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오리알
“야! 오리알!”정민이가 교문을 들어섭니다.
기다리고 있던 영박, 세훈, 상수가 교문 앞에서 정민이를 가로막습니다.
“오리알 이제 오냐? 그러잖아도 기다리고 있었다.”
준표와 근예의 얼굴도 보입니다. 모두들 정민이와 같은 청화초등학교 5학년 3반 아이들입니다.
“너, 가져 왔냐?”
“응, 여기.”
정민이가 책가방을 땅바닥에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보자기를 꺼냅니다.
“몇 알이냐?”
“다섯 알!”
“됐어. 오늘부터는 매일 다섯 알씩이다. 알았지?”
“알았어.”
힘없이 대답하며 정민이가 오리 알을 싼 보자기를 풀려고 허리를 구부립니다.
“야, 그냥 줘!”
영박이가 정민이의 손에서 보자기를 홱 낚아챕니다. 그 바람에 정민이의 몸이 휘청, 고꾸라지려합니다.
“영박아!”오리 알을 싼 보자기를 빼앗긴 정민이가 다급하게 영박이를 부릅니다.
“왜?”
“그 보자기에 오리 알이 열 개 있어. 그러니 다섯 알은 돌려 줘.”
“다섯 알을 돌려주라고? 야, 너희들 어찌 생각하냐?”
영박이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묻습니다.
“어쩌긴 어째? 오늘은 한 사람이 두 알씩 먹자.”
“다섯이서 두 알씩이면 열 알이니 딱 맞다.”
“안 돼! 다섯 알 돌려줘.”
정민이의 얼굴이 울상이 됩니다. 말소리에 울음이 섞여 울먹울먹 합니다.
그러나 막무가내입니다. 영박이와 네 아이들은 키들키들 웃으며 운동장 저쪽으로 가버립니다.
정민이는 땅에 내려놓은 책가방을 힘없이 집어 듭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교실 쪽으로 걸어갑니다.
“야, 오리알! 이제 오냐?”
교실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서 이번에는 경원이와 승덕이가 정민이를 불러 세웠습니다.
“야! 오리알! 마침 잘 만났다. 오리 알 가져왔지?”
“미안해. 내일 줄게.”
“뭐라고? 오리 알을 안 가져 왔어?”
“가져왔는데, 영박이가 다 빼앗아 갔어.”
“야, 임마! 그건 핑계지.”
“맞아. 오리알이 오리 알 없다고 하면 어찌 되냐? 네가 낳아서라도 줘야지. 준다고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안 그래?”
“야, 오리알! 네가 오리 알이니까, 여기서 오리 알 낳아봐. 어서.”
경원이와 승덕이가 정민이를 윽박지릅니다. 발로 툭툭 차고 손으로 몸을 밀쳐댑니다.
“미안해. 내일 꼭 가져다줄게.”
정민이는 울먹이며 경원이와 승덕이에게 사정을 합니다.
“그래, 오늘 한 번만 봐준다. 그 대신 내일은 우리에게도 열 알이다. 이렇게 열 개다. 알았지?”
경원이가 두 손을 펼쳐 정민이의 눈앞에 들이대며 손가락 열 개를 보여줍니다.
“알았어.”
정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정민이는 산골짜기 오리농장에 삽니다. 아버지가 오리농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산골짜기에 있는 오리농장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에 오갑니다.
정민이의 별명은 오리알입니다. 지금은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그런데 지지난 해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에 왔습니다. 그 때 정민이의 도시락에는 밥 대신 오리 알이 들어있었습니다. 소풍갈 때도 그랬습니다. 정민이의 도시락에는 달랑 오리 알뿐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과자 군것질을 할 때도 정민이의 군것질감은 오리 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정민이를 이름 대신 오리알이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왜 오리알이야? 내 이름은 정민이야.”
처음에는 놀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따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오리알! 오리알!’ 하고 놀려댔습니다.
이제 정민이는 지쳐서 아이들이 오리알이라고 놀리건 말건 체념을 했습니다.
그렇게 5학년이 되었습니다.
영박이는 싸움을 잘한다고 소문이 난 아이였습니다. 두 눈이 뱀눈처럼 무섭게 생긴 아이였습니다. 그 영박이와 그만 한 반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정민이는 더욱 심한 괴롭힘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야, 오리알!”
