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39

운당 2013. 6. 15. 08:16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39

 

이초(異草)는 무주(茂朱)하고, 서기(瑞氣)는 영광(靈光)이라.

 

상서로운 서기가 아무 곳에나 서리겠는가?

훌륭한 성인의 머리 뒤에 후광이 서린 조형물이나 사진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동그란 빛의 테두리인 후광은 일종의 상징으로 꼭 눈에 보여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백번의 기도보다 한 번의 선행이 나은 이치와 같이 말이다. 실제로 사람 머리 뒤에서 그런 빛이 번쩍인다면 무서울 것이다.

 

바람이나, 구름이나, 물 한 줌, 햇볕 한 올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 해보자. 밤길에 사람 만나는 게 가장 무섭다지만, 그 무서운 사람이 집단, 획일화 되는 낮에 만나는 사람이 더 무서운 거다.

그렇게 밤이건 낮이건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서기 어린 영광 고을! 말만으로도 가슴이 환해지는 고을, 영광을 향해 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를 한다.

내게 아무 말 없이 다가오고 스며드는 바람, 구름, , 햇볕이 너무 고맙다.

네가 그들을 받아들이면 그들은 네 영혼과 육신이 되어 살아서나 죽음 앞에서나 평화가 되리라.’

 

다 건들어도 종교인은 건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일테면 이 세상 셀 수 없이 많은 종교의 광신도들을 말함이다.

비자금 종교, 내 자식 종교, 골프 종교, 황제테니스 종교, 운하 종교, 사대강 종교, 사대악 종교, 엉덩이 종교, 탈세 종교, 페이퍼 컴퍼니 종교, 국정원 종교, 댓글녀 종교, 우리가 남이가 종교, 학벌 종교, 종북 빨갱이 타령 색깔 종교, 걸핏하면 고소 종교, 내 허물 들추지 말라 종교 등 지금 이 세상은 그렇게 침 튀기고, 눈알 부라리며 믿습니까?’를 묻는 광신의 시대다.

믿습니까? , 죽어도 믿습니다. 빤스 벗어라 해도 믿습니다. 똥이라 해도 믿습니다. 믿습니까? ! 손가락으로 위쪽,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쿡쿡 찌르면서 묻지 않아도 믿습니다. 믿습니다. 바바리 한 장 걸친 꼭꼭 숨은 그 남자를 믿습니다. 비행기 타고 원정출산 가는 그 여인을 믿습니다. 그런데 뭘 믿지요? 그게 뭐지요? 돈이지요? 가스통 들면 2십 만원, 그냥 가면 십 만원이래요. 지 까 짓 거 만 원 도 안 쓰는 놈의 이름이 뭔가요? 믿습니다. 돈도 좋고 한자리 주면 더 좋아요. 언제 주나요? 기다리는 데 언제 까지나요? 사흘만 해먹어도 좋으니 언제 까지나요?”

 

양녕대군도 미친 척 했고, 대원군도 미친 척 했다 한다. 누구든 미친 척 할 수 있는 거다. 정말 미쳤는데도 칼자루 갖다 주는 미친놈도 있고, 미친 척 하는 데도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손가락질 하는 미친놈도 있다.

 

서기어린 영광 고을을 향해 가면서, 흰구름 나그네는 또 미친 척을 한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다시 기도를 한다.

네가 아무 말 없이 다가오는 스며드는 바람, 구름, , 햇볕, 그들을 받아들이면 그들은 네 영혼과 육신이 되어 살아서나 죽음 앞에서나 평화가 되리라.’

 

불갑산에 오른다. 산의 정상이 연꽃 모양이어서 연실봉이다.

노령의 뿌리 뻗어 솟은 연실봉, 대대로 이어 사는 정다운 고향, 기름진 넓은 들판 황금의 땅을, 땀 흘려 가꾸세 알차게 살세, 지화자 좋을시고 남도의 낙원, 빛나는 새 영광 우리의 영광

허연 작사 김기진 작곡의 영광군민의 노래다. 쉬엄쉬엄 연실봉을 향해 가며 오래 전에 불렀던 기억을 되살려 흥얼거린다.

 

서기어린 영광을 옥당고을이라 한다.

조선 성종은 세조가 폐지한 집현전의 역할을 하는 홍문관을 설치하였다. 또 뛰어난 인물이 집에서 독서하는 호당제도를 실시하였다.

이 무렵부터 남악(南岳)인 전라도 영광과 북악(北岳)인 황해도 안악을 홍문관(弘文館)의 별칭(別稱)이며 상징인 옥당(玉堂)고을이라 했다 한다. 서기 어린 빛이 훌륭한 인재를 배출했음을 알려주는 역사의 기록이다.

