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40
창평(昌平)한 좋은 시절 무안(務安)을 일삼으니
태평한 좋은 세상이니 편안하지 않을 소냐?
그렇다. 집집마다 울타리 걷고, 밥 지어 소쿠리에 담아 길가에 내놓는 세상이면, 누가 배를 곯고 남의 것에 욕심을 내겠는가?
허나 아흔 아홉 가진 사람이 백 개를 채워야 한다고, 한 개 가진 사람에게서 그 한 개를 뺏어가는 게 현실이다.
어릴 적 놀러 나가는데 동생이 따라오면 데리고 가기 싫어서
‘저기 하늘 봐라. 하느님 똥구먹 보인다.’
‘어디?’
그 거짓말에 동생이 하늘 쳐다볼 때 줄행랑치던 일은 말 그대로 순수했던 어릴 적 추억이다.
사랑이 제일이라며 하늘님 똥구먹이라도 찌를 듯 높은 건물 지어놓고 자기 자신만, 초록은 동색이라며 저들끼리만 사랑하는 족속, 집단인 사기꾼들이 있다.
배품 우선이라고 명함 팍팍 뿌리면서 라면 상자 몇 개 쌓은 뒤, 카메라 렌즈 앞에서 손가락 두 개 펴든 체, 실실 웃는 얼굴일 때, 찰칵 소리 나면 그걸로 끝인 힘센 족속, 집단인 도적놈들이 있다.
어린 시절 많이 들었던 말이다. 배부르고 등 따수면 나랏님도 안 부럽다고 했다.
이 흰구름 나그네의 할머니는 손주 배 불리 먹는 게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빨리 나가 놀 욕심으로 밥숟가락 놓기 바쁘게 뛰어나가면 ‘어따 내 강아지야! 배 꺼지는 데 달리지 말라.’고 걱정하셨다. 달리면 배가 꺼지니 밥 먹은 거 아깝다는 말이다. 참으로 먹고 살기 힘들던 보릿고개 시절 얘기다.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 내 강아지 힘들게 하는 놈들을 그냥 잡아다 아궁이에 쳐놓고 부지깽이로 똥구먹을 쑤셔줄란다.’
그리 말씀하시며 당신은 한 입도 안 잡숫고 손주 입에만 감춰 논 엿 한가락 입에 물려주시던, 이제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할머니가 문득 보고 싶다.
그쯤에 이르러서야 사랑 제일을 말해야 하는데, 요즈음은 콧구멍의 마늘씨까지 빼먹으려 설치는 놈들이 사랑 제일을 외친다. 어허! 통제라. 사랑도 병들고 흔해 빠진 이가 되고 말았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다.’ 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니 이제 창평에서는 맛있게 먹고 배도 부르는 그런 얘기나 하련다.
창평 국밥, 창평 엿, 창평 한과 등은 창평의 소문난 먹거리다.
지금도 그렇지만 국밥은 고기 귀한 시절, 최고의 영양식이고, 서민 음식이며, 넉넉한 인심의 표상이었다. 장에 가면 그 국밥 한 그릇에 텁텁한 막걸리 대포로 이웃과 소통하고, 한동안 적조했던 벗과 우정을 나누었다.
어떤 소설 속 산골 부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남편이 장터로 나뭇짐 지고 식량 사러 가는데, ‘국밥 한 그릇 맛나게 묵고 오시시오. 글먼 밤에는 그 국밥 맛이 어쩌코롬 생겼는지, 내가 묵어볼라요.’하면서 아내가 19금 분홍빛 미소를 짓는 장면이다. 우리 민초들은 눈으로, 코로, 입으로만 국밥을 먹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이르러 더 이상 국밥 맛이 어떨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여간에 창평에 가거든 국밥 한 그릇은 반드시 챙길 일이다.
옛날 추억이다. 지금도 그런 주막이 있는지 모르겠다.
“헛험! 아줌씨, 계시오?”
“하이고, 아재요. 얼릉 오시오.”
헛기침 하며 이마에 닿는 주막집 포장 걷고 들어서면, 엉덩짝 푸짐한 주모가 서방님이라도 되는 양 반긴다. 이어 삐거덕 거리는 나무 의자에 걸터앉으면, 앉기가 바쁘게 날랜 솜씨로 삶은 간이며, 허파 등을 몇 점 썰어 준다. 일테면 요즈음 땅콩 같은 입다심이다. 그 안주에 막걸리 한 잔 꿀꺽꿀꺽 들이 키고 짭짤한 새우젓은 또 셀프 커피인 입가심이다.
