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34)

운당 2014. 9. 29. 07:13

12. ! 백제

 

어째, 저를 어째!”

세민이는 너무도 끔찍한 광경에 비명을 지르며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 차마 눈을 뜨고 못 보겠구나.”

구름이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걸 어떻게 막을 수 없을까?”

설문대 할망이 말씀하셨잖아. 역사를 바꾸진 못한다고.”

구름이와 세민이는 그렇게 가슴을 찢는 큰 슬픔에 젖었다. 쉼 없이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얏호! 신난다!”

너무 너무 기쁘다.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얼씨구절씨구! 좋구나!”

하지만 남의 슬픔과 원한은 악의 무리에게는 행복이다. 쥐와 닭은 겅중겅중 깨춤을 추며 기뻐 날뛰었다.

흐흐흐흑!”

계백 장군의 두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흐릿한 눈으로 자신의 칼을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숱한 싸움터에서 적을 물리치고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주던 칼이었다. 백제 제일의 장인이 만든 명검으로 의자왕으로부터 직접 하사받은 칼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칼로, 또 자신의 손으로 가족을 죽이는 끔찍한 짓을 할 줄을 어찌 꿈에나 생각했을까?

하지만 계백은 그런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전쟁에 지면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죽음과 적의 노예가 되는 것뿐이었다.

적군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건 차라리 나은 선택일지도 몰랐다. 노예로 끌려가면 평생 동안 고된 일을 하며 짐승처럼 살아야했다. 자식이 태어나면 또 그 자식도 노예의 운명을 이어받아야 했다.

계백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여러 싸움에서 승리를 한 뛰어난 장수였지만, 이번 싸움은 역부족이라 생각을 했다.

이미 싸움의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리고 신라의 5만 병사는 그렇다 해도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대군을 막아낼 힘이 백제에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이 전쟁에 지면 백제 장군의 가족이니 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온갖 고초를 겪은 뒤 노예로 끌려가 평생을 또 짐승처럼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계백은 자기 손으로 가족의 불행을 끝낼 결심을 한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을 각오로 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늘 아래 이보다 더 슬프고 원통한 일이 어찌 또 있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붉은 피가 뜨겁게 흐르던 아내와 자식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