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42
사농공상(士農工商)은 낙안(樂安)이요. 부자(父子) 형제(兄弟) 동복(同福) 이로구나.
그렇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은 온 백성을 일컫는 말이다. 온 백성이 즐겁게 살아가니 바로 낙안(樂安)이다. 그러하니 또 온 백성의 자식들이 부모께 효도하고 형제끼리는 서로 우애(友愛)한다. 모두가 한 핏줄 한 뱃속의 동복(同腹)자녀인 것이다. 바로 그곳이 또 동복(同腹)이 복 받는 고을 동복(同福)이다.
먼저 온 백성이 평안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낙안 고을에 이른다.
타임머신이란 게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일생에 딱 한번만 그걸 이용할 수 있다면?
그러면 자기가 살고 싶은 시대로 가서 살면, 세상사 평안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느 시대로 갈까?
아마도 임경업 장군이 계시던 낙안성 시대로 가면 두 다리 뻗고 맘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낙안면은 순천 시청에서 서쪽 방향으로 20.2Km에 위치한다. 동편은 상사면과 별량면, 북쪽은 송광면과 승주읍에 닿으며 동쪽 오봉산, 북동쪽 금전산, 서쪽 백이산, 남쪽 제석산에 둘러싸여 있다. 낙안천과 교촌천이 들녘을 적시며 흐르고 있다.
낙안은 이름그대로 예부터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많은 풍류객을 불러 모았는데, 금강모종, 백이청풍, 오봉명월, 보람조하, 옥산총죽, 원포귀범, 용추수석, 안동화류가 낙안팔경이라 한다. 또 경치만 좋으면 뭐하랴? 낙안 팔진미가 있으니금전산 석이, 백이산 고사리, 오봉산 도라지, 제석산 더덕, 남내리 미나리, 서내리 녹두묵, 성북리 무, 용소 천어 등이라 한다.
요즈음은 많은 관광객들이 현대판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온다. 많이 모이는 계절이나 축제가 있을 땐 가까이 접근하기도 힘들게 사람들로 북적 거린다.
학생들 견학 장소로도 그만이다. 대장간도 있고, 초가집 지붕 잇는 것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독대 돌 틈새 채송화, 봉숭아도 보고 툇마루에서 서산에 서녘 해가 걸려 그리는 노을도 즐길 수 있다.
20년, 30년 전의 과거로 회귀 시켜서 민초들을 빨갱이네 뭐네 닦달하고 으름장 놓는 떨거지들을 보고 사는 것보단 그렇게 차라리 몇 백 년 저쪽으로 가서 조상님 네들 음덕을 보는 게 세상사 낙안의 행복이기도 하다.
비가 줄줄 내리는 날, 어떤 분은 그런 빗소리를 조잘조잘 거린다고 했는데, 낙안을 찾은 날이 그랬다.
흙을 구워 작고 큰 그릇으로 만드는 참으로 대단한 손재주를 지닌 분의 초가공방을 지나, 그날은 불 꺼진 대장간도 지나, 막걸리 한 잔에 침이 고이는 주막도 지나, 물동이 인 큰애기의 엉덩이를 슬쩍 훔쳐보던 우물도 지나, 이 도령과 춘향이가 타야 제멋인 그네도 지나, 그렇게 인생사 허망하게 지나고 지나 고샅길을 벗어나니, 다시 서 있는 곳은 고해라는 현실이다.
세상의 이치를 딱 한 마디로 요약해 보고하라는 왕명을 받고 수백 명의 학자들이 수십 년에 걸쳐 정리한 말이 바로 고해(苦海)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촛불을 빨갱이라 읽고, NLL사수를 NLL포기라고 읽는 눈도 덜떨어진 종자들의 눈 부라림을, 똥오줌도 안 싸고, 이슬과 산소만 먹고 사는 성자의 후광이거니 하고 산다. 강을 시멘트로 발라 놓고 친환경 녹색성장의 혜택을 받으라고 하는 입 비뚤어진 종자들의 침튀김을 아비뇽 생수로 여기며 산다.
