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여기는 저승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을 이승이라고 합니다. 또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상을 저승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사람이 죽은 뒤 사는 세상입니다.
이 죽어서 사는 저승도 살아서 사는 이승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밥 먹고, 똥도 쌉니다. 좋으면 웃고, 슬프면 우는 곳입니다. 낮도 있고 밤도 있습니다. 운동도 하고 꽃구경, 단풍구경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승과 이승은 비슷한 곳입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승은 이승에서 지은 죗값을 치르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상을 받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죽은 뒤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로 하고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대부분 다 저승으로 갑니다.
그런데 저승으로 가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저승에 가서 죄 값을 치르는 게 두려워 몰래 이승에 숨어버린 자들입니다.
왜 숨느냐? 뻔합니다. 지은 죄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나쁜 짓을 일삼았던 자들입니다. 그 자들이 떠돌이 귀신이 되어 이승에서 나쁜 짓을 계속하는 겁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쁜 짓을 했던 자들을 청계귀신이라 합니다. 멀쩡한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병을 앓게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사는 걸 즐깁니다. 그러다 그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 좋아서 춤을 덩실덩실 춥니다.
따라서 청계귀신은 귀신 중의 귀신인 악귀입니다.
이곳은 청계지옥입니다.
이승의 청계 귀신을 잡아와 가두어 놓는 곳입니다. 죽은 뒤에도 저승에 오지 않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귀신이 한 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 귀신은 큰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보통 귀신은 지푸라기와 같습니다. 알알이 여문 곡식을 털어버린 잎줄기가 바로 지푸라기입니다. 그 지푸라기 귀신을 허깨비 귀신이라고도 합니다. 그 허깨비들은 힘도 없고, 기도 없는 말 그대로 헛것들입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청계귀신은 그게 아닙니다. 인간으로 살아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악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독살스럽고 악착같습니다.
그러니 이승에서 못된 짓을 계속하도록 놔둘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을 데려와 벌도 주고 상도 주는 저승은 그 청계귀신들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따라서 일 년에 한 번 특별사자를 이승으로 파견합니다, 청계귀신을 잡아오게 합니다. 그리고 잡아온 청계귀신은 저승의 청계지옥에 가두어 특별관리를 합니다.
“천신님! 어서 오십시오.”
오늘은 그 청계지옥으로 천신이 시찰을 나왔습니다.
청계지옥을 맡아 관리하는 청계지옥 특별 옥장이 천신을 맞아 공손이 인사를 올렸습니다.
“청계지옥장! 특별한 일이 없는 지요?”
“예! 그렇습니다. 얼마 전 계생청계가 무리를 이끌고 이승으로 도망치려한 것 말고는 평화로운 나날입니다.”
“계생청계가 도망을 치려했다고요?”
“예! 하마터면 놓칠 뻔했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총칼로 무장한 무리를 이끌고 난동을 부렸습니다.”
“우리 저승도 총기를 비롯한 무기관리를 잘해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청계 중에서도 악질 청계는 특별관리를 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에 대해서 저승 궁궐회의에 안건을 올렸습니다. 앞으로 논의를 잘하셔서 좋은 대책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잘했소. 오늘 내가 여기 온 것도 그런 특별관리를 해야 할 악질 청계들을 살펴보고자 함이오. 그러니 그 계생청계부터 만나봐야겠소.”
“계생청계가 살던 이승은 동쪽바닷가 구미호들의 선산이 있는 지역이지요. 구미호들이 사는 지역이라 그런지 예부터 그 지역에서 청계귀신이 많이 나왔지요.”
청계지옥장이 계생청계에 대한 문서를 가져와 천신에게 주었습니다.
“대담하게도 무리를 모아 자물쇠를 부수고 도망치려했군요. 그러고 보니 이승에서도 무리를 모아 반역을 일으킨 자 아니요? 그리고 대통령을 자처하며 영구집권을 노리다가 부하의 총에 맞아죽었군요. 쯧쯔! 각시인 육계청계도 총을 맞아죽었군요. 아차차! 그 청계 자식들도 다 청계귀신이 될 위험이 있는 요주의 인간들이고요. 이런, 이런 이렇게 위험천만한 족속이 한 무리를 이루다니 참으로 귀이한 일이구려. 쯧쯔….”
천신은 문서를 살펴보며 자꾸만 혀를 찼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 계생은 닭을 낳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승에서의 이름은 ‘다까기 마사오’였습니다. 그가 이승에서 살았던 구미호 지역에서는 이 계생을 ‘반신반인’으로 추앙합니다. 생전에 다른 지역의 돈을 훔쳐와 구미호 지역을 잘 살게 해주었습니다. 그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라고는 하나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가엾은 인간들의 노예근성이지요.”
