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콩이 2
‘어! 여기가 어디지?’
한숨 늘어지게 잤다. 그러다 숨 막히게 덥고 답답해서 눈을 떴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콩이는 깜짝 놀랐다.
낯선 차였다. 항시 타고 다니던 꽃님 선생님 차가 아니었다.
‘아! 맞다. 그랬었다.’
콩이는 자기가 차에 타게 된 이유를 번뜩 떠올렸다.
그러니까 콩이가 꽃님 선생님 방에서 나온 건 파도와 갈매기 때문이었다.
꽃님 선생님 방에서는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차르르르! 철썩!’
푸른 파도가 차르르 밀려왔다 차르르 밀려가며 하얀 거품을 내뿜었다. 그 파도 위로 갈매기들이 춤추듯 날았다.
그날도 콩이가 창밖에 펼쳐진 바다를 보고 있을 때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창문턱에 앉더니 말을 걸었다.
“야! 고양이. 너 이름이 뭐냐?”
“나? 콩이라고 해. 그러는 넌?”
“난 끼룩이야. 우리들은 갈매기야. 저 푸른 바다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는…. 근데 콩이 넌 왜 방안에만 있느냐? 날마다 널 지켜봤거든.”
“응, 그건….”
콩이는 끼룩이에게 대답할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밖에 나가기가 왠지 무서웠다. 또 항시 문이 닫혀있어서 나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답답하지도 않냐? 한 번 창문을 밀어봐.”
콩이는 살그머니 창문을 밀어보았다. 쉽게 열렸다.
“봐! 쉽게 열리잖아. 가자. 바다 구경하러.”
콩이는 훌쩍 땅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끼룩이를 따라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에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 갯벌 구멍집에 사는 애들은 게라고 해. 또 펄떡펄떡 뛰어다는 애들은 짱뚱어, 그리고 저 물길에 있는 주욱 늘어선 애들은 조개와 고둥, 저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애들은 따개비야.”
끼룩이가 콩이에게 바닷가 식구들을 알려줬다.
“야! 파도와 갈매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참 많구나.”
너무 신이 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콩이가 방파제까지 왔을 때다. 방파제는 사나운 파도를 막아주는 둑길이다. 그 방파제에 빨간 등대가 있었다.
“어, 어디 갔지?”
끼룩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빨간 등대 앞에 검정색 승용차 한 대가 있었다.
멋진 차였다. 조심스레 살펴보니 차 뒷문 한쪽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좌석에는 소고기 육포가 있었다. 콩이가 좋아하는 거였다.
콩이는 날름 차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뒷문이 콩이 꼬리에 걸리며 쾅 닫혔다. 문이 닫힌들 어쩌랴? 콩이는 육포를 맛있게 먹었다.
차 안이 차츰 후덥지근해졌다. 몸이 나른해지며 잠이 쏟아졌다. 콩이는 그만 스르르 잠에 빠졌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거기까지 생각을 떠올린 콩이는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봤다.
빨간 등대가 있는 방파제가 아니었다. 바다가 아닌 낯선 산골짜기였다. 깜빡 잠이 든 동안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차 문은 닫혀있고 혼자였다.
‘아! 숨 막혀. 더워. 답답해!’
쨍쨍 뙤약볕이 내려쬐는 곳이었다. 차안은 찜통처럼 더웠다. 차츰차츰 더 더워졌다. 마침내 숨을 쉬기도 힘들어졌다.
콩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어떻게든 차안에서 나가려했다. 하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며 온 몸의 힘이 쭉 빠져버렸다. 그만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니! 이거 뭐야? 고양이잖아.”
“더워서 죽었나봐. 혀를 쑥 빼물었어.”
차를 세우고 밖에 나갔다 돌아온 차 주인이 콩이를 보고 기절할 듯 놀랐다.
“언제 차안으로 들어온 거야. 에이, 재수 없어.”
차 주인은 축 늘어진 콩이를 길가 고랑으로 휙 던져버렸다.
