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하늘로 오르는 바위
“오빠! 산이 오빠!”
“왜?”
산이는 친구들과 어울려 물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그때 귀에 익은 들이 목소리가 들렸다.
골짜기를 내려온 물이 웅덩이를 만들고 비탈을 돌아 들판으로 나가는 곳이었다. 사내 녀석들이 발가벗고 미역을 감는지라, 가까이 오지 못하고, 비탈이 돌아가는 곳에서 들이가 오빠인 산이를 불렀다.
“아버지가 오래.”
“아버지 오셨어?”
“그래. 조금 전에 오셨어. 그리고 빨리 오빠를 데려오라고 하셨어.”
산이 아버지는 그릇 장사꾼이었다.
산이네 마을은 그릇 마을이었다. 흙으로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들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만든 그릇을, 산이 아버지는 여기 저기 팔러 다녔다.
산이네 마을에서 만드는 그릇은 검은 윤기가 흘렀다. 부드러운 흙으로 그릇을 만든 다음, 그 그릇에 여러 가지 돌가루와 숯가루를 섞은 유약을 입혀 불에 구웠다. 그래서 그렇게 아름다운 검은 빛이 나는 거라고 했다.
산이도 이 다음에 검은 빛이 나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 셈이었다.
“알았어. 곧 갈게.”
산이는 바위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옷을 주워 입었다. 들이가 얼굴을 내밀었던 비탈길을 달려 집으로 갔다.
“부르셨어요?”
“오냐! 그동안도 많이 컸구나.”
한 달여 만에 돌아오신 아버지다. 산이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렸다.
“산아! 큰일이다.”
산이 아버지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깊게 한숨까지 내쉬었다.
“무슨 일인데요?”
“우리가 가야를 떠나 이곳에 온지도 어언 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아버지에게 듣고 또 들어 귀에 못이 박힌 얘기다.
산이의 증조 할아버지께서는 낙동강가에 있던 가야국에서 살았다고 했다. 가야국은 이곳 월나현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가야하는 곳이다.
아버지 얘기로는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가 가야 땅에 살던 가야 사람들을 모두 쫒아냈다고 한다. 나라를 잃은 가야 사람들은 정든 고향 땅을 떠나, 피눈물을 흘리며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다. 그 때 산이의 증조 할아버지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이곳 백제 땅 월나현으로 오셨다고 했다.
백제 땅 남쪽 끝자락 큰 강가에 자리한 고을 월나현은 아름답고 신비스런 산 달나뫼가 있는 고을이었다. 들도 넉넉하고 너른 뱃길로 이어지는 바다에서는 온갖 고기가 풍성하게 잡혔다.
고향 땅을 잃고 월나현으로 온 사람들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금세 일어설 수 있었다.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기도 했지만, 이곳에서 그릇 굽는 기술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며 안정을 찾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큰일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백제가 망했다. 이제 우린 또 나라가 없어졌다.”
“예?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부터 백여 년 전인 562년이다. 그 해에 가야는 신라에게 항복을 하고 백성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백여 년의 세월이 흘러 660년이 되었다. 그 해에 백제마저도 지도에서 이름이 지워지게 된 것이다.
“마침내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고 백제를 멸망시켰다. 이제 우린 또 나라 잃은 백성이 되었구나.”
믿고 의지했던 가야가 망한 뒤, 고향을 뺏긴 슬픔과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다. 다행히 백제 품에 안겨 새로운 삶을 찾고 행복과 평화를 누렸지만, 이제 백제도 쓰러졌으니, 그 앞날이 어찌될지 두려움과 걱정뿐인 것이다.
“그럼 우린 앞으로 어찌 되지요?”
“이제 곧 당나라 군사가 이곳으로 온다는 구나. 더욱이 이곳에 신령스런 바위가 있어 그 바위를 없애버리려 온다는 구나.”
“신령스런 바위라면 달나뫼 장군바위에 있는 동석인가요?”
“그렇다. 우리 달나뫼 장군바위에 있는 동석을 당나라가 없애버리려 한다는 구나.”
산이 아버지가 이번에 배를 몰아 그릇을 팔러 간 곳은 백제의 서울인 부여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라와 당나라군에게 백제가 멸망하는 걸 목격하였다. 그릇이고 뭐고 팔지도 못하고 겨우 목숨을 구해 돌아왔다. 하지만 월나현 달나뫼에 있는 동석을 없애버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월나현이란 고을 이름은 이곳에 있는 달나뫼 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달나뫼는 달은 낳는 산이란 뜻이다. 월나현이란 고을 이름도 달을 낳는 고을이란 이름이다. 둘 다 똑 같은 이름인 것이다.
“이곳 달나뫼에는 장군봉의 동석 말고도 2개의 동석이 더 있다. 그 신비스런 3개의 동석은 모두 우리를 지켜주시는 신령님이시다. 당나라가 그걸 알고 없애버리려 한다는 구나.”
