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걸으면서 쓰는 이야기 (38)

운당 2014. 10. 7. 07:47



이토록 허망하게 무너져버릴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온조대왕이 나라를 세운지 어언 7백여 년이다. 이곳 소부리를 도읍지로 하여 사비성을 세운지도 123년이다. 그리고 지금은 5, 37, 200여 성, 70만 호를 거느린 대국이다. 그 어떤 나라와도 한 바탕 일전을 겨누어볼만한 힘과 역량이 있는 나라다. 서쪽 바다 건너 대륙에도 백제성을 세웠다. 그렇게 당나라와도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고구려, 신라에도 꿀리지 않는 강한 나라였다. 하루아침에 쉽게 무너질 그런 허약한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는 계백의 마음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 성충과 흥수의 충언대로 적들이 기벌포와 숯고개를 들어오지 못하게 미리 막았어야 했다. 각지의 성문을 굳게 닫아건 다음 적이 지치기를 기다려 기습공격을 했다면 능이 이길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호랑이 우리 문을 열어주고 용에게 비구름을 안겨주고 말았다. 숯고개를 활짝 열어 신라군을 불러들이고, 기벌포를 비어 당군에게 설 땅을 내준 것이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적군에게 운명을 내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계백은 서둘러 백제군을 지휘하는 사군부로 나갔다. 장검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엄히 군령을 내렸다.

무관들은 모두 모여라. 굼뜨거나 약한 소리를 하면 그 자부터 먼저 베어버리겠다.”

무독, 좌군, 진무 등의 무관들이 모여들었다. 지금껏 강력한 지도자가 없어 이리저리 흔들리던 사군부였다. 이제 계백이 오니 모두들 정신이 바짝 났다.

계백은 무관들을 거느리고 직접 군사를 점검하였다. , , , , 중 모두 5부의 군사들을 불러 모으니, 가까스로 5천여 명 남짓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 뉘엿뉘엿 해가 기울 무렵에 5천 결사대를 한 자리에 모았다.

계백은 백제군 결사대 앞으로 나섰다.

우리들은 결사대다. 다시 살아올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죽어서 가족을 살리고 나라를 살려야 한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이미 적군이 숯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한시가 급하다. 바로 내일 출전이다. 모두들 집으로 가서 출전 준비를 한 뒤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오도록 하라.”<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