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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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많다!”
‘남천’은 깜짝 놀랐습니다.
남천은 늘푸른떨기나무입니다. 줄기와 이파리가 대나무처럼 보여 남천죽이란 이름도 있습니다. 잎은 가을에 붉게 단풍이 들고, 붉은 열매가 겨울 내내 달려있는 보기 좋은 나무입니다. 화단에 심기도 하고, 화분에도 심습니다.
바로 그 남천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습니다.
화환과 화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길을 따라 3단짜리 화환이 숲처럼 늘어서 있습니다. 화분들 역시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남천의 가슴에는 금테 두른 기다란 띠가 양쪽으로 늘어져 있습니다.
‘축 개업!’
‘무지개한복공장!’
그 기다란 띠에 쓰여 있는 축하 글입니다.
“그 화분 여기 놓으세요.”
수많은 화환과 화분 사이에 남천도 한 쪽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야! 너 어느 꽃집에서 온 누구냐?”
“나?”
“그래, 키만 멀쑥이 큰 너 말야.”
그때 누군가가 남천을 불렀습니다.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사람 아랫도리처럼 생긴 화분이었습니다. 그 화분의 꽃도 한복 입은 여자처럼 생긴 꽃이었습니다.
남천이 조심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나? ‘늘빛꽃집’에서 온 남천이야.”
“늘빛꽃집? 흥! 이름 없는 꽃집의 허접한 꽃이구나.”
한복 입은 여자처럼 생긴 꽃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가슴을 쭉 펴며 자랑스레 말했습니다.
“난 ‘푸른기와꽃집’에서 온 한복 입은 여자꽃이다.”
“푸른기와꽃집? 한복 입은 여자꽃?”
“그렇지. 우리 푸른기와꽃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야릇한 꽃들을 키우는 집이지. 난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야릇한 꽃이지. 난 순간순간 꽃 색깔을 바꾸는 재주가 있거든. 흠!”
순간 그 한복 입은 여자 모양의 꽃 색깔이 노랑에서 파랑으로 확 바뀌었습니다.
“너! 남천이라고 했지. 똑똑히 들어. 내가 이렇게 꽃 색깔을 바꿀 때마다 넌 박수를 쳐야해. 알았지?”
한복 입은 여자꽃이 눈을 사납게 치켜떴습니다.
“응! 알았어.”
“응이라니? 대답하는 말투가 건방지구나.”
한복 입은 여자꽃의 눈꼬리가 너무 무섭게 치켜져 흰자위만 보였습니다. 순간 또 꽃색깔이 파랑에서 빨강으로 확 바뀌었습니다.
“예, 예! 자, 잘 알았어요.”
남천은 가슴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짝짝짝! 떨리는 손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너희들도 다 마찬가지야. 모두들 내가 옷 색깔을 바꿀 때마다 박수를 치는 거다. 알았지?”
“예! 예! 예!”
주변에 있던 화환과 화분들이 모두 입을 모아 한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남천처럼 박수를 쳤습니다.
그렇게 한복 입은 여자꽃이 거드름을 피울 때입니다.
‘축 개업’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모두들 멋진 옷을 입고 있어서, 화환이나 화분과 잘 어울렸습니다.
하늘은 잿빛구름이 덮어 잔뜩 찌푸린 우중충한 날씨였습니다. 바람결도 찼습니다.
하지만 ‘축 개업’ 화환과 화분이 숲처럼 늘어서고 산처럼 쌓인 이곳은 훈훈한 봄날입니다. 차가운 거리의 사람들은 몸을 웅크리고 걷지만, 이곳 사람들의 허리는 꼿꼿합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은 먹구름이 끼어 흐릿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입니다.
또 그때입니다.
“여러분! 곧 축 개업식이 있겠습니다. 식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주의 말을 하겠습니다. 잘 듣고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군인처럼 제복을 입은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습니다. 큰 소리로 말하는 제복을 입은 남자를 쳐다보았습니다.
“자, 이 꽃을 잘 보십시오.”
제복 입은 남자가 한복 입은 여자꽃 화분을 가리켰습니다.
“잘 알고 있겠지만, 오늘은 우리 ‘무지개한복공장’ 개업식입니다. 따라서 우리 회장님께서 십 분에 한 번씩 한복을 갈아입을 것입니다. 이 화분의 꽃처럼 색깔이 다른 옷을 입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여러분은 ‘야! 아름답다!’, ‘야! 신비롭다!’ 이런 감탄의 함성과 함께 큰 박수를 쳐야합니다. 알았습니까?”
“예!”
제복 입은 남자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대답을 했습니다.
거리엔 찬바람이 불고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칙칙했지만, 축 개업식장은 봄볕이 따사롭고 사람들의 얼굴은 환했습니다.
“무지개한복공장 회장님!”
“눈부신 한복! 살기 좋은 세상!”
사람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복을 갈아입는 회장을 큰 함성으로 칭송했습니다. 손바닥이 얼얼하게 박수를 치고 또 쳤습니다.
며칠 뒤입니다.
그 시끌벅적 하던 무지개한복공장 축 개업 식장도 조용합니다. 으스대던 숲처럼 늘어선 화환, 산처럼 쌓인 화분들도 이제 다소곳이 자리만 지킵니다.
한복 입은 여자꽃도 덩달아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입니다.
“야! 나 옷 색깔 갈았다. 박수쳐!”
그렇게 눈알 부라리고 땍땍대며 신경질을 부렸던 한복 입은 여자꽃입니다.
하지만 처음 얼마동안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한복 입은 여자꽃이 소리를 지르든 말든 아무도 쳐다보질 않았습니다. 뉘 집 미친개가 짖나? 하고 듣는 둥 마는 둥입니다.
또 며칠 뒤입니다.
“야! 이것들 이제 쓰레기다. 시들어 버린 화환, 화분을 치워버려라.”
제복 입은 남자가 화환과 화분을 둘러보더니, 쓰레기라며 치워버리라 했습니다.
“어디다 치울까요?”
“쓰레기 차 부르면 돈 드니까. 그냥 우리 건물 옆 개울가에 던져버려라.”
제복 입은 남자가 화환과 화분을 건물 옆 개울가에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 날 오후입니다.
“개울가에 화분이 많아.”
“쓸 만한 게 있나 보세.”
사람들이 하나 둘 개울가로 내려갔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복 입은 여자꽃 화분을 발견했습니다.
“야! 이거 진짜 이상한 꽃이네.”
화분 모양이 사람 아랫도리입니다. 꽃 모양은 한복 입은 여자입니다. 하지만 이제 시들어서 꼭 죽은 시체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아직 다 죽지는 않았는지, 꽃 색깔이 금방금방 바뀌었습니다.
“귀신 꽃이야. 재수 없어. 화분은 비싼 거네.”
그 사람은 시체처럼 축 늘어진 한복 입은 여자꽃을 잡아 뽑아서 휙 던져버렸습니다. 탈탈 흙까지 쏟아버리고 사람 아랫도리 모양의 빈 화분만 움켜들었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 구름이 잔뜩 입니다. 우중충하고 흐리멍덩합니다.
* 새 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2014년 12월 31일. 從Book. 삼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