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꿈속의 꿈이로구나

운당 2007. 10. 23. 20:32
<짧은 이야기>

꿈속의 꿈이로구나

김  목


그날 모임의 유사는 장형 차례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래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형님, 금년 연세가 일흔 아홉이제?  근께 아홉수가 낀 해는 조심혀야 혀. 나도 쉰아홉에 아들놈 수술허고, 예순아홉에는 마누라가 수술혔당께.”

가는 길에 모임의 둘째 형이 아홉수 이야길 했다.

막내인 나는 ‘아홉수도 아닌디, 병원에 다니며 죽을 때까지 약 먹어야 하는디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래병원으로 들어섰다.

벌써 30년이 된 모임이다. 술들을 워낙 좋아해, 한 번 마셨다 하면 2차, 3차는 통과의례였다. 차례를 정해 돌아가면서 내는 것도 좋으나, 회비를 걷어서 마시자 해서 자연스럽게 ‘다우회’란 모임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다우회라고 하지 않고 술 주자가 들어간  ‘다주회’라고 말했다.

모임의 장형은 젊은 날에 잘 나가는 운동선수였다. 야구와 육상 선수를 지낸 키도 크고 무엇보다도 술도 두주불사인 호걸이었다. 성질이 징허게 급한 게 흠을 잡는다면 흠이었다. 그렇게 인정 많고 호탕하기로는 모임의 둘째 형도 마찬가지였다. 칠십대 초반이지만, 기본이 소주 두병이고 지금도 젊은 놈들 까불다가는 허리춤 잡혀 저만큼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건 시간문제다. 절구통처럼 튼튼한 몸매로 씨름 선수를 지낸 왕년의 백두장사이기 때문이다.

셋째 형은 매사가 뚝 부러지는 올곧은 일처리, 그리고 불의를 못 보는 성격이다. 서중을 나와 사범학교를 갔기에 다행이지, 사관학교를 갔으면, 두환이나 태우는 디졌을 것이다.

하지만 전자 오르간을 두들기고,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는 이 시대의 예술을 아는 멋쟁이다.

막내인 나는 그 형님들 틈에 끼여, 어리광도 부리고 실없는 농담도 하며 사랑을 받는 호강을 누리고 산다.

“오메, 김 선생! 얼굴이 많이 빠졌네.”

마침 장형의 진찰 결과를 듣고 나온 형수님이 막내인 나를 보고 한마디 하신다. 그동안 병환 중이어서 바깥출입을 안 하셨던 터라 3, 4년 만에 뵙는 것이다.

“살이 빠진 게 아니라, 늙었지요.”

빙 둘러선 우리들을 둘러보며 반가운 인사를 하는 형수님의 눈가에 붉은 기운이 어린다.

“저는 우리 엄마가 중환자인줄 알았더니 아버지가 더 중환자네요. 위암 말기래요.”

막내딸이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서린 이유를 알려준다. 방금 진찰실에서 들었다는 것이다. 수술 후 수혈을 해도 혈액양이 증가하지 않아 원인을 밝히기 위해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 위암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정년퇴직을 한 뒤로 그동안 해마다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했을텐데, 위암이 말기에 이르도록 발견이 안 되었나 보다.

“나쁜 놈들, 말이 건강검진이지, 돈 더 주지 않으면 제대로 안 봐준단 말이시.”

밑도 끝도 없이 애매한 의사들을 싸잡아 욕을 하고 6층 병실로 장형을 만나러 갔다.

“어따 바뿐디 뭐하러들 온가?”

“아따 오늘이 모임 아니오? 글고 형님이 오늘 유사여라오.”

젊을 때부터 약간 가는귀가 먹어 말을 할 때는 싸움하듯 큰 소리로 해야 한다. 병실 안에 다른 환자들도 있었지만, 하는 수 없이 ‘유사여라오’에서 음을 더 높였다.

“마저, 마저, 잉! 근께 이제 수술 잘 혔응게, 다음 달에 하세. 오늘은 그냥 자네들끼리 한잔 허소.”

그러면서 자기도 병실이 떠나가게 큰 소리로 수술 받은 이야길 한다.
“아, 갑자기 숨이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고 해서 주치의한테 갔더니, 여그 큰 병원을 소개해주더란 말이시. 여그 짚봉터널 밑에 이렇게 큰 병원이 있는 줄 몰랐네. 근께 여그가 심장 전문병원이대. 그래 본께 심장에 대동맥이 시게 있는디, 그걸 통틀어 관상동맥이락 헌다네. 거그에 뭐시 쫙 끼여서 그걸 청소했어. 근디 허벅지, 근께 여그에서 관을 박아 수술을 하데.”

장형이 잠시 헐렁한 환자복을 걷어 허벅다리 쪽을 보여주었다.

“마취는 전신 마췹디여? 그냥 일부 마췹디여?”

그 때 둘째 형이 질문을 했다.

“마쳐? 아녀. 아직 안 마쳤어. 이것들이 돈 벌어먹을라고 오래 입원혀라 한단 말이시. 난 이제 괜찮은께 집에가 눴을라고 하네.”

보청기를 안 끼고 있어서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아따 형님 마치는 게 아니라 마취여라, 마취!’ 큰 소리로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응, 금방 마칠게. 내 야그 쫌만 더 들어보고 바쁜디들 어서 가. 근디, 오메말이시. 수술 전에는 마취를 했는디, 나중에는 마취를 안혀서 아퍼 디진줄 알았네. 그라고 24시간을 꼼짝 못하게 묶어놓더란 말이시. 아이고!”

장형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디지게’ 성질 급한 양반이 어찌 참았을까? 생각하니 연민이 앞선다.

“어야들, 바쁜디 이자 어서 가봐. 담달에나 보세. 글고 막둥이! 자네, 나 퇴원해가꼬 낚시질 갈란께 좋은 자리 봐둬야 혀. 알았제? 자, 어서들 가봐.”

그 급한 성질 살아있는 걸 보니, 이제 훨훨 날기라도 할 것 같은가 보다.

“예, 몸 조리 잘하시고 얼른 쾌차하세요.”

“응, 걱정 말고 얼른들 가소. 근디 진찰결과 들으러 간 집사람은 왜 안 오는가 모르겄네.”

“금세 오시겄지라. 내려가다가 우리도 진찰실 쪽에 가보께라. 형수님도 뵙고 가야제라.”
오다가 진찰실 앞에서 형수님을 뵈웠다는 이야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겐 숨길래요.”

막내딸이 그렇게 말했다. 그게 좋겠다 싶어 위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잠시 뒤 풀이 팍 죽은 우리들은 술집에 마주 앉았다.

“위암이래도 낚시질은 할 수 있겄지라?”

“그려, 퇴원하면 내가 모시고 다닐라네.”

“꿈속의 꿈이시. 산 넘어 산이라고 그깟 관상동맥은 아무 것도 아니여. 위암 말기면 많이 살면 2,3년이시.”

“정말 허망해라우. 인생이….”

“근당께, 꿈속의 꿈이란께.”

“그려라우, 꿈속의 꿈이지라우….”

“근께 베풀고 살어야 혀. 이자 곧 흙이 될텐디 말여.”

“아가씨! 여그 소주 두 병 더 줘요 잉!”

차츰 다주회원들의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혀에만 취기가 올랐지, 오히려 정신은 말똥말똥해졌다.(2007,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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