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하늘과 땅이 열렸습니다.
산과 들이 생기고 비가 내렸습니다.
빗물이 졸졸졸졸 시냇물 되었습니다. 시냇물이 찰방찰방 강이 되었습니다. 강물이 출렁출렁 바다로 갔습니다.
바다로, 바다로 흘러서 모인 물은 넘실넘실 차올라 물마루를 그리며 하늘과 맞닿았습니다.
그 바다와 맞닿은 물마루 위 하늘나라에 물 그리매 공주님이 살았습니다.
“공주님! 공주님! 큰일이어요.”
어느 날입니다. 물 그리매 공주님이 뒤뜰의 꽃밭을 돌볼 때입니다. 시녀가 다급하게 달려왔습니다.
“무슨 큰일이지?”
“땅 나라에 비가 내리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지?”
“땅 나라 사람들이 벌을 받는 거래요.”
“왜?”
“사람들이 물을 함부로 썼기 때문이래요. 또 서로 물을 많이 차지하려고 싸우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그 벌로 앞으로도 삼년간 땅 나라에 빗물을 한 방울도 내려주지 않는대요.”
“그거 큰일이구나.”
“그렇다니까요. 물 그리매 공주님이 가서 한 번 살펴보세요.”
“그러자꾸나.”
물 그리매 공주님과 시녀는 하늘나라 궁궐을 나와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어디로 가면 땅 나라로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솟은 산이 땅 나라에 있지요. 그 곳에 가시면 땅 나라로 내려갈 수 있을 거예요.”
물 그리매 공주와 시녀는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산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아! 정말 하늘에 닿을 듯 높구나.”
산봉우리에 흰 구름이 뭉실뭉실 걸려 있었습니다.
“아니, 저게 누굴까?”
물 그리매 공주가 사뿐히 발을 내딛어 산붕우리로 내려섰을 때였습니다. 저 만큼 흰 구름 아래에 어떤 젊은이가 보였습니다.
젊은이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세요?”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물 그리매 공주를 보고 젊은이가 놀란 얼굴로 물었습니다.
“난 하늘나라 물 그리매 공주지요. 젊은이는 누구인가요?”
“예, 저는 땅 나라에 사는 산 그리매입니다. 지금 석 달째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산과들의 나무와 풀들, 온갖 짐승들도 목마름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날마다 산에 올라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산 그리매 젊은이의 말을 듣고 날 물 그리매 공주는 어떻게든 땅 나라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늘나라의 법은 엄했습니다.
임금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땅 나라에도 마음대로 가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되지 않아서입니다.
하늘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하늘나라 임금님! 물 그리매 공주님께서 법을 어기고 땅 나라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땅 나라에 내려가 산 그리매라는 젊은이를 만나고 있습니다.”
“땅 나라에 물을 주고 있습니다. 물 그리매 공주를 옥에 가두고 죄를 물어야 합니다.”
하늘나라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 물 그리매 공주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물 그리매 공주를 데려오도록 하라.”
마침내 하늘나라 임금님은 물 그리매 공주의 죄를 묻겠다고 했습니다.
시녀가 그 소식을 듣고 물 그리매 공주에게 달려갔습니다.
물 그리매 공주는 그날도 산 그리매 젊은이를 만나러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공주님! 공주님! 큰 일 났습니다.”
“이번엔 또 무슨 큰일이냐?”
“지금 하늘나라 병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공주님을 잡아가려고요.”
“마침내 들키고 말았구나.”
그동안 남몰래 땅 나라에 물을 주면서 물 그리매 공주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하지만 산 그리매 젊은이와 함께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참 좋았습니다.
“공주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산붕우리 아래 사람들이 모두 공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고 있답니다. 논밭의 곡식, 나무와 풀, 온갖 짐승과 벌레들을 살아가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물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알고 물을 사랑하고 아껴 써야 해요.”
“그렇답니다. 맑고 깨끗한 물은 곧 우리의 생명이라는 걸 깨닫게 됐지요.”
물 그리매 공주는 날마다 하늘의 물길을 땅 나라의 산봉우리 쪽으로 흐르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늘나라 병사들에게 잡혀가면 모든 게 그만입니다. 더 이상 산 그리매를 만날 수도 도와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를 어쩐다지?”
걱정하는 물 그리매 공주의 팔소매를 시녀가 잡아끌었습니다.
“공주님! 빨리 몸을 피하세요. 잡혀선 안 됩니다.”
“어디로 피한단 말이냐?”
“땅 나라로 가는 거예요.”
“땅 나라로?”
“그렇다니까요. 물길 한 자락을 가지고 땅 나라로 내려가세요. 하늘나라 감옥에 갇히지 말고 그곳에 가서 산 그리매 젊은이와 행복하게 사세요.”
“하지만 그리되면 다시는 하늘나라로 돌아오지 못할 텐데….”
“그게 문제가 아니어요. 땅 나라 사람들과 그곳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이 더 크지요. 또 산 그리매 젊은이가 공주님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물 그리매 공주와 시녀가 말을 나누고 있을 때, 하늘나라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제 망설일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래, 알았다.”
물 그리매 공주는 하늘나라에서도 가장 맑고 깨끗하며 신비로운 물길 한 자락을 손에 움켜쥐었습니다. 그리고 땅 나라로 내려갈 수 있는 산봉우리를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서시오.”
하늘나라 병사들이 물 그리매 공주의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을 잡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공주의 발이 한 발 더 빨랐습니다. 힘껏 달려온 물 그리매 공주는 다급한 김에 산봉우리를 향해 몸을 날렸습니다.
“아! 공주님!”
산 그리매 젊은이가 하늘나라 병사들에게 쫓기는 물 그리매 공주를 가슴 졸이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물 그리매 공주가 산봉우리로 몸을 날리자,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물 그리매 공주를 두 팔로 안았습니다. 하마터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손끝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물 그리매 공주는 손에 움켜쥐고 있던 물길 자락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물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산 아래 골짜기, 골짜기로 흘러서 메마른 들녘을 적셔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깊은 땅속으로 한없이, 한없이 스며들었습니다. 땅 속에서 넓고 너른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그 하늘나라의 맑고 깨끗한 신비스런 물이 땅위로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이 물은 물 그리매 공주님의 물이야.”
“그래, 하늘나라 물 그리매 공주님이 가져오신 신비한 약수지.”
“암, 이 세상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생명수지.”
“암, 그렇고말고. 이 물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맑고 깨끗하게 해줄 거야.”
퐁퐁! 하늘의 물, 약수이고 생명수는 그렇게 하늘을 향해 퐁퐁 샘솟아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