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이슬이와 길양이

운당 2015. 8. 24. 06:21

<동화>

이슬이와 길양이

 

아니, 저 앤!’

퇴근길입니다. 평우씨는 사거리에서 멈춰 섰습니다. 동물병원으로 들어가는 아이는 분명 딸아이 이슬입니다.

평우씨도 그 사거리 모퉁이 송이 동물병원앞으로 갔습니다.

환한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봅니다. 창가에는 강아지와 고양이 집이 놓여있습니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몇 마리가 눈 맞춤을 해줍니다. 판매대에는 애완동물 먹이 등 각종 물품들이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눈길을 조금 더 안쪽으로 보냅니다. 이슬이가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의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지?’

평우씨 집에선 강아지도, 고양이도 기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슬이가 동물병원에 들어갔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이년 전, 이슬이가 중학생 때입니다.

평우씨의 딸 이슬이는 햄스터를 키웠습니다. 그 햄스터를 기르며 블로그까지 운영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사진 찍고 글을 써서 햄스터가 자라는 모습을 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갑자기 햄스터가 죽어버렸습니다.

이슬이의 슬픔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엉엉! 미안해.”

이슬이의 눈에서 이슬처럼 고운 눈물방울이 흘렀습니다.

죽다니? 너무해요!”

이슬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누가 너무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이슬이의 슬픔은 컸습니다.

아빠! 햄스터 묻어주고 싶어요.”

이슬이는 애틋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하늘나라에서 잘 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슬이는 또 작은 상자에 색종이를 예쁘게 오려붙였습니다. 그 상자에 햄스터와 편지를 넣었습니다.

그럼 가자.”

평우씨는 꽃삽을 들었습니다. 이슬이는 상자를 들고 뒤따랐습니다.

강둑으로 나왔습니다.

! 마침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강변은 온통 꽃 세상입니다. 바람 따라 하늘하늘 흩날리는 꽃잎이 마치 꽃비인 듯합니다.

여기가 좋겠다. 하늘나라에서도 꽃 나라로 가겠구나.”

꽃비를 보며 활짝 웃으려던 평우씨의 얼굴에서 웃음이 금방 사라집니다. 이슬이 앞에서 웃을 순 없습니다. 평우씨는 한 마디만 하고는 꽃삽으로 구덩이를 팠습니다.

잘 가!”

이슬이의 눈에서 다시 이슬방울이 주르륵 떨어집니다. 그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구덩이에 상자를 내려놓습니다.

아빠, 잠깐!”

평우씨가 흙을 덮으려는데 이슬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그러더니 벚꽃송이를 한 움큼 모아옵니다. 햄스터 상자 위에 뿌려줍니다.

돌아오는 길입니다.

아빠! 이젠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을래.”

그래. 내년이면 고등학생이니 열심히 공부만 하렴. 그래야 좋은 대학 가고.’

평우씨는 입 밖에 나오는 말을 얼른 주워 담았습니다. 아마도 그 말을 하면 이슬이의 눈이 샐쭉해질 겁니다.

사랑이 크면 슬픔도 큰 법이다. 네 맘대로 하렴.”

그래서 이슬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더 이상 다른 위로의 말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그 뒤로 이슬이는 햄스터 얘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애완동물을 봐도 그냥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그런데 동물병원엔 무슨 일일까?’

평우씨가 그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슬이가 동물병원에서 나옵니다. 손에는 고양이 먹이가 들려있습니다.

어머, 아빠!”

평우씨를 보자, 깜짝 놀랍니다.

! 이슬이구나.”

평우씨도 일부러 깜짝 놀라는 시늉을 크게 합니다.

오늘 운 좋구나. 널 만났으니. 어서 집에 가자.”

!”

이슬이가 손에 든 고양이 먹이를 눈치껏 등 뒤로 숨깁니다. 평우씨는 모른 척해주었습니다.

아빠! 저 용돈 좀 올려주면 안 돼요.”

그런 일이 있고 사흘 뒤입니다. 이슬이가 용돈 얘기를 꺼냈습니다.

? 무슨 일 있어? 어디다 쓸 거야?’

평우씨는 그렇게 물으려다 말을 바꿨습니다.

용돈을 올리려면 그만한 대가가 있어야 하는데. 사랑을 하면 그 사랑에 헌신이 따르는 것처럼 말이다.”

알았어요. 공부 열심히 할게요. 됐지요?”

그것 말고 또 있다.”

뭔데요?”

건강! 그리고 언제나 잘 웃고 밥 잘 먹고, 그러니까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 알았어요.”

그렇게 해서 평우씨와 이슬이의 용돈 올리기는 합의를 보았습니다.

평우씨는 잘은 모르지만 짐작을 했습니다. ‘이슬이가 분명 고양이를 돌보고 있구나.’ 그래서 용돈이 더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우씨가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이슬이가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이슬이가 돌보는 고양이 이름은 길양이였습니다. 햄스터 때는 아리, 수리라고 예쁜 이름을 붙여주더니만, 이번엔 그냥 길 잃은 고양이를 줄여 길양이라 했습니다.

