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밤, 사야(死 夜)
1. 여름 밤
빛고을 남쪽 남광주 시장
지하철에서 땅으로 올라와 엘리베이터 앞
나이 든 사람들만 타는 거 아니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이용하는 그 오르락내리락 틀 앞
그 앞에
감자 몇 알
맞아, 과일도 있었네.
저녁 찬거리도 있었네.
이것저것 있었네.
직설로
샥스핀, 캐비어, 송로버섯 먹는 정레기들 눈엔
음레기로 보일 것들이 있었네.
더워도 너무 더웠던 2016년
여름 내내 그늘도 없는 그 자리에
가림막 우산도 없이
시커멓게 탄 얼굴의 노점상 아낙이 있었네.
덕지덕지 화장품은 옛 얘기고
쥐도 닭도 보톡스 맞아 하 수상한 팽팽한 시절에….
시커멓게 탄 그 모습 애달파, 서글퍼 가슴 아렸네.
그런데 아낙 얼굴 너무도 평화로웠네.
맞아.
지아비를 위함인지
자식을 위함인지 모르지만
아낙은 말없이 평화로웠네.
길손이 물건을 사건 말건….
한동안 지나치는 사람도 뜸한데….
허리춤 뒤지더니 손가락에 침을 묻혔네
오후 다섯 시 아직은 따가운 햇살에 비춰
구겨진 배추 잎 지폐 두어 장 세어보는
그 모습 너무도 평화로웠네.
내겐 슬픔이, 아픔이
그 아낙에겐 보람이었나 보네.
노점 단속이 언제 있을지
내가 다 조마조마 두려운데
그 아낙 얼굴 행복해 보였네.
2. 가을 밤
한 평생 걷다보니
눈앞에 강이로다
나도 가고 님도 가실
아라리 강이로다
강 건너 뱃사공아
이 강 건너 저승이면
배 밑 판자 구멍 내고
그냥 저냥 핑계 대소
그냥 저냥 미뤄두소
한 세월 걷다보니
눈앞에 강이로다
나도 가고 님도 가실
아라리 강이로다
강 건너 뱃사공아
이 강 건너 저승인들
가야 할 곳 마다 하리
그냥 저냥 건너가리
그냥 저냥 찾아가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날 넘겨주소.
3. 겨울 밤
1917년
시인은 별이었다.
매국노는 반신반인이었다.
2017년
시인은 여전히 붙박이별이고
매국노는 우표딱지가 되었다.
4. 봄밤
산수유는 구례산동
홍매화는 구례화엄사
보리밥, 묵은지
보릿고개 어덕 위
얇은 구름 파르르 걷히니
물도, 하늘도 하얗다
옛 동무에게 구례(求礼)도 하려니와
봄길 달려 꽃님에게 봄맞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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