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만신교

운당 2007. 10. 29. 13:24
<짧은 이야기>

만신교

김 목


“어야, 어야! 마침내 기회가 왔네. 우리도 성공할 시대가 마침내 도래혔네.”

“그게 뭔 소리다요?”

“자넨 신문 방송도 안 보는가? 마침내 이 땅에 성공의 시대가 와따며 우덜을 꼬옥 성공시키겄다고 한께, 우덜에게도 기회가 와뿌렀다 그 말씀이세.”

“아따 또 그 사기꾼놈 야그요. 이자 그 놈 야그는 신물이 난께 그만합시다요. 잉!”

“아따따 그게 아니란께. 그  왜놈 앞제비 서정주가 전두환이 보고 단군 이래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사람이라고 칭찬 안혀던가? 그대끼 지금야말로 단군 이래 우리가 성공할 유일한 기회이고 희망의 시기라 그 말 일세.”

“근께 우리 같은 힘 없고, 돈 없고, 빽 없는 근께 3무(三無) 서민들이 뭘 가꼬 성공을 한단 말이요. 우리가 애믄놈케이오(애믄놈은 전라도 방언으로 아무런 허물도 없이 당하는 사람 Man을 가리킴. 케이오는 권투의 용어로 KO를 뜻함. 영어 약자로는 MK)라는 국민들 때려눕힐 기업을 설립할 돈이 있소? 아니먼 한반도 운하를 파대껴서 니그들 잘 살게 해주겄다고 사기칠 딴나라가 있소? 아, 사기를 칠려도 침 잴잴 흘리고 따라다니는 환장을 헌 놈덜이 쪼께 몇 마리라도 있어야 뭘 해보든지 말든지 할 거지라이.”

“바로 그 점일세. 근께 고거시 뭐냐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바로 그것이라면 한 번 해볼만하다고, 우리가 일찍이 기회와 시기만을 노리고 있었던 일 아닌가?

바로 만신교를 세우는 일이다.

“어야, 지금부터는 우리가 대한민국 표준말로만 이야기를 하세. 왜냐하면 이 일은 전국적인, 나아가서는 세계인을 위하는 역사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일이니까 말일세."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동안 맘속에 접어두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만신교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재개하였다. 그것도 전라도 방언이 아닌 공식 표준말을 써가면서 말이다.

제일 먼저 우리는 지분을 나누는 일을 시작했다.

만신교? 말 그대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신으로 하여 모시는 종교가 될 것이다. 석가와 예수, 마호멧과 공자, 이율곡은 물론 슈바이처 박사와 신사임당, 이순신도 우리의 신들이 될 것이다. 그것뿐인가? 길바닥에 뒹구는 돌멩이며, 개미와 배짱이까지도 우리 만신교의 거룩한 신으로 등극을 할 것이다. 말하자면 만신교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숭상하고 숭배하며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는 종교가 될 거란 말씀이다. 따라서 그 어떤 종교의 교리보다도 폭이 넓고 호혜와 평등,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을 구가하는 종교가 될 것이다. 인도의 힌두교가 2억의 신을 자랑한다지만 그까짓 2억정도는 우리 만신교 신의 숫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지분 문제는 쉽게 가닥이 잡혔다.

“만신교 창교자들이 무조건 똑같이, 그러니까 엔분의 일로 나누는 겁니다.”

“좋았어.”

앞으로 신도들의 헌금이 들어올 거고, 성전을 지으면 그 재산권 문제, 또 만신교의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해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설립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만신교 신학대학을 설립하면 누가 이사장이 되고 총장이 될 것이냐도 미리 정해둬야 했다.

신도들과 학생들을 가르칠려면 교수도 뽑아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진 특히 사립학교의 채용기탁금 같은 관례를 보더라도 우리도 채용헌금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엄청난 뒷돈을 어떻게 나누느냐도 미리 투명하게 확실하게 정해놓아야 한다. 뒤가 구린 돈일 수록 그런 점이 분명해야 한다는 게 우리 거룩한 종교를 창시하는 창교자들의 확고하고 결연한 의지요 신념이었다.