하굣길입니다. 학교 담장을 돌아 큰길가로 나서기 전이었습니다.

야옹! 야옹!”

고양이 소리가 애처롭게 들렸습니다.

다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했어. 쳐다보지도 말자.’

이슬이는 귀를 막고 걸음을 빨리했습니다.

야아옹! 야옹!”

그런데 자꾸만 고양이 울음이 뒤를 따라옵니다. 그만 이슬이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이슬이의 주먹만큼이나 작은 아기고양이였습니다.

이슬이는 그 작고 앙증맞은, 애처로이 우는 아기고양이와 그만 눈을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너 길양이구나.”

가방을 뒤졌습니다. 마침 빵이 있었습니다. 꺼내서 잘게 부셨습니다. 손바닥에 얹어 내미니 날름날름 잘 먹었습니다.

고양이와 눈을 맞추는 건 뽀뽀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이슬이는 길양이와 한 번 더 눈을 맞추고는 등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야아옹!”

길양이는 기분 좋은 듯 스르르 눈을 감으며 이슬이에게 몸을 기댔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디로 갔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하굣길입니다. 이슬이는 어제 그 자리에서 또 그 길양이를 만났습니다.

어쩐지 널 다시 만날 것 같았어.”

이슬이는 미리 준비한 빵을 잘게 부셔서 먹였습니다.

야아옹!”

이슬이는 어제처럼 눈을 맞추고 등을 쓰다듬어 주고, 길양이는 이슬이 몸에 기대어 갸르릉 거렸습니다. 그리고는 또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 날입니다. 어제 그 시각입니다. 이슬이는 길양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길양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슬이를 보자 반갑게 달려와 몸을 기댔습니다.

이슬이가 동물병원에 들린 건 바로 그날입니다. 그리고 수의사로부터 길양이를 돕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먹이도 샀습니다. 그래서 용돈이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슬이와 길양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났습니다. 항시 그 자리, 그 시각이었습니다. 장소는 이슬이의 하굣길인 학교 담장이 끝나는 곳, 시각은 정확히 오후 4시였습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되고 길양이는 쑥쑥 컸습니다.

이슬이는 길양이 집도 만들었습니다. 학교 담장이 끝나는 쪽에 큰 은행나무가 있고, 뒤쪽은 넝쿨 숲이었습니다. 그곳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에 길양이 집을 놔주었습니다.

이게 네 집이야. 이곳에서 자도록 해. 알았지?”

이슬이의 바람대로 길양이는 그 집에서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우수수 떨어져 길양이 집을 노랗게 덮었습니다. 그러더니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겨울이 온 것입니다.

그렇게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날, 아침부터 눈보라가 휘몰아쳤습니다.

그날 오후입니다. 이슬이가 집에 올 시간이 됐는데도 오지 않습니다. 밖을 보니 어둠이 내립니다.

웬일이지? 한 번도 이렇게까지 늦은 적이 없는데.”

더욱 전화도 안 받고.”

하얀 눈이 꽁꽁 얼며 밤이 깊어갑니다. 밖을 내다보니 주차장의 차들도 온통 눈에 덮였습니다.

어떻게 알아봐야 하지?”

이슬이 엄마와 평우씨가 점점 걱정을 크게 할 때입니다. 전화가 옵니다. 평우씨는 재빨리 전화기를 엽니다.

이슬이구나. 지금 어디냐? 아빠가 데리러 갈까?”

.”

그런데 아무 말이 없습니다.

이슬아! 남이슬!”

평우씨의 다급한 부름에도 이슬이는 묵묵부답입니다.

아빠.”

한참만에야 작은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이냐? 지금 어디야?”

아빠! 꽁꽁 얼어서 너무 추워. 그래서 부탁인데, 고양이 집에 데려가면 안 돼?”

고양이?”

, 길 잃은 길양이야. 실은 지금까지 길양이를 돌봐왔거든.”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뜸을 들였다가, 평우씨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안 돼. 이슬이 넌 곧 고등학생이야. 대학에 가면 여길 떠날 거고 그럼 누가 길양이를 돌봐주겠어? 그리고 그 길양이는 야생이야. 밖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야생 동물은 집에서 키우기가 힘들어. 마치 호랑이를 동물원에 가두는 것처럼.”

그래도 길양이가 너무 가엾어.”

평우씨는 마음이 아팠지만, 다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네가 보살펴주고 사랑해준 것만도 잘한 일이야. 그 길양이도 이제 어른 고양이가 됐으니,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얼른 들어 오거라.”

.”

이슬이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행히 눈보라가 멎었습니다. 언제 구름이 걷혔는지, 하나, . 하늘에 별이 돋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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