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36)

운당 2014. 10. 2. 06:24



, ! 빨리 계백의 뒤를 따라가자. 이제 곧 전투가 벌어질 테니, 또 수천 군사의 죽음을 보게 되겠구나.”

그럼, 날마다 신나는 일만 있겠구나.”

쥐와 닭은 그렇게 계백 장군의 뒤를 따라 가고, 구름이와 세민이는 불타버린 집터를 여기 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구름아! 여기야 여기.”

세민이가 구름이를 불렀다.

온 가족이 죽음 길을 함께했구나.”

불에 타버려서 한 줌 재가 되었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함께 가니 덜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구름이와 세민이는 잠시 고개를 숙여 명복을 빌었다.

이때에 쓰라고 설문대 할망이 깨끗한 옷감을 주셨구나.”

세민이가 보따리에서 설문대 할망이 주신 옷감을 알맞게 잘랐다. 계백 장군 가족들의 유골을 수습하여 그 옷감에 쌌다.

이제 우리도 가자. 이 분들을 좋은 곳에 모셔드리고 넋을 위로해드리자.”

! 알았어. 부디 편한 길 되라고 기도하자.”

구름이와 세민이도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계백 장군의 집을 나왔다.

내 가족과 이웃의 목숨을 앗아갈 적군이 눈앞에 다가오는 공포와 절망, 슬픔과 고통은 계백 장군 한 가족만이 겪는 것은 아니다. 망해가는 나라의 모든 백성이 겪어야할 운명인 것이다.

그 해, 그러니까 서기 660820(음력 79)아침이다.

황산벌에 동이 트고 있었다.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나지막한 봉우리와 봉우리, 그 사이의 들판이 희부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계백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다. 어제 사비성을 떠나 동쪽으로 3십여 킬로미터를 단숨에 달려왔다. 8월 한 여름 찌는 듯 무더위에 지칠 법도 했으나, 5천 백제 결사대의 얼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싸움이 사랑하는 내 가족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갈림길이다.

내가 죽어서 가족을 살려야 한다.”

백제의 5천 결사대는 비장한 각오로 끝까지 싸울 것을 맹세하고 나온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656년의 일이다. 옥에 갇힌 백제의 좌평 성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의자왕에게 올리고 죽었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으니 한마디 하고 죽겠소이다. 나라의 앞날을 살피 건데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외다. 적의 군사가 오면 육군은 충남 대덕군 탄현의 숯고개에서 막고 수군은 금강 하구의 기벌포에서 막아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야 적을 이길 수 있나이다

하지만 의자왕은 아무런 대비도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 백제 최고의 벼슬인 좌평 성충을 옥에 가둬 죽이고, 좌평 흥수는 유배 보냈다. 간신들의 꾐에 빠져 두 충신을 버린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