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산골 마을에 떡보가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바보 떡보라 불렀습니다.
“우리 집 밭을 좀 갈아주게.”
“예! 저는 땅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떡만 먹게 해주시면 돼요.”
“논에 물을 대야겠네. 와서 일 좀 하게.”
“예! 저는 땅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떡만 먹게 해주시면 돼요.”
마을 사람들이 떡보에게 일을 부탁합니다. 그러면 떡보는 ‘예’하고 대답합니다. 땅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을 해주는 대가로 떡만 먹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떡보를 바보 떡보라 불렀습니다.
“어이! 바보 떡보!”
동네 아이들이 그렇게 놀려댑니다.
“히히히! 바보 떡보!”
바보 떡보는 아이들이 놀려도 희죽희죽 웃기만 했습니다. 바보 떡보라고 불려도 싫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바보 떡보가 일을 해주고 떡을 받아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이 서쪽 하늘을 곱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히히히! 저 저녁노을은 꼭 호박떡 색깔이야. 히히히!”
바보 떡보는 손에 든 떡 때문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고갯마루를 넘어갈 때입니다.
고갯마루 위에 덩그마니 서있는 느티나무 아래에 웬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쉬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이 바보 떡보를 불렀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절 부르셨나요?”
“응! 자넬 불렀지.”
“예! 전 바보 떡보라 해요. 무슨 일이세요?”
“응, 지금 내가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하고 배가 몹시 고프네. 먹을 것을 좀 주겠나?”
“먹을 거요? 지금 저 한 테는 떡 밖에 없어요. 떡이라도 드릴까요?”
“떡? 그거 좋지. 난 떡을 좋아한다네.”
“예! 그럼 떡을 드릴 테니 잡수세요.”
바보 떡보는 가지고 있는 떡을 절반 뚝 떼어 노인에게 드렸습니다.
“어이, 젊은이! 내가 배가 너무 고프네. 좀 더 줄 수 없겠나?”
노인은 눈 깜짝할 새에 떡을 먹어버리고 더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세요. 배가 몹시 고프신가 보네요. 저는 내일 일을 해주고 떡을 얻으면 되니까 많이 드세요.”
바보 떡보는 나머지 절반의 떡도 서슴없이 노인에게 드렸습니다.
“어이 고맙네. 너무 고마워.”
이번에도 눈 깜짝할 새에 떡을 먹은 노인이 바보 떡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자네 덕분에 배가 불렀으니 내가 그 고마운 은혜를 갚아야겠네.”
“하이고, 은혜라니요. 배부르시다니 됐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젊은이! 사람은 은혜를 입으면 보답을 해야 하는 법이네. 잠깐만 기다리게나.”
“은혜라니요? 저는 떡밖에 드린 것이 없습니다.”
“배 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줬으니, 그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나? 잠깐 내 말을 듣고 가게나.”
노인은 잠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요즈음 몹쓸 귀신들이 돌아다니네. 그 귀신들이 내 말을 엿들으면 안 되네. 그러니 이리 가까이 오게나.”
노인은 바보 떡보를 가까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귀엣말을 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내일 이웃 마을 김 첨지가 자넬 부를 거네. 그리고 일을 시킬 거야. 그리고 ‘떡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할 걸세’ 하지만 내일은 절대로 땅에서 일하는 게 좋다고 하지 말게. 떡을 달라는 말을 해서도 안 되네.”
“땅에서 일하는 게 좋다는 말도 하지 말고, 떡을 달라는 말도 하지 말라고요?”
“그렇다네. 그 대신 ‘저는 장가를 가고 싶습니다. 따님과 혼인을 시켜주십시오’ 라고 말하게.”
“김 첨지 딸에게 장가가고 싶다하라고요?”
“그렇다니까. 꼭 그리 말하게나. 알겠나?”
“예!”
사실 바보 떡보는 장가를 가고 싶었습니다. 김 첨지 딸도 먼발치에서 몇 번 보았습니다. 숨이 막힐 듯 아리따운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떡보는 감히 장가갈 생각을 못했습니다.
“꼭 내 말대로 하게나. 그러면 김 첨지 딸에게 장가를 갈 수 있을 거네. 알았나?”
노인은 바보 떡보에게 한 번 더 다짐을 주었습니다.
“예! 어르신.”
바보 떡보는 노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뭐라고? 바보 떡보가 김 첨지 딸에게 장가를 간다고?”
그 때입니다. 그 근처를 돌아다니는 못된 귀신 하나가 노인과 떡보의 말을 엿들었습니다.
