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동화

너희들 왜 거기 있냐?

운당 2010. 12. 20. 13:10

 두만강에서 바라본 북쪽 땅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장두노미란다. 감출藏 머리頭 드러날露 꼬리尾 자라고 한다.

중국 원나라의 문인 장가구가 지은 '점강진·번귀거래사'와 왕엽이 지은 '도화녀'라는 문학작품에서 나온 말이라는데, 머리 나쁜 타조가 위협자에게 쫒기다가 머리를 덤불에 숨겼으나 꼬리를 숨기지 못하고 쩔쩔매는 걸 조롱하는 말이라고 한다. 뻔한 일을 감추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 아니면 모두가 다 아는 일을 감추면서, 다 감춘 것으로 착각하고는 입만 열면 거짓부렁을 씨부렁대는 걸 빗대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2010년 여름, 중국쪽에서 올라 바라본 백두산 천지다.

2010년 12월 20일 연평도 뉴스를 들으며, 욕을 삼키며

하~ 답답해서 쓴 동화 한편입니다.

 

 

<동화>

너희들 왜 거기 있냐?

김 목

 

 

“선생님!”

“왜? 또?”

벌써 다섯 번째입니다. ‘꽤액’이가 손을 또 번쩍 들었습니다.

“이웃돕기 잔치 언제해요?”

“야. 꽤액이! 너 벌써 그 질문 몇 번째야?”

‘꽤액’이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을 때 ‘그릉’이가 말꼬리를 자르며 짜증을 냈습니다.

“그래. 꽤액이 너 지금 왕 짜증이야. 아까도, 또 조금 더 아까도 똑같은 질문을 했잖아.”

‘어흥’이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내리치며 말했습니다.

‘꽤액’이는 아기 타조입니다.

‘그릉’이는 아기 곰입니다.

‘어흥’이는 아기 호랑이입니다.

 

“조용히 해요.”

‘숲속학교’의 선생님은 ‘흰수염’입니다. 흰수염은 산양입니다. 바위 벼랑에 서 있을 때 한줄기 바람이 붑니다. 그러면 산양 선생님의 흰수염이 마치 깃발처럼 아름답게 휘날립니다.

숲속백성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저절로 고개를 숙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인사를 드리며 마음속으로도 존경을 합니다.

“선생님! 꽤액이 저 녀석은 글자도 잘 모르면서 맨날 놀 궁리만해요.”

“그래요. 우리 공부를 못하게 방해하는 저 녀석 아주 비호감이예요.”

호랑이, 노루, 곰, 토끼, 다람쥐, 사슴, 고슴도치, 비둘기, 산까치 등 숲속학교 아이들이 모두 꽤액이를 못마땅하게 노려보며 이마를 찌푸렸습니다.

“자, 모두들 조용히 해요. 아마 꽤액이가 오늘 잔치를 하면서 이웃돕기를 많이 하려고 그러나 봐요.”

“선생님!”

선생님의 말에 번쩍 손을 든 건 아무 말 없이 눈만 끔벅끔벅하던 아기 독수리 ‘눈빛’이었습니다.

“꽤액이와 찌익이가 돈을 많이 가져왔어요. 오늘 잔치하면서 먹을 것은 자기네들이 다 사버린다고 했어요.”

“맞아요. 물건도 자기네들이 먼저 고르고 난 뒤 우리들이 골라야한다고 했어요.”

“선생님! 꽤액이가 찌익이가 자기들 아버지의 힘과 돈을 믿고 못된 짓을 골라서 해요.”

“그래요. 찌익이 아버지가 숲속나라대통령이지 찌익이가 대통령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마치 대통령인 것처럼 거들먹거려요.”

또 다시 숲속학교 아이들이 웅성웅성 떠들어댔습니다.

찌익이는 생쥐입니다. 찌찌익은 찌익이의 아버지이고 이 숲속나라의 대통령입니다.

꽤액이의 아버지 꽤꽤액은 숲속나라에서 제일가는 부자입니다.

그래서는 안 돼지만, 찌익이와 꽤액이는 아버지들의 권력과 돈의 힘을 믿고 다른 아이들을 업신여기고 우쭐거리나 봅니다.

“우리가 뭐 잘못한 거 있냐? 너희들 돈을 뺏었냐? 먹을 걸 못 먹게 했냐?”

“지난번에 우리 아버지가 너희들에게 품질 좋은 쇠고기 피자를 한 판씩 사줬잖아?”

“우리 아버지는 학교 길을 넓혀줬잖아? 자전거 도로도 새로 만들어주고 말야.”

