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41
창평(昌平)한 좋은 시절 무안(務安)을 일삼으니
태평(太平)한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도 더욱 더 민초가 편안하도록 쉼 없이 노력하니 무안(務安) 고을이 바로 그곳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가? 세상사 아이러니다. 세상은 민초들의 바람과는 달리 약육강식의 전쟁터다. 고래로부터 현대까지 변함이 없고, 유식한 나라나 무식한 나라나 마찬가지다. 초등학굘 안 나와도 아는 세계사고, 세상사다.
더욱이 엎드리면 앞 사람 엉덩짝에 코 닿는 쪼그만 나라에서는 힘 센 놈들이나, 정신 넘친 놈들이 집단화 하여, 머니 머니 해도 사랑 중에 돈(money) 사랑이 제일이라면서 눈알을 더 부라린다. 그리고는 제 놈 사랑, 자식 놈 사랑만 챙긴다.
사랑 제일이라. 참으로 번데기가 주름 펴며 웃을 일이다. 사랑이란 게 어찌 그렇게 새끼손톱만 하랴?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민다는 말을 누가 했더라?
그러니 이자들 사랑을 봐라. ‘29만원짜리’가 대표선수다. 달랑 29만원의 빠듯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구렁이 알 같은 돈 숨겨야지, 골프 쳐야지, 자식새끼 페이퍼 컴퍼니 챙겨야지, 참으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신파극이다. 그리도 힘들게 살아가니 머리털인들 안 빠지랴? 고로 기네스북에 오를 새끼 사랑 제일이다.
이런 세상에서 민초들은 숨 쉴 곳도 숨을 곳도 없다. 일본을 봐라. 원자력 발전소 한 게 터지니까 바로 난리지옥 아니던가?
이 나라의 위치상 바람도 비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간다. 일본은 동쪽에 있어서 그나마 우리에겐 다행이었다. 만일에 서해에 인접한 곳의 원자력 발전소 하나가 어찌 되면 비극은 30분이나 1시간이다. 비행기도 못타는 우리 민초들은 그 방사능을 담배 연기쯤으로나 여겨야 한다. 뭔 헛소리냐고? 입에 개 거품 물고 손가락질 하겠지만, 솔직히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손가락에 장을 지지고 철로에 코를 놓겠다고 장담 하는데, 그 손가락질 하는 놈이 여차하면 먼저 꽁무니 뺄 놈이다. 일자리 창출이요, 수백조 경제유발효과요 하면서 국격 높인다고 설레발치던 놈을 또 그 본보기요 대표 선수로 내세운다. 그 놈이나, 추종자인 떨거지들이 우리들 몰래 이 땅에서 보따리 싸면, 우리 민초들은 방사능이나 포탄 연기를 담배 연기로 생각하고 마시고 피울 때가 닥친 것이다.
그런 지옥의 상황을 사랑 제일의 님으로 품에 안고, 곁에 대리고 사는 게 또 세상사다. 무안(務安)은 조선말로는 낙원이요, 꼬부라진 말로는 파라다이스다. 동서남북이 다 이런 태평한 무안 세상을 원할 것이나, 그 결과는 모두다 도루묵인 듯싶다.
사실 죽어서 가는 행복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곳이 정말 있다면, 그런 곳이 있다고 혀를 나불거리는 자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서라도 개 거품 물고 먼저 갈 것이다.
그러니 민초들이여! 허상과 허망을 버리자. 살아있는 지금이 행복이고 낙원이다. 저 세상의 태평한 무안은 절대로 결코 반드시 없다.
현실에서 고통 받고 있는 민초들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내세를 사탕발림으로 내세우는 자들은 사기꾼이거나, 뇌구조가 1초 간격으로 헝클어지는 자들이라 믿어도 된다.
그러니 민초들이여! 어떠한 고통과 고난도 견디고, 참으며, 버텨서 이겨내자!
예전에는 장맛비가 한 달포 오락가락하다가 어느 날, 눈부신 파란 하늘이 해를 부르고 먼 산 그림자에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솟는다. 그러면 장마 끝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겨울인지, 봄인지 헷갈리고, 장마인지, 여름인지 헷갈린다.
하여간에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떠는 여름이다. 장대같이 자란 쑥대 비어와 반쯤 말려 모깃불 피워놓고, 뜨거운 감자, 이손 저손 옮기며 껍질 벗기고, 수박에 참외, 단수수나, 옥수수까지 곁들이면 이 세상 태평이던 추억이 그립다.