그곳에는 못 된 귀신 넷이 있었습니다. 물귀신인 물노가리 귀신,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쪼그라진 닭귀신, 낙지 머리를 한 낙지귀신, 이마가 번들번들 빛나는 생쥐귀신 등이었습니다. 모두들 한 때는 인간이었으나 이제 귀신이 되어 몹쓸 짓만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야하는데, 살아있을 때 워낙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은 저승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죽자마자 몰래 숨어버립니다. 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돌며 또 다시 나쁜 짓을 합니다. 그 귀신들을 모두 청계라고 합니다.
물노가리, 닭, 낙지, 생쥐 등 그 청계 귀신 넷이 바보 떡보의 마을 근처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 생쥐귀신이 노인과 바보 떡보의 이야길 엿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보 떡보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김 첨지 딸과 혼인을 할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설래 날아가듯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김 첨지 집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이보게, 바보 떡보! 김 첨지 어르신이 부르네.”
“예! 알았습니다. 곧 갈게요.”
바보 떡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김 첨지 집으로 갔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집 일을 해줘야겠네.”
“예! 어르신!”
“자네는 땅에서 일하는 게 좋으니까, 품삯으로 떡만 주면 되겠지?”
“아닙니다요. 저는 장가를 가고 싶습니다. 따님과 혼인을 시켜주십시오.”
김 첨지의 말에 바보 떡보는 노인이 시킨 대로 말했습니다. 딸에게 장가를 가고 싶다는 말만 했습니다.
“뭐라고?”
김 첨지의 눈 꼬리가 올라갔습니다.
“지금까지 일하는 게 좋다고 해서 떡만 주면 되었잖은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헛소리가 아닙니다. 저는 장가를 가고 싶습니다. 따님과 혼인을 시켜주십시오. 그러면 시키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김 첨지는 곰곰 생각했습니다. 일은 시켜야겠는데, 딸하고 혼인은 시키기 싫어서였습니다.
“좋아. 그럼 조건이 있네. 지금 가뭄이 들어 들녘이 벌겋게 타들어가고 있네. 그러니 들녘을 촉촉이 적셔줄 큰 둠벙을 파주면 내 딸하고 혼인을 시켜주겠네.”
“둠벙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바보 떡보는 너무 좋아서 삽과 괭이를 챙겨들고 들녘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물이 나올만한 곳을 골라 구덩이를 팠습니다. 1m쯤 파보고 물이 솟구치지 않으면 다른 곳을 또 팠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물이 콸콸 솟구쳐오를 장소에 이르렀습니다.
‘이거 큰일이다. 저길 파면 샘물이 콸콸 솟구쳐 둠벙이 될 텐데…. 정말 큰일이다.’
아침부터 물귀신인 물노가리가 바보 떡보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보 떡보를 골탕 먹일까 했습니다. 그러다 바보 떡보가 샘물이 솟구칠 장소에 이르자 화들짝 놀랐습니다.
“안 돼. 파지 못하게 막아야 해.”
몰노가리 귀신은 바보 떡보의 팔을 꽉 붙들었습니다.
“이거 왜 이러지. 갑자기 팔이 왜 이리 무겁지.”
바보 떡보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끙 하고 팔에 힘을 주어 괭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야! 바보 떡보의 힘이 너무 세구나.”
이번엔 물노가리 귀신이 괭이를 힘껏 붙잡았습니다.
“이거 갑자기 괭이가 왜 이리 무겁지.”
바보 떡보는 온 힘을 다해 괭이를 휙 낚아채서 높이 쳐들었습니다.
“이키키!”
그 순간입니다. 물노가리 귀신이 ‘털부덕!’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이런 몹쓸 녀석이 있나. 재수 없게 귀신이 달라붙었구나.”
바보 떡보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물노가리 귀신을 괭이로 콱 찍어버렸습니다.
“아이고! 나 죽네.”
그만 물노가리 귀신은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먼지처럼 스러져버렸습니다.
“자, 샘을 파자. 둠벙을 만들자.”
바보 떡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물구덩이를 팠습니다. 한참 뒤 그 물구덩이에서 샘물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금세 커다란 둠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 첨지는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이보게 바보 떡보! 일 하나를 더 해야겠네. 저 위쪽 산밭이 너무 가물어 돌밭이 됐네. 그러니 오늘 중으로 밭 흙을 떡살처럼 만들어 놓게. 내일 씨를 뿌리도록 말일세. 그럼 내 딸과 혼인을 시켜주지.”
바보 떡보에게 또 일을 시켰습니다.
“예! 그러지요.”
바보 떡보는 이번에도 삽과 괭이를 챙겨 산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먼저 삽으로 밭을 파 엎기 시작했습니다.
“흥! 네놈이 내 친구인 물노가리를 없애버린 바보 떡보구나? 이번엔 내가 널 가만두지 않겠다.”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쪼그라진 닭귀신이었습니다. 바보 떡보의 뒤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자, 밭을 파자. 떡살처럼 보들보들하게 만들자.”
