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과체시 책색두

운당 2022. 2. 13. 09:08

김삿갓이 쓴 208여 편의 과체시 중에서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들이나, 서당의 학동들에게 그 당시 교과서처럼 읽히고 암송되면서 널리 알려졌던 7언 18행의 시 책색두(責索頭)’이다.

 

책색두(責索頭)

내 머리를 돌려 달라는 것을 책망하다

 

 

1. 아고수단무색처(我股雖斷無索處) 검사연남수동류(劍事燕南水東流)

2. 영웅이허호간담(英雄已許好肝膽) 귀신하관공촉루(鬼神何關空髑髏)

3. 봉장이약불개구(逢場爾若不開口) 실수남아환자수(失手男兒還自羞)

4. 자오서입책재수(資吾西入責在誰) 진색기시번장군(秦索基時樊將軍)

5. 청산독항병서리(靑山督亢並書裏) 백일아방동검투(白日阿房同劒投)

6. 영아환주역족쾌(瀛兒還柱亦足快) 비수영혼풍반추(匕首英魂楓返秋)

7. 오두왕겁계문석(烏頭往劫薊門夕) 하고장군원어추(何故將軍怨語啾)

8. 혼귀북망매수조(魂歸北邙每受嘲) 사거서천유재수(事去西天猶載讐)

9. 난망천고용사원(難忘千古勇士元) 무괴거심한유유(無怪渠心恨悠悠)

10. 산동협월지금백(山東俠月至今白) 유구형경언욕수(有口荊卿言欲酬)

11. 천금이락가수고(千金爾諾假手苦) 일검오행지기유(一劍吾行知己由)

12. 함중양목역친견(函中兩目亦親見) 패즉기천수원우(敗則基天誰怨尤)

13. 가인무부단수한(佳人無復斷手恨) 처사하회문경우(處士何會刎頸憂)

14. 금수유두갱하용(今誰有頭更何用) 초목공산동부후(草木空山同腐朽)

15. 인형본비단부속(人形本非斷復續) 속어성운은반구(俗語誠云恩反仇)

16. 번가칠족진운수(樊家七族盡殞首) 차역어진능색부(此亦於秦能索否)

17. 당초호내대담경(當初胡奈大膽傾) 필경공연후골구(畢竟空然朽骨求)

18. 두환고국이하방(頭還故國爾何妨) 호척함양구추초(好擲咸陽丘秋草)

 

1. 내 다리도 진왕의 궁전에서 절단되어 찾을 곳이 없어 내가 행한 검극은 한갓 연나라 남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간 물과 같이 허무한 옛일이 되어버리고

2. 영웅이 일단 마음을 털어놓고 자기 마음을 허락한 이상 귀신이 된 이제 와서 썩어버린 뼈다귀를 찾는 것이 어인 일이냐.

3. 우연히 그대와 만난 이 자리에서 그대가 입을 열어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에 실수를 한 내 자신이 돌이켜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바다.

4. 그러나 내 그대에게 묻노라. 나를 이용하여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게 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것은 바로 연나라의 태자 단이었으며 또 진 나라가 연나라 번 장군의 머리를 구하고 있었으니 책임의 일부는 장군에게도 있는 것이다.

5. 나는 장군의 머리를 독항 땅 지도와 함께 서류 속에 넣어 진왕의 궁성인 아방궁에서 검과 함께 진왕에게 던졌던 것이다.

6. 진왕이 나의 칼을 피해 구리기둥을 돌아간 것도 장쾌한 활극이었고 비수 앞에서 떠난 우리들의 영혼은 가을 단풍잎처럼 지하세계로 돌아왔다.

7. 이리하여 오두백 마두각 하는 말을 이야기하면서 의분에 떨던 일은 이미 연나라 서울에서의 아득한 옛일이다. 그런데 오늘 무슨 까닭으로 장군의 원성이 이리도 추추(啾啾 : 슬픔)히 하는가.