‘어따 내 강아지야!’ 하며 연신 부채질 해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 안겨 옛날 얘기 들으면 계속 그 태평세상이 무안을 일삼을 것이다. 그러면 좋으련만, 이제 그분들은 저 하늘이 별이 되셨다.
그래서 오늘은 흰구름 나그네가 얘기꾼이 되어 얘기나 하고자 한다.
흰구름 나그네는 오늘의 무안을 일삼게 한 감방산을 찾았다. 감방산은 무안읍에서 북쪽으로 5km쯤 떨어진 현경면 현화리에 있다. 함평의 주산 군유산과 형제로 역시 무안의 주산이다.
무안군청 홈피의 감방산 설명을 간추린다.
‘동쪽에 극락사와 용샘인 용추가 있고, 남쪽의 현천에서 무지개가 솟았다. 이 샘물은 여름에 시원하고 가을에는 따뜻했다. 감방산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듯 높아 깜박깜박 하여 깜박산이라 불렀다. 감방산 정상의 용굴에 살던 용이 승천하려다 꼬리로 감방산을 때려 산이 무너져 그 흙더미가 칠산바다를 메웠다. 승천하지 못한 용은 이무기가 되어 칠산바다로 사라졌으며, 그 뒤로도 감방산은 계속 무너져 칠산바다를 메워 경신평야가 되었다. 경신이란 이름은 산이 허물어져 바다가 들판이 되었다는 말이다. 또 산 밑 마을의 당산나무는 바다가 매몰되기 전에 배를 매놓는 나무였다. 지금도 흙을 파보면 검은 개펄과 썩은 나뭇잎이 층층이 쌓여있다. 또 정상의 용굴과 무재샘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사람이 오래 전부터 살았다는 거고, 또 무안했다는 증거다. 또 다른 얘기 한 토막이다.
이성계가 정권을 삼킨 뒤 새로 개국 조선의 도읍을 정하려고 무학대사와 함께 전국을 두루 돌았다. 이곳 깜박산에 오르니 바다, 들, 순박한 백성 등이 맘에 들었다. 둘은 이곳을 도읍으로 점을 찍고 손바닥을 마주쳤다.
“좋소?”
“조옷소!”
그렇게 둘은 맘을 정하고 개성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러다 서울 북한산을 여차로 올라갔다. 그래 살펴보니 깜박산 줄기는 산정이 99봉인데 북한산은 100봉 아닌가? 그때나 지금이나 다다익선이다. 아쉽게도 깜박산이 조선의 도읍이 되지 못한 결말이다.
그러나 무학대사가 이리 말했다 한다.
‘깜박산은 천년만년 변함이 없을 거요. 하지만 북한산은 한 5백년정도 지나면 산의 기운이 쇠하여 흙이 벗겨지고, 나무가 말라죽을 것이오. 또 바위도 탈색이 될 것이요. 나라의 주산에 변괴가 오면 나라가 망할 징조요. 아, 천년만년 변치 않을 깜박산이 제일인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깜박산은 5백 년 전과 똑 같은데, 북한산의 모습은….
아무튼 무학대사의 말에 유추하건데, 북한산 기슭에 살았던 이승만을 비롯하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과 지금 살고 있는 박근혜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라의 주산에 변괴가 오면 나라가 망할 징조요….’
풍수를 믿을 것도 아니지만, 무시할 일도 아니다. 산의 동쪽과 서쪽의 바람이 다르다.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인 음풍을 맞으면 몸이 풍이 생기고,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바람인 양풍을 맞으면 심신이 평화로운 법이다. 경험과 실증을 넘어서니 풍수가 미신이 되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일 뿐이다.
아무튼 이 풍수로 본 무안군은 쌍룡지상(雙龍地相)이라 한다. 양(陽)과 음(陰)을 뜻하는 건룡(乾龍)과 곤룡(坤龍)이 감방산(坎方山)을 모태로 하여 뻗어나가고 있다 한다.
따라서 용과 관련된 설화가 이에 뒤따른다.
용의 산 감방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해운동(海雲洞)이다. 마을유래지에 ‘감방산 위에서 바라보면 마을이 바다 위에 뜬 구름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라 적고 있다.