“고마운 줄도 모르고 불평만 한단 말야.”

“그래, 맞아. 좋은 옷도 못 입고, 쬐그마한 집에서 사는 거지같은 것들이 말들이 많아.”

찌익이와 꽤액이는 선생님의 눈길을 피해 아이들을 노려보며 입술을 뚝 내밀었습니다.

 

마침내 이웃돕기 잔치가 열렸습니다.

교실 한쪽에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았습니다.

여러 가지 옷, 동화책과 그림책, 장남감 등 오늘 이웃돕기 잔치에서 팔 물건들입니다. 숲속학교 아이들이 가져온 물건도 있고, 여러 곳에서 선물로 받은 물건들입니다. 이 물건들이 이웃돕기 성금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웃돕기 잔치 마당은 장터마당처럼 시끌벅적 거렸습니다.

‘따뜻한 손잡아요. 어깨동무를 해요. 우리는 숲속나라 다정한 이웃이지요.’

선생님께서 ‘다정한 이웃’, ‘사랑하는 내 친구, 숲속의 봄’ 등 아이들이 잘 부르는 노래도 틀어주었습니다.

 

“선생님! ‘깡총’이가 울어요.”

그때 ‘어흥’이가 아기 토끼 ‘깡총’이를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

선생님은 ‘김치전, 맛어묵, 떡볶이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인기가 좋았던지, 눈코 뜰 새 없이 잘 팔렸습니다. 그 틈에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우리 깡총이 무슨 일이지?”

일손을 잠시 쉬고 흰수염 선생님은 깡총이의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

깡총이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눈에 눈물만 그렁그렁입니다.

“선생님! 아침에 보니 깡총이에게 돈 만 원짜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오백 원밖에 없어요. 맛어묵 사먹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대요. 맛어묵은 천 원이니까요.”

어흥이가 깡총이를 대신해 마음을 얘기해줍니다.

“깡총아! 돈 만원으로 무얼 샀지?”

“이거 샀대요.”

어흥이가 깡총이 자리에서 뿅망치를 가져와 선생님께 보여줍니다. 뿅망치는 혹처럼 여러 곳이 톡톡 돋아있어 오돌토돌 만져지는 도깨비 망치입니다.

“이거 오백 원짜리인데? 만 원주고 샀으면 얼마 남지?”

“구천 오백 원이요.”

아기 독수리 ‘눈빛’이가 재빨리 계산을 해서 대답합니다. 어느새 아이들이 선생님과 어흥이, 깡총이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9천원이 더 남아있어야 하는데…. 깡총아! 이 뿅망치 누구에게 샀지?”

“아까 보니 꽤액이가 5백 원 주고 샀다고 이 뿅망치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 그렇다면 깡총이는 꽤액이에게 이 뿅망치를 샀겠구나.”

“아니요. 찌익이에게 샀을 거예요.”

“맞아요. 꽤액이가 먼저 사서 찌익이에게 팔았어요. 그걸 찌익이가 다시 깡총이에게 팔았어요.”

“처음엔 오백 원이었지만, 값이 올라서 구천 오백 원이 되었다고 했어요. 꽤액이가 윽박지르고 찌익이는 억지를 썼어요. 둘이서 뿅망치를 깡총이에게 강제로 팔았어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말을 거들었습니다.

“알았다!”

선생님은 일이 어찌된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좋아. 오늘 우리 깡총이에겐 선생님이 맛있는 맛어묵과 김치전, 그리고 떡볶이를 쏘기로 하겠다. 그런데 꽤액이! 찌익이! 너희들 어디 있냐?”

아이들과 선생님은 교실을 휘둘러보았습니다.

꽤액이는 쓰레기통 뒤에, 찌익이는 티비함 속에 숨어있었습니다.

“선생님! 꽤액이는 똥구녁이 보이고요, 찌익이는 꼬리가 보여요”

“하하하! 하하하하!”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하지만 흰수염 선생님은 웃지 않았습니다.

“꽤액이! 찌익이! 너희들 왜 거기 있냐? 숨어도 다보이니 이리 나와라. 이웃돕기 잔치 끝까지 함께 마무리하도록 하자.”

이마에 혹이 톡 나오도록 알밤을 한 대씩 먹여야겠지만, 흰수염 선생님은 부드럽게 타일렀습니다.

 

 

 


 

'단편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민이 이야기 6  (0) 2013.09.07
오리알  (0) 2011.06.29
상 받고 싶어요  (0) 2007.11.28
그건 비밀이야  (0) 2007.11.26
살구꽃 벌어지네  (0) 2007.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