처음 한 반이 되었던 날입니다. 쉬는 시간에 영박이가 뱀눈으로 노려보며 정민이를 발로 툭툭 찼습니다.
“니네집 오리농장이라며? 내일부터 오리 알 한 알씩 가져온다. 제일 큰 걸로 말야. 알았지?”
노려보는 뱀눈이 너무 무서워 정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날마다 오리 알을 한 개씩 가져와 영박이에게 주었습니다.
한 달쯤 되었을 때입니다.
“야, 오리알! 내일부터는 오리 알을 두 알씩 가져온다. 내 부하에게도 한 알을 주어야하니까 말야.”
“날마다?”
“그래, 임마! 날마다 두 알씩이야. 알았지? 엉!”
영박이는 뱀눈을 더욱 무섭게 치뜨며 정민이를 쏘아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정민이는 그 뱀눈이 너무 무서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민이가 오리 알 몇 알쯤 가져오는 건 큰 어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수천 마리의 오리들이 하루에도 수백 개의 오리 알을 낳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몇 알쯤은 아버지 몰래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박이의 요구는 갈수록 커졌습니다. 한 개에서 두 개, 세 개, 네 개로 불어났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경원이와 승덕이도 덩달아 정민이를 사납게 째려보며 윽박질렀습니다.
“야, 오리알! 영박이만 사람이냐?”
“내일부터는 우리에게도 오리 알을 줘야해. 알았지? 매일 다섯 알씩이다.”
그렇게 해서 오리 알이 열 알로 불어났습니다. 한 두알 때는 괜찮았지만, 열 알이 되고나니 힘들었습니다. 부피도 커지고 무거웠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도둑질하듯 오리 알을 훔쳐야했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그날도 정민이는 아버지 몰래 오리 알 열 알을 훔쳤습니다. 알 넣는 상자에 넣어 보자기로 쌌습니다. 보자기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버지는 오리 축사로 나가신지 이미 오래입니다. 터덜터덜 골짜기 언덕길을 내려와 버스 타는 곳까지 왔습니다.
‘이렇게 언제까지 오리 알을 가져다주어야 하지?’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나 아버지께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말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에 젖어 고갤 푹 숙이고 있는데, 빵빵 자동차 소리입니다.
“왜 그렇게 힘이 없냐?”
운전기사 아저씨가 걱정스레 말을 겁니다.
“아니어요. 아무 것도.”
정민이는 황급히 고갤 저어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고는 자리에 앉습니다.
이윽고 버스가 학교 앞까지 왔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와라. 기운도 좀 내고 말야. 엉?”
“예! 아저씨! 오후에 또 봐요.”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고갤 숙여 꾸벅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마악 출발하는 차 앞으로 공이 굴러왔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그 공을 주우려고 달려왔습니다.
“아저씨! 차 멈춰요.”
정민이가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아이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차 앞에서 밀쳐냈습니다.
“끼이익!”
쇳소리를 내며 차가 급하게 멈추었습니다. 다행히 공을 주우려 달려오던 아이는 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정민이의 몸이 차 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황급히 차에서 내려왔습니다. 등교하던 아이들도 깜짝 놀라 버스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정민이가 차 밑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습니다. 아무데도 다친 곳이 없었습니다.
“좀 뒤에라도 아프면 연락해라. 병원에 가보게. 알았지?”
운전기사 아저씨가 정민이에게 연락처가 있는 명함을 주었습니다.
“선생님! 영득이가 정민이 때문에 살았어요.”
누가 연락을 했는지 3학년 영득이 담임 선생님께서 나오셨습니다.
“정민이가 영득이를 살리고 차 밑으로 들어갔어요.”
아이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들어댔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지?”
선생님이 정민이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예! 선생님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민이는 저만큼 떨어진 책가방을 집어 들고 교문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가방에서 무슨 물 같은 것이 뚝뚝 떨어집니다.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가방을 열어봅니다.
오리 알이 모두 깨졌습니다. 깨진 오리 알 때문에 책과 공책까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교실로 향하던 정민이는 뒤돌아섰습니다. 교문 밖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침 공부를 시작하려는 5학년 3반 교실입니다.
“정민이가 왜 안 보이지?”