8. 그렇지 않아도 내 자신은 일을 실패한 뒤 혼이 북망산에 돌아가서도 서쪽 하늘 아래 원수가 그대로 남아있음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이 때문에 또 남의 조롱을 받고 있다.

9. 하기는 용감한 영웅이 자기 머리를 천고에 잊지 못하는 그 그윽한 마음도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10. 그러나 산동의 검객들의 기개를 상징하는 냉랭한 달빛이 지금도 의연히 흰 오늘 저녁 입이 있는 이 형경도 한마디 할 말이 있다.

11. 내가 이 장쾌한 검극을 계획한 것은 당신들이 천금 같은 승낙을 주었고 손을 빌려 방조하여 친우의 정을 기울여준 때문이다.

12. 내가 일을 실패함은 그대 함 속에서 부릅뜬 눈으로 보았듯이 하늘 운수에 달렸던 것이다. 내 허물만은 아니었으니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13. 참고삼아 내 그대에게 한 가지 예를 들어보는데 연나라 태자 단의 궁전에서 베푼 연회에서 내가 희롱삼아 한 말로 해서 애첩이 손목을 잘렸다. 그러나 그 애첩은 조금도 손 잘린 원한을 말하지 않으며 또 처사 전광이 비밀을 엄수한다는 증거로 자기 머리를 스스로 잘랐으나 그 역시 조금도 머리 잃어버린 한탄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대 혼자만 지금 머리를 내어 놓으라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14. 또 설사 지금 그 머리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빈산에서 초목과 한 가지로 썩어가고 있는 백골 아니냐.

15. 사람의 형체란 본디 끊어지면 다시 잇지 못하는 것이어 든 그대가 만약 지금 머릴 찾더라도 무엇에 쓸 것인가. 실로 은혜가 도리어 원수로 되었다는 옛날 말이 맞는다고 할 것이다.

16. 더하여 장군 번가의 칠족(七族)도 진나라에서 진왕에게 사형을 당했거늘 그들도 다 그곳에서 머리를 찾고 있는가.

17. 당초에 왜 대담하게 승낙을 하여 놓고 지금 와서 괜스레 공연히 썩어빠진 뼈를 구한단 말인가.

18. 그대 머리는 고국에 돌아가 함양(咸陽 : 진나라 서울)의 풀 우거진 좋은 곳에서 편안히 묻혔으니 다행이다. 이 내 몸은 원수 나라에서 객사하여 영원히 고국에도 못 가니 그 얼마나 원한에 사무치겠느냐.

 

* 영아(嬴兒) : 진왕의 성이 영()이었다.

* 풍반추(楓返秋) : 사람의 혼이 풍엽(楓葉)에 붙어 다닌다는 민간어에서 나온 말이다. 영혼이 가을 단풍과 함께 돌아갔다는 걸 뜻한다.

* 계문(薊門) : 연나라 서울

* () : 머리

 

위 과체시는 사마천이 쓴 중국 사기의 자객전기(刺客傳記) 중에서 형가전(荊軻傳)을 토대로 김삿갓의 특유의 재치와 해학을 가미하여 쓴 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자객전기에 나오는 형가에 대해 약술해 보겠다.

중국에 진(), (), (), (), (), () 등 칠국이 서로 싸우던 전국시대에 연()나라 태자 단()이 진나라에 인질로 붙잡혀 있었다.

그런데 진나라에서는 태자 단을 아주 무례하고 부당하게 대우했다.

외롭고 괴로운 인질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태자 단은 수차례에 걸쳐 자신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럴 때마다 진왕은 오두백 마두각(烏頭白 馬頭角 : 까마귀 머리가 희여 지고 말 머리에 뿔이 나면 돌려보내 준다)하면서 무시하였다.

드디어 견디다 못한 단은 어느 날 밤 야음을 틈타 도망을 쳤다. 그리고 무사히 고국에 돌아왔다.