그것뿐인가? 각종 관계단체가 설립되고 시설이 만들어지면 거기에서 일할 수많은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 줄잡아 창교 초기에만도 수백명, 수천명이 될 것이다. 그들 채용에 따르는 헌금도 만만치 않으리라는 대목이 심상찮다. 지금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큰 불씨가 될 것이다. 우린 그 채용에 따르는 뒷돈, 좋게 말해 헌금도 무조건 똑같이 나누기로 했다.

우리는 그 계약서를 쓰고 서명을 했다. 그걸 다시 복사를 해서 3통으로 만들었다. 원본은 공탁을 해서 맡기기로 하고 만신교 창교 논의에 참여한 신 선배와 황 사장, 그리고 내가 한 통씩 나눠서 보관하기로 했다.

그런데 만약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든지,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배신을 해서 미국으로 도망을 가면 어쩌느냐? 에서 조금 논의가 길어졌다.

“그것이 제일 문제야. 이제 우리 만신교 신자가 수십만명, 아니 수백만, 수천만, 수억이 될 것인데, 그 사람들이 내 놓은 돈을 여기 세 사람 중 누군가가 슬쩍 해먹고 미국으로 도망을 가면 어쩌느냐?”

그 점에 대해서도 우린 분명히 해두자고 했다. 말하자면 공과 사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 세상 관례에 따르면 됩니다. 모든 걸 미국으로 도망간 놈에게 덮어씌우는 겁니다. 그 놈이 본래 사기꾼이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나는 그 부정한 돈을 한 푼도 본적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보지도 않았다. 그 일은 나하고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렇게 무조건 부정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기로 약조를 합시다. 우리 세 사람 중 한 명이 그런 일을 저지르면 그렇게 할 것을 만신교 신들께 오늘 굳게 맹세를 합시다.”

“좋아. 좋아. 바로 그 점이야. 우리가 만신교를 세울 좋은 기회라 하는 게 바로 그 점에 있는 거야.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은 정의나 도덕에는 관심이 없어. 오직 잘 살게 해준다고만 하면 환장을 하는 시대지. 그러니 우리가 그렇게 말하면 다 믿을 테니까, 우린 떳떳하게 사회적 관례에 따르기로 하세.”

“만약에 누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증거물을 내놓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관련설을 부정해야 합니다. 또한 심각한 종교탄압이라는 걸 내세워 신도들을 선동하고 부추켜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과 맞서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 컴퓨터 알바를 동원하는 등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거룩한 만신교 신의 이름으로 분연히 떨쳐 일어나 종교탄압에 맞설 겁니다. 공격적 선교는 물론 투쟁적 선교를 통해 만신교를 보위하고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공신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옳소! 옳소! 만신교 만세! 만세! 만만세!”

우린 스스로 도취하여 만세까지 불렀다. 그것도 삼창까지 불렀다.

“그런데 신도들을 홀리려면 중요한 사업이나 시책을 내세워야 하는데 그건 뭐 좋은 생각 없나요?

“맞아. 그게 중요해.”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이 부분에서 한 동안 깊은 사색에 잠겼다. 제일 많은 철학적 고뇌와, 그 어떤 종교인, 철학가도 일찍이 못해본 심오한 고민과 결단이 필요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거 어쩔까요? 마침 황 사장이 건축 일을 하니까, 각 신도들이 사는 마을과 마을을 운하로 연결시켜 주는 겁니다. 일요일에 만신교회에 나오는 날은 그 운하에 멋들어진 유람선을 띄워 우리 신도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겁니다. 물론 평상시에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최상의 써비스로 통행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말입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긴 한 데 운하건설에 드는 많은 비용과 신도들이 같은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운하 건설은 기존의 강이나 하천, 내와 고랑, 심지어 논고랑 밭고랑까지 이용하는 겁니다. 그리고 신도들을 의무적으로 운하가 건설될 강이나, 하천, 논고랑 밭고랑 마을로 이사를 시킵니다. 그렇게 하면 쉽게 해결 됩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잠정적으로 교주가 될 신 선배님이 두 팔을 들고 엄숙하게 기도하며 물었다.

