다'라고 맞받아쳤다.

영국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그때부터 한국에서는 개를 내세워도 대통령이 된다는 시초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인구에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1970년대 남해대교 건너 이순신 장군 사당에 수학여행 학생들을 싣고온 기사들이 조르륵 앉아서 나누었다는 잡담이다.

'야, 니들 빨갱이 김선상 잘있노?'

'잉, 글재. 근디 사쿠라! 근께 니들 김사쿠라도 잘 있냐?' 잉?

더 이상 앞으로 그런 세월은 없었으면 한다.>

<미스 필리핀 출신이라는 이멜다씨다.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부인으로 구두가 삼천컬레, 온갖 보석을 지녔다는데 그 값이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필리핀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데도 미국처럼 잘 살지는 못한다. 사회의 양극화, 정신 못차린 이멜다 같은 인간들 덕분에 필리핀 서민들도 고생깨나 하나 보다.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는 기천억, 기백억짜리 그림이며, 선물로 받았다는 기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보며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다시는 아이엠에프가 오거나 대다수 국민이 노숙자 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소설>

학원이 신세 2

 

<2>

그런데 들리는 풍문으로는 학원이는 머리가 명석하고 대단히 잘 돌아간다고 했다. 한 번 들은 이야기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인근 10여개 마을의 대소사, 그러니까 관혼상제며 생일, 심지어 아이들 백일, 돌잔치까지 주루룩 꿰고 있다고 했다. 아무개집 숟가락이 몇 개요, 마루 밑에 디딤돌은 있는가? 없는가? 굴뚝은 어디에 있는가? 등 뭐 그런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다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깨너머로 훔쳐본 뒤 지게막대기로 쓱쓱 그려보고 써본 문자지만, 웬만한 선비는 울고 갈 정도로 빼어난 솜씨라고 했다.

“학원이 대갈통 속에 서당 훈장이 한 댓놈 살고 있다여”

사람들은 그렇게 학원이의 학문 실력과 지혜를 평가하였다.

낯선 나그네가 찾아와 고장의 형편이나 인물에 대해 물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 똑다리 밑에 학원이라는 비렁뱅이 거지가 사는데, 그 학원이에게 물어보시오.”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고장의 물산에 대한 일, 뉘 집 족보며 고장 인물들의 내력이 어떻다는 것까지도 학원이가 달달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소문도 있다. 탱자골 사는 강첨지가 제삿날이 되어 지방을 쓰려고 할 때였다.

그런데 이게 웬 조화란 말인가? 먹을 갈아 붓에다 그 먹물을 듬뿍 발라서 화선지 위에다 척하니 마악 문자를 쓰려는데 이거 이상한 일이다. 두터운 안개가 끼였는지 눈앞이 희뿌연하기만 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막막했다. 그 놈의 문자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구불거리며 머릿속에서만 지렁이처럼 기어 다닐 뿐이었다.

분명히 지난번 제사 때는 쓱쓱 썼었다. 아 그런데 그 오살놈의 문자가 하필이면 그날따라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래 두꺼비처럼 눈을 끔벅끔벅 애매한 붓대롱만 뱅뱅 굴리다가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먹물이 듬뿍 묻은 붓끝을 혀로 가져가 쪽쪽 빨았다.

그러니 이 일이 어찌 되었겠는가?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입안은 물론 강첨지가 자랑하는 그 염소수염이 듬성듬성 돋아난 턱까지, 그렇게 입주변이 온통 먹물투성이로 시커멓게 되고 말았다.

이런 일을 자식들이 알게 되면 체면을 완전히 구기는 일이다. ‘선비란 모름지기 일분 일초라도 학문을 게을리 해서는 안 돼는 법이다.’며 그동안 ‘선비입네, 양반입네’하고 큰 소리 땅땅 쳤던 강첨지다.

더욱이 그동안 ‘이런 미련 곰탱이 같은 년!’, ‘무식하고 멍청한 년!’하며 얼마나 마누라의 기를 팍팍 죽였던가?

“하이고 속터져! 저런 일자무식인 년을 데리고 살다니. 어허엄! 미련곰탱이 같은 년.”

강첨지는 그렇게 말끝마다 마누라를 무식하고 멍청하다는 말로 쥐 잡듯 닦달하며 끽소리 못하게 입을 막았다. 그런 다음 강첨지는 휭하니 대문을 박차고 나서기 일쑤였다. 미련 곰탱이 같은 마누라의 살림살이 때문에 속이 상할만큼 상했으니, 도저히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한 잔 걸쳐야 겠다는 심사의 표출이었다.

강첨지는 위세도 당당하게 똑다리 옆 색주가로 갔다. 속이 상했으니 이제 흥청망청 술을 마셔도 되는 것이다. 아, 미련 곰탱이 같은 마누라 때문에 술을 마실 수 밖에 없다는 데 감히 누가 뭐라 트집을 잡겠는가? 이처럼 확실한 명분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오늘은 영 아니다. 제사 지방은 그만 두고라고 입주변이 먹물투성이가 됐으니, 그꼴을 보면 마당에서 비실거리는 똥개가 웃을지도 모른다. 강첨지는 자식들, 마누라가 알까, 쑥스럽고 민망하고 은근히 맘이 캥겼다.

그동안의 체면을 완전히 구긴다는 생각에 이 일을 어찌하나? 눈알을 이리 저리 희번덕이며 굴리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선지와 붓이며 먹물을 챙겨서 똑다리 밑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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