“알았소. 아무튼 이 자의 자식들이 이승에서 못된 짓을 일삼고 있으니, 바로 살아있는 청계귀신이오. 빨리 만나고 싶으니 냉큼 불러오시오.”
“예! 여봐라. 계생을 오랏줄에 단단히 묶어 끌고 오너라.”
청계지옥장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계생청계가 붙들려왔습니다.
“널 이승에서는 다까기 마사오라 했고, 저승에서는 계생이라 하느냐?”
“….”
“이놈 봐라. 아직 회초리 맛을 덜 봤구나. 냉큼 대답하지 못할까?”
계생이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눈을 희번덕거렸습니다. 그러자 번쩍 저승사자의 회초리가 계생의 등짝을 후려쳤습니다.
“예! 예예! 대답합지요. 제가 바로 이승에서는 다까기 마사오, 저승에서는 계생입니다. 맞습니다.”
“그래, 왜 이승으로 도망치려했느냐? 그것도 총칼로 무장한 무리를 이끌고 말이다.”
“예! 지금 제 딸년이 제 자리를 이어받아 나라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제 딸년을 몹시 싫어합니다. 이대로 놔두면 저와 같이 총에 맞아 비명횡사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제 딸년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로 제게 도움을 청해왔습니다. 그래서 제 딸년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계생청계는 저승사자의 회초리가 무서워 조금도 거짓 없이 술술 대답을 잘했습니다.
“바로 이거 때문이구나.”
천신이 어깨를 들어 옷자락을 펄럭이자, 하늘에 어떤 영상이 비쳤습니다.
여객선이 바다에 빠지는 장면이었습니다. 배 안에는 어린 학생들이 갇혀있습니다.
“2013년 진도 앞바다에서 학생들 수백 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하였다. 재빨리 움직였으면 수많은 인명을 구했을 텐데…. 선장은 도망가고, 네 딸년도 사고는 나 몰라라 하고 호텔에서 7시간이나 쾌락에 빠져 있었구나. 수많은 사고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일어나건만 이렇게 어린 학생들을 희생양으로 삼다니…. 이 죄는 저승 지옥의 가장 아래쪽에서 받아야 할 크고 무거운 죄로구나.”
천신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는 세월호에서 어린 학생들이 울부짖는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옷자락을 흔들어 하늘에 비추인 세월호 영상을 거둬들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영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시위를 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아댑니다. 그 물대포를 맞고 사람들이 낙엽처럼 날아갑니다.
“세월호 뿐만이 아니구나. 백성들의 생명은 아랑곳없이 최류액을 섞은 물대포를 마구 쏘아대는구나. 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이고 독한 정치를 하고 있구나. 어쩜 그 애비에 그 딸년이냐? 아니 한술 더 뜨니, 살아있는 청계귀신은 이를 두고 말하는구나.”
천신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자! 계생청계는 보아라. 지금 이승에 있는 네 자식이 저토록 독하고 악질이구나. 어쩔 테냐? 저 이승에 있는 자식을 위해 참회의 기도를 할 테냐? 아니면 네 놈 자식도 청계귀신이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니다 이곳 저승의 청계지옥으로 오도록 할 테냐?”
“아! 천신님! 오늘부터 제가 참회의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자식들만이라도 청계지옥에 오지 않도록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좋다. 그리할 테니 진정으로 참회하여라. 그리고 널 계속 지켜보도록 할 테다.”
천신은 그렇게 해서 일차로 계생청계와의 면담을 끝냈습니다.
“천신님! 두 번째 면담 청계는 청계청계입니다.”
“청계청계라니오? 어째 청계이름을 청계라 하였소?”
“예! 이자는 이승의 이름이 스키야마 아키히로이고 생전의 호가 청계입니다. 별명으로는 쥐박청계라고도 하나, 지은 죄가 너무 커 모두들 청계청계라고 부릅니다.”
“그렇구려.”
천신은 두 번째 면담자인 청계청계가 끌려와 엎드려있는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하늘에 영상을 펼친 순간 구역질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런, 저런, 돈벌이의 수단으로 강이란 강을 다 시멘트 둑으로 막아 자연을 망친 놈이구나. 오직 돈 밖에 모르는 저런 인간이 어찌 한 무리의 두목이 되었다더냐? 갈수록 악귀들이 설치는 이유를 알 듯도 싶다. 후유!”