“만신교 신도들아! 거룩하신 만신교 신님들을 대신하여 내 너희들께 묻겠노라. 내 너희들의 생명과 재산을 우리 만신교에 봉헌하여 두배, 세배, 아니 열배 이상으로 튀겨주겠다. 그러니 무엇이든 의심을 해선 안 된다. 의문을 가져서도 안 된다. 무조건 만신교를 찬양하라. 믿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 믿습니까? 신도들이여!”

“예,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우리는 만신교의 첫 번째 교주님 예정자의 기도에 그만 감격하여 두 눈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실로 그동안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인가? 온갖 역경과 탄압, 고난을 이기고 물리치며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 아닌가? 감격의 눈물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흘린 피와 땀의 대가로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그럼 이제 마지막 순간일세. 우리 만신교의 성경말씀을 정할 차례일세. 의견들을 말해 보시게.”

어느 덧 만신교 첫 교주님 예정자의 말투에는 엄숙함과 무거운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건 쉽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연구한 바로는 성경이 복잡하고 길고, 어려우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성경을 만들었으면 어쩔까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 열한가지를 만신교의 성경말씀으로 정했다. 참으로 감동적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그 순간 바람이 건듯 불더니 책상 위의 종이쪼가리를 날려버렸다. 다행히 천둥 벼락이 울리거나, 구름 틈새로 한줄기 불덩이가 내려와 돌덩이에 글씨를 써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일 있어봐야 신경안정제나 축나는 일이니, 그것도 다 만신교 신님들의 깊은 통촉과 사랑의 발로였으리라고 우리는 믿고 또 믿었다.

마침내 만신교 첫 교주님 예정자께서 만신교 성경말씀을 천천히 떨리는 음성으로 세상에 공표하셨다. 하나 하나 발표될 때마다 미세한 떨림이 세상을 감흥 시키고 우리의 마음에 평화와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으니, 종교를 창시해보지 않은 자들을 그 깊은 감흥을 모르리라.

1. 모든 신을 섬기라 2. 특히 우상을 잘 섬기라. 3. 만신교의 이름을 항시 부르라. 4. 만신교의 안식일을 지켜라. 5. 어버이를 공경하라 6. 살인을 많이 하면 영웅이다. 영웅이 되지 마라. 7. 사랑을 많이 하라. 8. 없는 사람들 것은 도둑질하지 마라. 9. 없는 사람들께 거짓말하지 마라. 10. 없는 사람들 것을 탐하지 마라가 그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마지막 11번째였으니, 그게 뭐냐? 11. 다 해도 좋으니 들키지 말라다.

다시 말하여 잘 살기 위해선 무엇을 해도 좋으니 들키지 말라는 게 핵심 요지였다.

그리고 불교에 ‘나무아비타불’이 있고, 기독교에 ‘성부와 성자와 성신’ 그리고 ‘아멘’이 있듯 우리 만신교에도 상징적인 말이 하나 쯤 있어야겠다는 데에도 의견이 모아졌다.

“그건 11번째의 말에 우리의 핵심이 담겨있으니 ‘들키지 말라’를 우리의 핵심 기도문으로 하면 됩니다.”

“들키지 말라! 들키지 말라! 뭘 해도 들키지 말고 잘 살면 된다! 아, 그것 참 좋구먼.”

그렇게 해서 일사천리가 결코 아니고 많은 고뇌와 번민, 치열한 논쟁과 토론, 폭 넓은 연구와 깊은 기도, 피와 땀의 결실로 만신교의 구체적인 모습이 만들어졌다.

“어야, 어야! 자네 언쩌녁에 뭐했는가? 운동하러 와쓰먼 운동히야지 시방 나짬을 다 잔가?”

“아니 표준말로 말하자고 해놓고는 갑자기 왜 방언이요? 방언?

“어메 이 사람! 분명 언쩌녁에 먼 일 이써고만. 술 머것는가? 히히히 근께 고거신가?”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한 여름도 아닌데 체육관 사무실 의자에서 잠깐 졸았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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