동석이란 움직이는 바위를 말한다. 어린 아이가 밀어도, 어른이 밀어도, 한 사람이 밀어도, 열 사람이 밀어도 동석은 꼭 그만큼씩 움직였다. 가볍게 밀어도 움직이고, 아무리 세게 밀어도 꼭 그만큼만 움직일 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동석을 신령님처럼 받들었다.
“그렇담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하지요?”
“어떻게 하긴? 우리가 막아야 한다.”
“우리가 막아요.”
“그렇다. 우리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아야한다. 그래서 이렇게 당나라 군사보다 앞서 돌아온 것이다.”
“무슨 좋은 생각이 있으신지요?”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동석을 지켜낼 수도 있을 것이다.”
“좋아요. 아버지!”
“뜻을 같이할 사람들을 모으자. 우리가 힘을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
“예! 아버지. 동석을 꼭 지키겠어요.”
한참동안 귀엣말을 나눈 산이와 아버지는 집을 나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뜻을 같이할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들도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일감을 빈틈없이 해내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이틀 뒤다. 마침내 당나라 장수가 부하들을 거느리고 월나현에 들어왔다.
“월나현 현감은 들어라. 장정 열 명을 소집하라. 달나뫼의 동석들을 모두 없애버리겠다.”
당나라 장수는 소집된 열 명의 장정과 부하들을 이끌고 달나뫼를 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날 달나뫼의 동석 세 개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수백 미터의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바위를 떨어뜨리며 장정들도 울고, 굴러 떨어지는 동석을 보며 고을 사람들도 울었다.
당나라 장수와 부하들만 만족한 듯 껄껄껄 웃었다.
그날 밤이다. 해가 지자 달나뫼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둥근 달을 낳아 하늘 높이 올려 보냈다. 다른 날 같으면 그 둥근 달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졌겠지만, 사람들은 모두 문을 닫아걸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않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이다. 어제 밤 달을 낳았던 달나뫼가 이번엔 아침 해를 낳아 하늘로 올려 보낼 시각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안개가 몰려왔다. 물결처럼 흐르며 산을 휘감았다. 그때였다. 그 안개 사이로 하늘로 올라가는 동석이 보였다.
“야! 동석이다. 하늘로 올라간다.”
“바위가 산 위로 올라간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분명이 어제 산 아래로 떨어진 동석이다. 그런데 그 동석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아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와 달나뫼 산을 바라보았다. 당나라 장수와 병사들도 나왔다.
바위 벼랑을 타고 산 위로 올라가는 동석을 보며 고을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당나라 장수와 병사들은 겁에 질려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달나뫼 산 속에는 산이와 들이를 비롯하여 아이들이 숨어 있었다.
“자, 이제 너희 차례야.”
“알았어. 이리 줘.”
그 아이들이 동석을 다시 달나뫼 위로 올려 보내고 있었다.
하늘로 올라가는, 산 위로 올라가는 동석은 대나무를 엮어 만든 가짜 바위였다. 벼랑에 몸을 숨긴 아이들이 그 대나무 바위를 기다란 줄에 묶어 산 위로 끌어올렸다. 봉우리 마다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아래에서 줄이 올라오면 차례차례 위쪽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봉우리 봉우리에 몸을 숨긴 아이들이 동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세 개의 동석이 제 자리로 갔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짜 동석은 산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산에서 떨어뜨린 바위는 가짜 동석이었다. 진짜 동석을 미리 숨겨놓고 다른 돌을 동석처럼 떨어뜨린 것이다.
“가짜 동석을 떨어뜨린 줄 알면 당나라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동석이 스스로 올라가는 걸 보여주자.”
그래서 대나무로 동석을 만들어 다시 산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꾸민 것이다.
“수고들 했다. 그리고 모두들 이 비밀을 죽는 날까지 지켜야 한다.”
“알았어요.”
그날 밤이다. 산이 아버지와 산이, 대나무로 엮은 동석을 산 위로 올려 보낸 아이들이 모였다. 죽는 날까지 비밀을 지키자고 굳게 약속을 했다. 물론 가짜 동석을 진짜 동석이라고 밀어뜨린 장정들도 굳게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당나라 장수와 병사들은 어찌 됐을까? 그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간 뒤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한다.
“신령스런 바위였어. 난 그 바위를 없앤 벌을 받는 거야.”
죽기 전에 달나뫼의 동석을 떨어뜨린 벌을 받는 거라고 말했다 한다.
월나현 사람들이 당나라를 오가는 장사꾼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우리 고을은 신령스런 바위고을이야.”
“암, 떨어뜨린 바위가 다시 산 위로 올라갔으니까.”
“맞아. 그 바위는 영암이야!”
고을 이름이 영암이 되었다. 신령스런 바위 고을이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