“그렇습니다. 저자가 한 나라의 우두머리로 있을 때입니다. 나랏돈으로 4대강이란 공사를 벌렸지요. 큰 강 4개를 막는 공사였지요. 그러자 강물이 썩어 녹조로 덮이고,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하여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지요. 4대강이 되면 가뭄, 홍수 걱정이 없다고 했지만, 그것도 사기로 판명이 났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저자는 나랏돈을 마치 제 돈처럼 생각하여 자기 맘대로 써버렸습니다. 그 통에 그 나라 백성들은 하루에 36명이 자살을 하는 등 이승에서 가장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두 저 자와 같은 탐욕스런 자들의 착취와 이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청계지옥장은 청계청계의 죄상을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말해야 했습니다.
다 듣고 난 천신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휴우! 이놈! 청계청계야! 네 놈 죄상을 듣고 보니 네 놈하고는 말도 섞기 싫어지는구나. 자, 네 손자 녀석들의 모습이나 한 번 보도록 해라.”
순간 이번에도 참으로 역겨운 장면이 하늘에 비춰졌습니다.
시퍼렇게 썩은 강물에 큰빗이끼벌레가 둥둥 떠다닙니다. 그 틈새에 청계청계의 손자들이 빠져있습니다. 살려달라고 두 손을 허우적거리지만 누구 하나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지금 저 청계청계는 삼년 반 동안 항문을 막아놓은 벌을 받고 있습니다. 이승에 있을 때 강을 막은 벌을 받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저 청계청계는 먹긴 먹지만 일체 대변을 못 봅니다. 그러니 저 놈이 멀리서 나타나기만 해도 그 썩은 냄새가 이만저만 독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저 청계청계가 들어온 뒤로 이리 지독한 냄새가 났구려. 알았소. 저 자는 앞으로도 더 벌을 받아야 하겠소. 그리고 참회의 기도는 청계지옥장의 재량에 맡길 테요. 알아서 처리하시오.”
그렇게 두 번째 청계청계귀신에 대한 면담도 처리가 되었습니다.
“다음 청계는 누구요?”
“예! 이승에서 떠돌이 귀신일 때는 낙지청계라 했고, 저승으로 잡혀온 뒤로는 석두청계라 합니다.”
“그 29만원 밖에 없다고 했던 자를 가리킴이오.”
“예! 하지만 이 자도 구미호 지역에서는 ‘오야붕’이란 일본식 깡패두목으로 추킴을 받았지요.”
이번에도 청계지옥장은 낙지청계의 죄상을 자세히 천신께 아뢰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 빛고을에서 백성을 학살하고 우두머리에 오른 것을 시작해서, 수천억 원의 나랏돈을 물 쓰듯 써버린 일들을 하나하나 말했습니다.
“그렇구려. ‘어리석은 인간은 버러지와 같도다.’ 라는 옛 어르신의 말씀이 맞구려. 네 이놈 석두청계야! 너도 참회의 기도를 통해 죄를 뉘우칠 테냐? 아니면 네 자식 놈들에게 죄 값을 치르도록 할 테냐?”
“천신님! 참회의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제발 제 자식 놈들에게만은 죄를 묻지 말아주십시오.”
“알았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사랑한다더니, 너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
그날 천신은 그렇게 계생청계, 청계청계, 석두청계를 비롯하여 십여 명에 이르는 청계를 면담하고 가르침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너무 슬펐습니다.
‘저 청계들이 이승에서 인간으로 살아있을 때, 미리 손을 써서 못된 짓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데….’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인간으로 살 때는 저승의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운명이 다하여 저승사자가 데리러 갈 때부터 하늘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 저런 인간 버러지들에겐 하늘이 천벌이라도 내려야 하거늘 하늘법이 너무 관대하구나?’
그저 한탄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이승을 휘둘러보았습니다.
그때입니다.
저만큼 이승의 들녘에 아이 하나가 보입니다.
염소가 뛰어갑니다. 아이 하나가 그 뒤를 따라갑니다.
“염소야! 마구 뛰어가지마. 애들이 다치잖아.”
민들레입니다. 염소의 발에 밟혀 허리줄기가 부러졌습니다.
“민들레야! 미안 해. 우리 염소 대신 내가 사과할게.”
아이가 풀밭에 엎드립니다. 부러진 민들레 줄기에 대고 입김을 호 불어줍니다.
염소는 풀을 뜯어먹고 삽니다. 그렇게 염소가 뜯어먹을 풀이지만 아이는 호호 입김을 불어줍니다.
문득 한줄기 바람이 코끝을 스칩니다.
“아! 향기롭구려.”
참으로 달큼한 향기였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가슴이 정말 답답했었습니다.
천신은 두 눈을 감으며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해졌습니다.
‘아직 희망이 있어.’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