특히 이곳 법성은 백제 불교 문화 도래지로, 마라난타 존자가 이곳에 상륙하여 가까운 불갑에 이르러 불갑사를 세웠다 한다. 또 이곳 법성포구는 굴비로 유명하지만, 고려 때 부용창(芙容倉), 조선조에 28여 고을의 세곡을 관할한 법성창(法聖倉)이 있었다.

 

인물이 뛰어나고, 물산이 풍부하니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사랑방에서 이 곳을 호불여영광(戶不如靈光)이라 평했다 한다. ‘호수(戶數)는 영광만한 데가 없다라는 말이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어서, 사람이 모였다는 자부심어린 호칭이라 할 수 있다.

 

그 날 불갑산을 오르던 날은 추운 날씨였다. 하지만 빵 한 개, 뜨거운 커피 한잔만 지니고 있었으나, 맘은 넉넉하고 따뜻했다.

얼마쯤의 시간이 지나자, 연실봉이다. 세상사 다 그렇듯 애걸복걸 하지 않아도 시간이 가면 다 해결되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큰 일이 날 것 같아도,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고 새는 노래한다. 먼지 한 올 까딱없으니, 내가 죽어도 아무 일 없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일인 것이다.

연실봉에 오르면 세상이 다 보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해의 푸른 물이 인도양으로 태평양으로 흐르지 않을 리 없다. 저만큼 눈을 두면 월출산이 지척이고, 화순을 지나 보성이 가깝다.

굽이굽이 굽어드는 골짜기마다 사람이 살고, 그 사람이 인연을 맺는다. 수천 년을 그래왔고, 또 수만 년을 그렇게 이어갈 것이다.

저 골짜기 푸른 이랑, 저 푸른 파도 고랑마다 인과 연이 얽히고설켜 우리의 삶이 되는 것이다. 서기 어린 영광의 불갑산 연실봉에서 두 팔 크게 벌려 그 영광의 서기를 가슴 가득 받아들인다.

 

문득 배가 고프다. 빵맛이 꿀맛이다. 푹신한 이불삼아 연실봉에 등을 기대어 커피를 마신다. 참으로 행복하다.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배가 부르니 더 좋다. 더 이상 그 무엇도 필요치 않으니 행복하다.

이곳을 내려가면 또 다시 욕심을 부리고, 나 아닌 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비교를 하고, 주머니를 채울 생각에 골몰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넉넉하고 행복하다.

 

아프면 산으로 가라. 죽어서도 갈 거지만, 죽기 전에 가면 오래 살 것이다. 문득, 말도 안 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아프지 말라지만, 어디 그게 맘대로 되는 것인가? 저 산 아래에서 아팠던 몸과 맘, 셀 수 없는 상처의 흔적, 이곳 연실봉에 다 버리고 간다.

연실봉은 아무 말 없다. 그저 어제처럼 오늘도 말이 없다. 주면 받아주고, 가져가면 내줄 뿐이다.

고마운 산, 그리고 서기어린 연실봉이다.

 

연실봉을 내려와 백수 해안도로를 달린다. 여름철 해당화가 곱게 피던 길이다. 해질 녘 노을이 아름답던 길이다. 해안길이 다 아름답지만, 참조기가 펄쩍펄쩍 뛰는 이 칠산 바다의 아름다움은 평생에 한 번 보아야 할 선경이다. 떠오르는 해는 가슴에 품어 희망이 되고, 지는 해는 가슴을 열어 행복이 되는 법이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이다. 파도에 부서지는 노을이 아름답게 보이면 그 사람의 일생은 행복인 것이다.

 

서기 어린 고을 영광!

영광에 들리면 아무 곳에나 가도 좋다.

법성포에서 굴비 한 두름 사들고, 숲쟁이 공원에서 전통주인 40도짜리 토종 한 잔에 취해도 좋다.

백수 해안도로 해당화에 어리는 노을을 건진 뒤, 그 곳 어디서쯤 백합죽 한 그릇의 몸보신도 좋다.

불갑산 꽃 무릇, 상사화 밭에서 못 이룬 사랑의 끈을 이어도 좋다.

백바위, 모래미, 가마미 해수욕장에서 게들하고 숨바꼭질을 해도 좋다.

 

이름이 영광만한 고을이 또 어디 있겠는가?

더하여 서기가 어린 곳이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라면 신혼 여행지로 이곳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능히 옥당에 오를 자녀를 얻을 것이다.

물론 자라나는 아이에게도, 귀가 순해진 노인에게도, 영광은 그 서기를 넉넉히 내어줄 것이다.

그렇게 영광의 서기에 온 세상의 태평하기를 기원하며 영광(靈光)을 떠나 천하의 태평(太平)을 노래하는 창평(昌平)으로 간다.

 

<영광 불갑산에 호랑이가 살았다 한다>

<꽃무릇밭>

<오르면 내려가야 하는 법>

<연실봉, 연꽃모양의 바위다>

<서기어린 아름다운 산하>

<불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