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 아자! 기분 좋다>
<동화>
상 받고 싶어요
김 목
그 날 정원이는 선생님께 ‘참을성상’이란 상을 받았습니다. 컴퓨터로 뽑은 예쁜 상장에다, 곰두리 스티커 세장, 형광색연필 한 자루가 상품이었습니다.
“야아, 박수! 박수 쳐!”
자기가 상을 받으면서 박수를 치라고 성화를 부리는 녀석도 드물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크게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야! 장난꾸러기 정원이가 상을 다 받는구나.”
부러워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에이, 상이라는 게 뭐 별 것도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상을 받는 다는 게 얼마나 어렵다는 걸 깨달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래, 상 받을 만 해. 얼마나 어렵게 이겨냈는데.’
다른 아이라면 또 모릅니다. 정원이가 ‘참을성상’을 받는다는 건 코끼리가 바늘구멍을 들어가기보다 힘든 일이어서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정원이가 굳이 박수를 치라고 안했어도 크게 박수를 쳐주었을 겁니다.
그 아이들이 공부 시간에는 대체로 조용합니다. 물론 누가 시키지도 않은 데, 스스로 그러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아이들은 졸려서 자꾸만 감기려는 눈에 힘을 줍니다. 괜스레 움직이려는 팔에도 힘을 주고, 두 다리에도 힘을 줍니다. 말이 하고 싶어 저절로 벌어지려는 입을 앙다뭅니다.
눈은 책과 공책을 보고 귀는 열 수 있을 만큼 열어서 선생님 말씀을 들으려 합니다. 손에 든 연필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이따금 선생님을 향해 몸을 곧추세웁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5분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아니지요, 3분? 아닙니다. 솔직히 2분이거나 1분일 겁니다.
입, 코, 귀가 자꾸만 벌럭거립니다. 손과 발이 근질거리며 저절로 움직입니다. 고개도 움직이고 허리도 가만있지를 않습니다. 앞으로 뒤로,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에다 하품하는 아이, 슬쩍 과자 먹는 아이가 있습니다.
학용품을 떨어뜨리고 줍는 아이, 연필 깎는 아이가 있습니다.
화장실 다녀오는 아이, 옆 친구에게 무얼 빌려달라는 아이, 낙서 하는 아이, 조는 아이 등이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게 바구니에서 게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모습과 비슷할 겁니다.
참, 게 바구니 봤어요? 안 봤다면 옛날 재래시장에 한 번 가보세요. 생선을 파는 쪽으로 가면 큰 바구니에 담긴 새카맣고 작은 게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바닷가 뻘밭에 가도 볼 수 있지요.
발소리를 크게 내선 안 되지요. 조용히 한참을 기다리면 작은 게들이 뻘밭 가득 나타나지요. 무슨 일이 있는지, 바쁘게들 뻘밭을 돌아다니지요.
이제 ‘철퍼덕’ 하고 발자국 소리를 내보세요. 그러면 그 수많은 게들이 발 빠르게 자기 구멍을 찾아 들어가지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뻘밭에 온통 게 구멍이 널려져 있지요.
그런데 그 중에 자기 구멍을 못 찾고 왔다 갔다 하는 게들도 있어요. 남의 구멍에 들어갔다가 쫓겨나오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렇게 교실은 게 바구니처럼 시끌벅적 할 때가 더 많습니다. 선생님이 잠깐 자리를 비운 시간이면 교실은 더 야단법석입니다. 다투고, 장난치는 건 그냥 흔한 일입니다. 싸우고 울고도 흔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조용한 것은 스스로라기보다는 선생님 눈초리가 무서워서입니다. 아이들 말로 선생님 잔소리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꼼짝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일겁니다.
어쩌다 있는 일이긴 하지만 머리가 찢어지거나, 이가 흔들리는 일만 없었으면 합니다. 손이 부러지거나 다리가 삐는 일만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참, 이제 정원이가 ‘참을성상’을 어떻게 받았는지를 얘기하겠습니다.
정원이는 공부시간에 똑바로 앉아있기를 잘 못합니다. 1분이라는 시간도 정원이에겐 긴 시간일겁니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30초일 겁니다. 그래서 별명이 ‘30초’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짝꿍과 공부시간, 쉬는 시간 가리지 않고 장난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어디 짝꿍뿐입니까? 앞 뒤, 저만큼 떨어져 앉아 있는 아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눈만 마주치면 얘기하고 장난을 칩니다.
그러다 조용할 만하면 또 ‘투당탕’ 소리가 납니다. 보나 안보나 정원이 필통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정원이 필통 책상에 집어넣도록 해.”
“알았어요. 이제 안 떨어뜨릴게요.”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다시 ‘투당탕’ 소리가 납니다. 또 필통이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정원이의 필통은 크기도 합니다. 또 벼라 별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연필 다섯 자루, 색연필 빨강, 파랑, 검정 세 자루, 볼펜, 형광펜, 지우개, 칼, 작은 자 하나는 기본입니다. 그리고 껌이며 사탕도 있습니다. 딱지도 있고 구슬도 있습니다. 만물상자인 셈입니다.
그렇게 많이 들어가야 하는 필통이니, 크기가 작아선 안 되겠지요.
“최정원!”