단은 귀국한 뒤 진나라 왕에게 어떻게든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심사숙고하던 차에 그의 선생인 처사(處事) 전광(田光)에게 의논하였다.

전광은 즉시 자기와 친한 자객(刺客) 형가를 단에게 소개하였다.

형가는 본래 위()나라 사람으로 고국에서는 그를 경경(慶卿)이라 불렀는데 연나라에 들어온 뒤에는 형가라고 불렀다.

형가는 연나라에 와서 일부러 자기 몸을 낮추느라고 소나 돼지를 잡는 백정(白丁)들과 친하게 지냈다.

한편 악기 축(: 거문고 비슷한 대로 만든 악기)을 잘하는 고점리(高漸離)와 친하게 지내면서 술에 크게 취해서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다니곤 했다.

형가는 미친 척 크게 노래 부르고, 고점리는 축으로 그 노래에 반주를 했다. 그들은 사람이 있음을 꺼리지 않고 큰 소리로 울기도 했다.

형가가 처사 전광과 친교를 맺게 된 것도 그러한 과정에서의 인연이었다.

전광 선생의 소개를 받고 태자 단을 만난 형가는 후한 대접을 받으며 단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하였다.

단이 그 방법을 물었다.

어떻게 하면 진나라 왕을 죽일 수 있겠느냐?”

형가는 머뭇거림 없이 서슴없이 말했다.

지금 연나라에 망명하여 와 있는 진나라 장군 번어기(樊於期)의 머리와 함께 연나라의 비옥한 땅 독항(督亢) 지방의 지도를 그려가지고 가면 진나라 왕을 죽일 수 있습니다.”

번어기는 진나라 장군이었는데, 죄를 짓고 연나라에 망명을 했었다.

진나라는 그 번어기의 목을 베어오는 사람에게는 돈 천금(千金)과 만호(萬戶)의 읍()을 준다고 현상을 걸었다.

또 진나라는 연나라의 비옥한 땅 독항지방을 빼앗으려고 몹시 탐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태자 단은 번어기와 대단히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였다.

어떻게 번어기의 목을 가지고 가겠느냐?”

그건 걱정 마십시오.”

형가는 그 길로 직접 번어기 장군을 찾아갔다.

번어기 장군! 진나라가 장군의 가족을 다 죽여 버리고 또 장군의 머리에 돈 천금과 읍 만호를 현상으로 걸고 있으니 그 원수를 갚지 않으시렵니까?”

물론 원수를 갚을 생각이야 간절하지만, 무슨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그것은 제가 장군의 머리를 가지고 진나라에 가서 진왕에게 주면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그 순간의 기회를 노려 나는 왼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고, 바른 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를 것입니다. 그러면 장군은 장군의 원수를 갚게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장군의 가족과 장군의 은인인 연의 태자의 원수까지 갚아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정말, 당신이 그렇게 진왕을 죽일 수 있겠소?”

장군! 난 본래가 자객입니다. 틀림없이 해치우리다.”

번어기는 형가의 말에 몇 차례나 다짐을 받더니 서슴지 않고 자기 손으로 자기 목을 벴다.

이럴 즈음 또 하나의 비장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단이 전광 선생에게 이 일이 절대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부탁을 했을 때다.

태자님! 그 점은 절대로 안심하십시오.”

전광은 말을 마치기가 바쁘게 자기 목을 잘라 자결하여버렸다. 자기 입에서는 절대로 비밀이 누설되지 않을 것임을 죽음으로 명백하게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형가가 출발하기에 앞서 단은 잔치를 차렸다.

그리고 단은 사랑하는 애첩에게 형가의 잔에 술을 부어 주라고 했다.

술에 취한 형가가 취중농담으로 단의 애첩에게 말했다.

그 여자 손이 참 예쁘다.”

그 말을 들은 태자 단은 그 애첩의 손목을 잘라 쟁반에 담아오도록 했다.

아까 첩의 손이 곱다 하여 여기에 가져왔습니다.”