민초들이 바라는 것은 오기로 다 내 팽개친다. 민초들 세금이 아깝지도 않은지, 그 민초들 세금으로 댓굴녀며 가스통 할배, 무슨 애궁애궁회가 설친다. 그렇게 공동묘지에 함께 가기도 더러운 놈들이 51.6%라니, 국정원이 걱정원이다. 악마 같은 악머구리가 따로 없다.
‘어야! 오래 전에 집값 쌀 때, 이곳 낙안 마을에 작은 집이라도 한 채 사놓았으면 오죽 좋았겠는가? 이제 집값이 하늘 값이니, 우리 민초들은 초가집 쳐다보는 것만도 행복일세. 낙안도 피안의 세계가 되어버렸네.’
입맛나자, 돈 떨어진 게 아니라, 돈 생기자, 입맛 떨어진 것이다.
젊어서는 자식들하고 살아야하기에 언감생심 단칸집 말고는 여유로 집 한 채 더 둘 생각도 못했다. 이제 늙어서 돈좀 여유롭다 싶어 어떻게 집 한 채 더 마련할까하니, 가진 자들 껌 값이다. 하긴 29만원짜리 희귀종 낙지의 29만원보다는 많지만, 그놈은 불쌍한 거지같은 부자 놈이니 차안에 부재다.
아! 아무튼 세상 헛산 것이다. 평생을 살아 초가집 한 채 살 돈이 없으니 말이다.
이 세상 낙안의 초가집 한 채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맘이나 편하게 살았음 하는 데 그것도 아니다.
3군 사관학교가 있고, 군대가 생긴 것이 반백년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도 미국놈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한다며 설치는 별단 놈들은 장군일까? 똥장군일까?
예전에 농사짓는 집에 필수로 있었던 똥장군이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본다. 아마 나머지 그것들은 나이가 차서 군대로 갔는지도 모르니, 똥장군이 맞는 말인지 모른다.
낙안에서 고을과 민초를 지켰던 임경업 장군이 거꾸로 타임머신을 타고 현세로 왔으면 싶다. 그런 똥장군놈들의 모가지를 단칼에 댕강댕강 베어버릴 것이다.
장군이 되면 무슨 지휘도인가 지랄도인가 칼을 준다는 데, 그 칼을 휘둘러볼 생각은 안하고 미국놈 바짓가랑이나 잡을 생각만 하는 그런 놈이 설치는, 이 놈의 나라가 나라이고, 그런 군인이 군인인가 말이다. 촛불을 빨갱이라고 읽고 NLL 사수를 NLL 포기로 읽는 그런 놈들이 자주국방을 내세우는 군인이냐 말이다.
거지 아버지와 아들이 화재 현장에서 한 말이란다.
“아부지! 우린 행복혀. 불날 집이 없으니 말여!”
“그려. 다 아부지 덕인줄 알아라.”
“고마워요, 아부지!”
그래서 휜구름 나그네도 행복하다.
그 똥장군 놈이 미국놈 바짓가랑이를 놓칠 땐, 난리가 날 텐데, 낙안의 초가집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내가 나에게 한 마디 한다.
“흰구름 나그네야! 너 행복한 줄 알아라. 전쟁 나면 집이 무슨 소용이냐? 니 한몸뚱이도 거추장스러운 거다.”
이 세상에서 온 백성이 가장 즐겁게 살아가는 고을 바로 낙안(樂安)에서 흰구름 나그네는 그래서 행복하다. 평생을 직장에서 소처럼 일했건만, 낙안의 초가집 한 채 살 수 없이 살았던 큰한미국, 나라 덕을 본 것에 감사도 드린다.
그래도 낙안(樂安) 아닌가? 희망을 갖고 동복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위의 사진은 낙안읍성 민속마을 홈페이지의 소개마당 사진첩에서 빌렸습니다. 비가 와서 사진도 못 찍었지만 위의 사진이 너무 좋아서 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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