또 이 마을의 입향조는 인조 때 사람으로 김해김씨 호은(湖隱) 김애방(金愛芳)인데 나주 시랑동에서 살다가 가정이 어려워 이곳으로 왔다 한다. 이분은 문장이 뛰어나고 덕이 높았고, 주변 마을의 인재를 불러다 가르치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았다 한다.
해운동은 감방산을 뒤로, 서해를 앞으로 한 풍수에서 제일로 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마을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의 산림이 개간이 되어 들판이 되어버렸다. 진(긴) 잔등에 숲이 우거졌을 때는 마을이 부유했으나 그 산림을 개간한 뒤 마을도 가난해졌다고도 한다. 지금도 당시 숲의 일부였던 수령 수백 년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있다. 대밭도 많았으나, 6,25때 죽창과 울타리를 만들면서 없어졌고 대나무가 천덕꾸러기가 되면서 자연 도태되었다 한다.
마을 앞 바닷가가 간척이 되기 전에는 염전이었다 한다. 천일염과 바닷물을 불가마로 구워 만드는 육염을 생산하였다.
해방 이후 혼란기에 여순반란사건에 관련된 빨지산이 마을에 들어와 몸을 숨긴 일이 있었다 한다. 경찰이 이 사실을 알고 찾아 왔을 때 육염 가마 속으로 들어가 가마 굽는 연기를 따라 피했다고 한다. 굴절과 오욕의 역사다.
그 여순 반란 사건의 장본인과 그 딸이…. 이거 무슨 출생의 비밀로 벌어먹는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더 이상 말하기가 치욕이다.
장군바위에 얽힌 설화다. 바위에 새겨진 흔적이 바로 설화의 흔적이다. 내용인즉, 감방산 무재봉의 용굴의 용과 옥녀봉의 선녀가 사랑을 나누다 이 바위 위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자라서 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바위에는 선녀가 아이를 낳으려 힘을 썼던 양 무릎 자국과 팔꿈치 자국이 있으며 출산 시 흘린 피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따라서 여기에 치성을 드리면 훌륭한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또 이 장군바위 가까이에 발자국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감방산 줄기 소혈잔등이라 부르는 곳이고, 또 하나는 함평읍 석성리 농(籠) 바위 앞이다. 농 바위의 발자국은 농 바위 맞은 편 언해바위에 사는 옥녀를 만나러 갈 때 생긴 발자국이고, 소혈잔등에 있는 발자국은 장군이 떠날 때 남긴 발자국이라 한다. 장군이 이곳에 있을 때 일 년에 한 번 농바위로 가서 농속에 있는 갑옷을 입고 언해바위의 옥녀를 만나러 갔다고 한다.
또 감방산 옥녀봉 위쪽에 방구등(이북등)이 있다 한다. 이곳은 땅속이 비어서 발을 구르면 퉁퉁 울린다고 하는데, 흰구름 나그네는 그 등이 어딘지 몰라 이따금 발을 굴러보며 감방산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이곳 해운리에서 현경면 소재지로 가는 길에 평산리 마을이 있다. 이 평산리는 청룡(靑龍)이 푸른 바다를 안은 낮은 평지로, 용의 음문(陰門)이라 한다. 그래서 이곳에 용알이 8개 있는데 바로 팔암(八岩)바위라고 한다.
하여간에 반도 땅은 산이 70%다. 오밀조밀한 땅이다 보니, 지형에 얽힌 재미있는 설화도 많다. 긴긴 밤을 지새우는 눈 나라 북구에 설화가 많은 거나 마찬가지다.
물산 풍부하고, 인심 넉넉하고, 배곯아 죽을 리 없는 땅이다. 창평한 좋은 시절이 이어지는 땅이다. 그 무안의 품에 안겨 흰구름 나그네는 한 더위를 잊는다.
그리고 다시 온 민초가 기쁨으로 사는 고을 낙안과 그리하여 형제자매가 우애하는 고을 동복을 찾아 간다.
<감방산, 하늘에 닿아 깜빡깜빡해서 감방산인데 지금은 오르기 쉽다>
<아리따운 원추리 아가씨>
<찾아가기 쉬운 고마운 이정표 >
<고사리는 자손을 번성케 한다>
<이름 모르는 버섯 우산, 상당히 컸다.>
< 배산 임수, 청룡이 낮게 배를 깔고 있다 한다.>
<장군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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