교실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정민이부터 찾았습니다. 아침의 사고 소식을 들어서입니다.
“선생님! 영박이 동생 영득이가 차에 치어 죽을 뻔 했어요. 그 때 정민이가 용감하게 영득이를 살려줬어요.”
“그래요. 우리들도 봤어요. 영득이를 살리고 정민이는 차 밑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았어요.”
“그건 알겠는데, 그러니까 정민이가 어디 있느냐? 말이다.”
아이들은 그때서야 정민이가 교실에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누구 본 사람 없어?”
“교실 쪽으로 걸어가는 것은 봤어요.”
선생님은 정민이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뚜뚜 소리만 날뿐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따 점심시간에 정민이 집에 가보기로 하자. 영박이! 너랑 같이 가자. 오늘 정민이 아니었음 네 동생 영득이가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잖느냐? 그러니 너랑 함께 찾아가보자. 알았지?”
“예.”
영박이는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날 점심시간입니다. 조금 일찍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선생님과 영박이는 정민이 집을 향해 나섰습니다.
“선생님! 저희들도 갈게요.”
세훈, 상수, 준표, 근예, 경원, 승덕이 등이 쭈빗쭈빗 따라 나섰습니다.
“차에 5명밖에 못타니까 가위 바위 보를 해라. 3사람 뽑는다.”
그렇게 해서 상수, 근예, 승덕이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운전하는 승용차는 마침내 정민이가 사는 산골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버스길을 벗어나자 시멘트 포장길이었습니다. 중간에 빗물에 패인 곳도 있어서 차가 덜컹거렸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구불구불 언덕길을 올라 정민이네 오리 농장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정민이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정민이 때문에 왔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정민이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정민이 어머니는 정민이가 1학년 때 저 세상으로 갔지요. 그리고 내가 오리를 키우느라 바빠서 뒷바라지를 잘해주지 못했지요. 점심 도시락에 날마다 삶은 오리 알만 담아주기도 했으니까요. 그래도 학교만은 결석하지 않고 잘 갔는데요.”
“맞아요. 정민이는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어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친구들과도 다투지 않는 착한 아이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차 사고가 있은 뒤 어디로 가버린 거지요. 혹시 갈만한 곳이 있나요?”
한참 생각하던 정민이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갈만한 곳이 한 군데 있긴 있지요. 가봅시다.”
정민이 아버지가 앞장을 섰습니다. 선생님이 뒤따르고 그 뒤를 아이들이 올망졸망 따라갔습니다.
작은 소나무가 우거진 곳을 지나자 평평한 곳이 나왔습니다. 그곳에 작은 무덤이 있었습니다.
정민이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작은 무덤 앞에는 작은 풀꽃다발이 놓여있었습니다. 그 풀꽃 다발을 손에 쥐고 정민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울었는지 눈가에는 눈물자국이 있었습니다.
“정민아!”
“정민아!”
정민이 아버지도 선생님도 조그맣게 정민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정민아! 우리들도 왔어.”
아이들도 오리알 대신 정민이라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니!”
살그머니 눈을 뜨더니 정민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여기가 정민이 어머니 묘랍니다. 정민이가 여기 있을 줄 알았지요. 이 산골짜기에서 정민이가 갈 곳은 여기뿐이지요.”
정민이 아버지가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정민이 손을 와락 움켜잡았습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결석 안하려고 했는데, 오리 알이 깨져서 다시 가져가려고 집에 왔다가 그만…. 죄송해요.”
“오리 알이 깨져서라니?”
“선생님! 잘못했어요. 저희들이 잘못했어요. 저희들이 정민이에게 오리 알을 가져오라고 했거든요.”
“정민아! 미안해. 이제 괴롭히지 않을게.”
“앞으로는 오리 알 주라고 하지 않을게.”
아이들은 정민이 앞에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우리 정민이가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오리 알을 가져가려고 했나 봅니다. 그래, 애들아! 오리 알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 농장으로 가자. 한판 씩 줄 테니 집에 가서 삶아 먹어라.”
정민이 아버지가 다시 오리농장 쪽으로 앞장을 섰습니다. 정민이와 손을 마주잡은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만 할 뿐,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정민이 어머니 무덤 앞에는 작은 풀꽃다발이 놓여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