주모는 그동안 밥 한술 그릇에 담아 고기 삶은 솥뚜껑 열고 그 국물에 넣었다, 빼다를 여러 번 하면서 밥을 덥힌다. 그러면 그 집만이, 그 주모만이 맛낼 수 있는 기막힌 국밥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집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다 시절의 흐름이다. 그래도 그 풍경은 사라졌지만, 그 국밥 맛은 남아있다. 그 국밥이 창평국밥인 것이다
요 며칠 전 술자리에서다. 뉴스에 홍삼 꿀차가 가짜였다는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고 친구가 혀를 끌끌 찼다. 그 소릴 듣는 순간, 술맛이 삼천리다.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토가 나오려 해서다.
‘어야! 내가 꿀차 한 잔 삼세.’
벗들과 즐거운 여행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모처럼 큰 맘 먹고 그 홍삼 꿀 차를 대접했는데, 이런 오살놈들이 있느냐 말이다.
하긴 사기라면 29만원짜리 내 배 째라 골목 강아지나, 무엇이건 일자리 창출이요, 경제효과로 포장했던 닭 품은 쥐 같은 인간들을 덮을 자 없다. 그래서 먹을 것 좀 가지고 장난 좀 친 놈들을 욕하기도 심드렁한 세상이다.
요즈음 들이나, 산기슭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는 미국 자리공이란 풀이 있다. 아무튼 그 성장력은 놀라운 속도다. 미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말이 오래전에 고전이 된 줄 알았는데, 들리는 말로는 그 미국 자리공을 나물로도 먹는다고 한다. 아무튼 그 자리공의 어린뿌리는 인삼의 수삼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아주머니가 밭을 지나다, 농부가 캐서 버린 그 미국 자리공 어린뿌리를 인삼이라 생각하고 집으로 가져가 깨끗이 씻어놓았다.
‘아이고, 사랑 제일인 내 각시가 몸보신하라고….’
아침에 각시의 사랑 제일을 고마워하며 남편이 그걸 날로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그리고 일주일을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죽지는 않았다 한다.
아래 이야기는 사고지만, 그 위쪽 놈들은 지옥의 집게로 혓바닥을 손볼 사기꾼들이다. 제발 그런 사기나, 눈속임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아무래도 헛바람이라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먹거리가 걱정이 되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게 어디 없을까? 를 고민한다면 바로 창평 엿이 그것이요, 창평 한과가 그것이다.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그만한 간식거리는 없다고 본다.
우리 어른들이야 그놈의 돈 때문에 조금 오염된 것을 먹은들 어쩌랴? 하지만 아이들에게까지 그런 걸 먹일 수는 없다.
요즈음에는 인터넷을 통한 주문 판매의 유통이 기가 막히다. 직접 창평에 들리지 않아도, 오리지널 창평 엿이나 한과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창평이란 지명은 고려 때부터 있었다 한다.
공자께서 출생하신 노나라 창평향과 지형과 지세가 비슷하여 창평이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임란 때 의병대장인 제봉 고경명 선생의 둘째 아들인 학봉 고인후 선생의 11대손으로 구한말 의병대장이었던 녹천 고광순 선생의 향촌이니 이곳은 또 선비고을이고 의향이다.
이러한 아이들 교육에도 좋은 고을, 데리고 가서 먹을 거 걱정 안 해도 되는 고을이 바로 슬로시티 창평이다.
특히 나이 드신 어르신들께선 손주 손잡고 꼭 한 번 가보시라. 씨동무와 숨바꼭질하던 옛 고향의 돌담고샅도 걷고,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음식도 맛보시라.
아무튼 우리 민초들은 먹을 거 걱정만 안 해도 태평한 세상이다. 정치나 경제는 내버려둬도 된다. 내가 해봐서 잘 안다고 나서는 쥐닭 같은 놈들이 소쿠리로 넘친다. 그러니 장터 게바구니에서 게들이 바글바글 옆걸음 치듯 선거철만 되면 난리치고 소란을 떠는 그런 놈들에게 맡기면 된다. 이놈이 그놈이고 그놈이 이놈이었다. 그러니 궈먹든, 삶아먹든, 지놈들끼리 서로 지지고 볶아서 잡아먹든 뭘 어쩌겠는가?
하지만 음식을 잘 못 먹으면 병원 가야하고, 잠 못 잔다. 그렇게 몸 버리고, 돈까지 드는 거다.
그래서 먹거리도 안전한 창평은 이 세상 평화롭고 맘 편한 좋은 고을이다.
그렇게 건강한 몸으로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도록 태평한 좋은 시절을 만들어 주는 고을 창평을 둘러보고, 그 때문에 편안하게 살아가는 무안 고을로 간다.
<남극루, 넉넉한 태평고을의 누각이다>
<돌담 고샅길>
<매실이 누렇게 익었다>
<한가락 하는 대문>
<어느 민박집>
<왼종일 들여다보아도 싫증이 안날 정원>
<나그네의 마음에 든 집>
<김삿갓이 들렸음직한 솟을 대문집>
<슬로시티 창평, 태평한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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