“예!”
“너 필통 작은 거 가지고 다니면 안 되겠니?”
“이거 다 넣으려면 안 돼요.”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다니면 되잖아?”
“다 필요하거든요.”
“좋아. 그러면 그 필통을 책상 속이나, 가방에 넣어두렴.”
“공부 시간에 써야 하는데요.”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화를 내려다가 억지로 참는 게 분명합니다.
“그래? 그럼 공부 시간에 필요한 것만 내놓으렴.”
“알았어요.”
그래서 그 시간에는 정원이가 필요한 것만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역시 30초도 안 되어 연필 한 자루가 마루로 또르르 굴러 떨어집니다.
다시 30초도 못 되어 지우개가 굴러 떨어집니다. 이번에는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질 않습니다.
그걸 찾는다고 정원이는 책상 다리 사이를 비집고 다닙니다.
“왜 그래?”
“내 지우개 찾는 거야.”
어떤 아이와 티격태격 말다툼까지 합니다.
“정원이! 네 연필이랑, 지우개 다시 필통에 집어넣어.”
선생님 목소리가 많이 커졌습니다.
“알았어요.”
“그리고 그 필통을 책상 속에 집어넣도록 해.”
“싫어요. 이제 안 떨어뜨릴게요.”
“너 필통을 얼마 만에 한 번씩 떨어뜨리는 줄 알기나 해?”
정원이 대신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5분이요.”
“아니 1분이요.”
“아니어요. 30초여요. 그래서 정원이 별명이 30초여요.”
“맞아요. 맞아요.”
“우하하하하하!”
아이들 웃음소리가 왁자하니 퍼집니다.
“지금부터 필통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빼앗아 버릴 거다.”
“알았어요.”
“아무튼 이제 한 번만 필통 떨어뜨리면 압수야. 대신 한 번도 안 떨어뜨리면 상을 주마.”
“정말요?”
“그래. 난 거짓말 안한다.”
선생님은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필통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제 절대 안 떨어뜨릴게요. 그러면 상을 꼭 주셔야 해요.”
정원이도 그렇게 말하며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필통을 책상 귀퉁이에 놓고 손바닥으로 몇 번이나 꾹꾹 눌러줍니다. 단단히 결심을 한 얼굴입니다.
다시 공부가 이어집니다.
이따금 선생님의 눈길이 정원이에게 갑니다. 정원이의 눈과 마주칩니다.
그러면 정원이는 잠시 필통을 봅니다. 그리고 다시 선생님의 눈길과 마주칩니다. 눈으로 말합니다.
‘선생님, 이상 없지요? 필통 잘 있지요?’
자신 있게 말하며 배시시 입가에 웃음을 머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두 시간 째도 잘 지나갔습니다.
셋째시간, 넷째시간에도 선생님 눈길이 오면 ‘잘있지요?’ 정원이의 눈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벌써 열 번도 넘게 마루에 떨어졌을 필통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정말 잘 참아주었습니다.
정원이가 ‘참을성상’을 받아도 누구하나 이유를 달지 않았습니다. 정원이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참았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 날 오후입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은 청소하고 집으로 가면 됩니다. 선생님이 조금 늦게 교실에 들어왔을 때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다가버리고 없습니다.
“아니, 너 지금까지 청소하고 있어.”
형준이가 비로 열심히 교실을 쓸고 있습니다.
“우리 형준이는 언제 봐도 참 착하구나.”
형준이가 슬금슬금 다가왔습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합니다.
“무슨 할 말이 있어?”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얼굴인데, 형준이는 그만 고개를 흔듭니다.
“날 더우니까, 이제 그만하고 가렴.”
“예,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형준이 행동이 굼뜨기만 합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형준이는 달팽이처럼 천천히 교실을 나갔습니다.
‘저 애가 무슨 일이지?’
선생님은 궁금하면서도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때 형준이의 책상에 공책 한 권이 놓여있는 게 눈에 뜨였습니다.
그림 일기장이었습니다. 펼쳐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나 혼자 청소 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가버렸다. 비로 쓸었다. 선생님이 형준이 착하구나 하시며 상을 줘야지 하셨다. 야, 신난다. 어서 빨리 상을 받고 싶다.’
비로 교실을 쓸고 있는 형준이와, 칭찬을 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또 그 다음 날 일기입니다.
‘오늘도 나 혼자 비로 쓸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상을 안 주셨다.’
빗자루를 들고 뾰로통한 얼굴로 서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일기입니다.
‘오늘 정원이는 참을성상을 받았다. 나도 필통을 자꾸만 떨어뜨렸으면 상을 받는 건데.’
상을 받는 정원이를 형준이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차!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선생님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소리가 나게 쳤습니다.
“암 줘야지. 상도 주고 상품도 줘야지. 뭘 줄까? 그래 동화책을 사주자.”
선생님은 갑자기 신이 났습니다. 깜빡 잊을 뻔 했던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뻤습니다.
‘그런데 녀석들! 내일은 또 한바탕 소동이 나겠는걸. 형준이가 청소상을 받으면 서로 빗자루 차지해서 청소하려고 야단법석을 피우겠는걸.’
그렇게 교실이 서로 청소하려는 아이들로 소란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즐겁기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