바보 떡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삽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갑자기 삽이 땅속에서 빠지질 않았습니다.
닭귀신이 바보 떡보의 삽날을 꽉 붙잡았던 것입니다.
“하나, 둘, 셋!”
바보 떡보는 힘을 끙 주며 삽을 휙 잡아챘습니다. 그 바람에 ‘털부덕!’ 닭귀신이 땅속에서 나와 툭 떨어졌습니다.
“이런 이번에는 늙어빠진 닭귀신이구나. 이런 못된 것!”
바보 떡보는 삽으로 닭귀신을 콱 찍어버렸습니다.
“아이고! 나 죽네.”
그만 닭귀신도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먼지처럼 스러져버렸습니다.
닭귀신을 없애버린 바보 떡보는 열심히 일을 계속했습니다. 산밭의 흙을 떡살처럼 보들보들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 첨지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이보게 바보 떡보! 일 하나를 더 해야겠네. 내가 요즈음 낙지를 먹고 싶네. 그러니 오늘 중으로 낙지를 잡아오게. 그럼 내 딸과 혼인을 시켜주지.”
바보 떡보에게 또 일을 시켰습니다.
“예! 그러지요.”
바보 떡보는 대나무로 낚싯대를 만들어 바닷가로 갔습니다.
하지만 낚시질은 처음입니다. 바보 떡보는 하루 종일 고기 한 마리 낚지를 못했습니다.
“흥! 네놈이 내 친구인 물노가리와 닭을 없애버린 바보 떡보구나? 이번엔 내가 널 가만두지 않겠다.”
낙지 머리를 한 낙지귀신이었습니다. 물속에서 바보 떡보의 낚싯바늘을 붙들고 실실 웃고 있었습니다.
“이거 웬 일이지? 낙지를 잡지 못했으니 이제 장가가기는 틀렸구나.”
바보 떡보는 실망이 컸습니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집니다. 바보 떡보는 낚싯대를 그만 거두어드리려고 잡아당겼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낚싯대가 꿈쩍을 안합니다. 이번에도 바보 떡보는 ‘하나, 둘, 셋’을 세며 낚싯대를 힘껏 잡아챘습니다.
‘털부덕!’ 이번에는 낙지귀신입니다.
“흠! 네 녀석이 날 골탕 먹였구나. 좋아. 이번엔 널 김 첨지 밥상에 올리겠다.”
바보 떡보는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낙지귀신을 김 첨지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 첨지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이보게 바보 떡보! 일 하나를 더 해야겠네. 일을 하려면 튼튼한 신발이 있어야 하네. 그러니 오늘 중으로 아무리 신어도 헤어지지 않는 신발을 만들게. 그럼 내 딸과 혼인을 시켜주지.”
바보 떡보에게 또 일을 시켰습니다.
“예! 그러지요.”
대답을 했지만 바보 떡보는 답답했습니다.
‘어떻게 아무리 신어도 헤어지지 않는 신발을 만들지?’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실망한 바보 떡보는 김 첨지 집을 나와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갯마루를 넘을 때였습니다.
고갯마루 위에 덩그마니 서있는 느티나무 아래입니다.
“이보게. 젊은이! 날 알겠나?”
지난번에 만났던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었습니다.
“예! 어르신.”
바보 떡보는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그래, 김 첨지 딸하고 혼인은 하게 되었나?”
“아닙니다. 어르신!”
바보 떡보는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그까짓 신발 만들기는 아무 일도 아니네. 내 하라는 대로 하게나.”
이번에도 노인은 바보 떡보에게 귀엣말로 아무리 신어도 헤어지지 않는 신발 만들기를 알려주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골짜기 이름이 현논동일세. 앞으로 논이 될 동네라는 뜻일세. 그곳에 가면 음침한 굴이 하나 있을 걸세. 그 굴속에 살고 있는 생쥐들은 박명쥐라네. 박명쥐는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가지 못하고 생쥐가 된 청계들이라네. 그 박명쥐 귀신 껍질을 벗겨 신발을 만들면 천년만년을 신을 수 있다네.”
“예! 고맙습니다.”
바보 떡보는 너무 기뻐서 나는 듯 발걸음으로 현논동 골짜기로 갔습니다. 노인의 말대로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음침한 굴이 있었습니다.
바보 떡보는 서슴없이 그 굴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으아악! 생쥐귀신 살려!”
바보 떡보를 보고 생쥐귀신들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바보 떡보는 그 생쥐귀신 중 가장 큰 놈을 몇 마리 잡았습니다. 껍질을 벗겨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이번에도 김 첨지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일을 시키거나 핑계를 대지는 않았습니다.
“좋아. 자네를 사위로 삼겠네. 이제 우리 한 식구가 됐으니,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게 살세나.”
마침내 바보 떡보는 김 부자네 사위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