단의 애첩도 자신의 손목이 잘린 것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또 마침 단이 타고 다니는 흰말이 뜰 안 나무에 매어있는 것을 보고 형가가 말했다.

술안주에는 뭐니 뭐니 해도 말 간이 좋지

잠시 뒤, 이번에도 그 말의 간이 쟁반에 담겨져 나왔다.

이것은 다 태자 단이 어떻게든 형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해서 형가는 드디어 열세 살 나이로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진무양(秦舞陽)이라는 용감한 소년을 데리고 진나라를 향해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에 역수(易水)라는 강가에서 형가는 굳은 맹세의 시를 읊었다.

 

풍소소혜(風簫簫兮) 역수한(易水寒)

장사일거혜(壯士一去兮) 불복환(不復還)

바람은 소슬하고 역수는 차구나

장사가 이제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형가는 마침내 진나라에 들어갔다. 포악한 천하의 원수 진왕을 만났다.

형가는 그 진왕이 소원해 마지않던 번어기의 목과 비옥한 땅, 독항의 지도까지 바쳤다.

왕이 흐뭇한 얼굴로 그 포장을 풀어보니 번어기의 목과 지도 밑에서 한 자루의 칼이 나왔다.

형가는 재빨리 그 칼을 집어 왼손으로는 진왕의 소매를 잡고, 바른손으로 진왕의 가슴을 찌르려하였다.

하지만 진왕도 빨랐다. 진왕이 잽싸게 피하는 바람에 형가의 칼은 빗나가고 말았다. 형가가 그러쥐었던 소매 끝만 찢어지고 왕은 도망을 쳤다.

형가가 진왕의 뒤를 바싹 따르며 칼을 휘둘렀지만, 그 칼날은 번번이 진왕의 몸을 비키며 헛나갔다.

마침내 또 다시 진왕의 목덜미가 형가의 손길 안에 들어왔다. 형가의 칼이 진왕의 목을 향해 허공을 그었다. 마악 칼날이 목덜미에 닿는 순간 진왕은 또 다시 구리 기둥 뒤로 몸을 감추었다. 형가의 칼날은 구리기둥에 부딪쳐 불꽃이 튀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순간이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던 여러 신하들이 정신을 차리고 뒤따라가 형가의 두 다리를 장검으로 잘라버렸다. 형가는 쓰러지면서도 진왕에게 칼을 던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또 그 구리 기둥으로 인해 칼은 빗나가고 형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처럼 위의 시, 책색두(責索頭)는 형가전에서 소재를 얻어서 쓴 글이다.

즉 어느 날 밤에 번 장군과 형가의 귀신이 서로 만나서 담화를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때 번 장군이

내 머리가 있어야 원수를 갚는다 해서 일부러 머리를 잘라 주었는데 일을 성취 못하였으니 내 머리를 내어놓으라.”

고 하자, 형가 귀신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피차에 다 뜻이 합하여 사내대장부가 한번 허락한 마음이다. 그리고 어찌 일의 성패가 전적으로 내 책임이기만 하느냐? 이제 와서 썩어빠진 머리를 돌려달라는 것은 무슨 소리냐?”

번 장군을 책망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책색두는 형가에 대한 김삿갓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삿갓은 여기서 진왕을 죽이러 갔다가 그만 실패를 하고 천추의 한을 남긴 형가에게 한없는 애석의 감정을 표시하고 있다.

아울러 그의 책임을 추궁하고 그 과오를 운운하는 식자들에게 귀신의 입을 빌려서라도 그를 극력 변호하고자 한다.

김삿갓은 산동협월지금백(山東俠月至今白)인데 유구형경언욕수(有口荊卿言欲酬)라 하면서 형가를 극력 변호하느라 만장의 호기를 부리고 있다.

김삿갓의 독특한 역사적 관점과 사상과 철학을 알 수 있어 매력이 넘치는 시이고, 역사라는 게 무엇인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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