얼마큼 시간이 흘렀을까? 콩이가 눈을 떴다. 콩이가 버려진 고랑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시원한 고랑물이 다행스럽게도 콩이를 살린 것이다.
그날부터 콩이는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곳은 차들이 쉬어가는 언덕 위 쉼터였다. 음식을 먹기도 했다. 남은 음식을 버리는 쓰레기통이 있었다. 덕분에 콩이는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무더운 여름이 한참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다.
그날도 콩이는 언덕 위 쉼터 으슥한 곳에 숨어서 쉬어가는 차를 기다렸다. 아침을 굶어서 배가 출출했기에 차 소리가 날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한 낮이 다될 무렵이다. 마침내 차 한 대가 쉼터에 섰다. 큼직한 외제차였다.
젊은 부부가 내렸다. 그런데 두 사람이 싸우는 듯 했다. 서로 화난 목소리로 다투더니, 여자가 숲 쪽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남자가 갔다.
‘옳지 됐다. 먹을 게 있나 봐야지.’
콩이는 잽싸게 큼직한 외제차로 다가갔다.
쨍쨍 뙤약볕이 내려쬐는 곳이다. 콩이가 지난번 죽을 뻔했던 그 장소였다.
‘아니 저게 뭐지?’
차안에 아기가 있었다. 뒷좌석에서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득, 콩이 눈에 차안에 갇혀 죽어가는 자기 모습이 비추었다.
‘안 돼!’
콩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찻길로 왔다.
저만큼 차가 한 대 보였다. 콩이는 길 한가운데서 펄쩍펄쩍 뛰었다.
“미친 고양이다. 날이 더워 미쳤나봐.”
첫 번째 차는 휭 지나가버렸다. 콩이는 하마터면 그 차에 깔릴 뻔했다.
잠시 뒤 또 차 한 대가 보였다. 콩이는 다시 길 한가운데서 펄쩍펄쩍 뛰었다.
“뭐야? 저놈의 고양이, 죽고 싶어 환장했나?”
빵! 빵! 소리만 요란하게 두 번째 차도 그냥 가버렸다. 이번에도 콩이는 하마터면 그 차에 치일 뻔했다.
한참 뒤 또 차가 보였다. 트럭이었다. 콩이는 다시 길 한가운데서 펄쩍펄쩍 뛰었다.
“오빠! 멈춰. 이상한 고양이야. 사진 좀 찍어야겠어.”
“응! 진짜 이상하다. 무슨 일이 있나보다.”
트럭에서 남매가 내렸다.
“아무래도 무슨 이유가 있어.”
콩이의 이상한 행동에 오빠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동생은 사진을 찍었다. 펄쩍 뛰고 한 걸음, 또 펄쩍 뛰고 한 걸음씩 걷는 콩이를 따라갔다.
“야! 아기다.”
“큰일이다. 이 찜통더위에 아기를 차안에 놔두다니….”
콩이를 따라온 남매가 차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이제 울지도 않고 축 늘어져 있는 아기를 발견했다.
“망치가 있어야겠다.”
오빠가 트럭으로 가서 한달음에 망치를 들고 왔다. 승용차 유리창을 깬 뒤,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콩이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동생 옷자락을 끌어 고랑으로 데려갔다. 고랑에는 여전히 졸졸졸 시원하게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지 며칠이 지난 뒤다.
“엄마! 인터넷 뉴스 동영상 좀 보세요.”
꽃님 선생님의 딸이 전화를 했다,
인터넷 뉴스에 아기를 구한 고양이 이야기가 동영상과 함께 실렸다고 했다. 고양이의 재치로 차에 갇힌 아기를 살렸다는 것이다. 그 고양이가 목숨을 걸고 차를 멈추게 하고, 물이 흐르는 고랑까지 알려줬다고 했다. 그 고랑의 시원한 물로 아기는 몸을 식히고 숨을 쉬었다고 했다.
“엄마! 뉴스 동영상에 나오는 고양이가 꼭 우리 콩이 같아요.”
“알았다. 그 뉴스 동영상 보고 전화하마.”
전화를 끊고 꽃님 선생님은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마음도 콩콩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